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운명, 만남의 숙명
1984년 어느 가을, 안전 점검중이던 한 전기 기사가 전기에 감
전되고 말았습니다. 순간 온몸이 척 들러붙고 몸 안으로 불덩이가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양손은 사라져 있었고
어깨까지 양쪽 팔 모두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스
물아홉,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불과 한 달 반 되었을 때입니다.
세수도, 용변도, 식사도 남의 도움 없인 불가능했습니다. 지금
도 종종 엘리베이터에 갇히곤 하는데, 엘리베이터의 일반 버튼은
몰라도 체온 감응형 버튼은 난감합니다. 쇠붙이로 된 그의 의수
엔 체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됐습니다.
사고를 당한 지 4년째 되던 해, 의수에 볼펜을 끼고 글씨 연습
을 하고 있던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던 어린 아들의 청을 들어
주기 위해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친 김에 미술을 배우려고 학원을 찾아보았지만 그를 받아주
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물감을 짤 손이 없었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서예였습니다. 먹 한 가지만 있으면 그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지만, 한편으로 두 팔 없는 장애인
대부분이 입 또는 발로 그리는 구족화가의 길을 선택한다는 걸
알고 그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의수입니다. 의수에 붓을 고정시키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 꿈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기뻤
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예를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1991년, 그
는 전라북도 서예대전을 시작으로 각종 서예대전에서 상을 휩쓸
었습니다. 개인전과 그룹전, 또 해외전시를 진행하며 제1호 의수
화가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수묵크로키'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석창우 화
백입니다. 석창우 화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라진 두 팔로 인해 나는 그림을 만났고, 미처 몰랐던 나의
열정엔 후회도 아쉬움도 없어요. 내가 양팔과 헤어진 것이 운명
이라면 의수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숙명이란 생각이 듭니다."
출처 : 당신의 오늘을 응원하는 아침공감( 꿈은 이루어진다)
<그대 아침> 제작진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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