doggya
2015. 5. 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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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독서 나는 가끔 소리 내 책을 읽는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 해서 목이 멜 때가 있다
무슨 슬픈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에 누워 책을 소리 내 읽고 있는데
뒤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어느 대목에선가 쯧쯧 딱하지,
하고 혀를 차셨다
그 소리가 책 읽고 있는 내 귓전에 울리곤 해서다,
돌아봐도 어머니가 뒤에 앉아 계시지 않다는 걸
내 몸이 어김없이 알아서다
- 박덕규
소리 내서 책을 읽고 있는 고등학생이 있다
뒤편에 바느질을 하시는 어머니가 앉아 계신다
어머니는 글의 한 대목에서 남의 딱한 형편이 당신의 일인 듯
마음이 아프고 가여워 혀를 차신다
어머니의 그 안쓰러워하는 소리를 아들이 듣는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몸과 마음의 주고받음이 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글 읽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렁우렁 울려오는
소리였을 것이다
아들에게 어머니의 혀 차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순하고 자상한
마음이 들려주는 골감의 소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소리 내서 책을 읽다 돌아봐도 그 옛날의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나의 학창 시절에 나의 어머니도 나의 글 읽는 소리를 즐겨 들으셨다
글 읽는 소리 뒤편에 앉아 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셨다
뒤돌아보았을 때 어머니의 온 얼굴에는 봄 같은 미소가 가득하셨다
문태준 시인
2015년 5월 14일
빨간도깨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