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외바퀴 수레
밤낮으로 밭에서 일만 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성실했기 때문에 노인은 그해의 수확왕으로 선정되었다. 먼 곳
에서 노인의 농사 비법을 배우려고 농부들이 하나둘씩 찾아올
정도였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노인을 찾아와서 말했다.
"어르신, 축하드립니다. 어르신을 초대하려고 들렀어요. 내
일 저희 집에서 뵙고 쉽습니다."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청년이었다. 노인은 특
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오후에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청년
이 돌아간 뒤에도 노인은 밭에 나가 하룻밤 사이에 무성해진
풀을 뽑으며 농부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밭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움직이며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였다.
다음날 노인은 약속대로 청년의 집으로 향했다. 청년은 기
다렸다는 듯 노인과 나란히 걸으며 보물창고로 들어갔다. 그곳
은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진귀한 보물들로 넘치고 있
었다. 보물들 가운데 하나만 있으면 일을 하지 않고도 한평생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이 노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어르신, 무엇이든지 하나만 고르세요. 선택한 보물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수확왕에게 바치는 저의 선물이에요."
노인은 한참 동안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보물들을 둘러보
았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게 분
명했다. 황금시계는 '똑딱! 똑딱!' 초침 돌아가는 소리로 손짓
하고 있었다. 청년은 팔짱을 끼고 서서 노인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노인이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나에게 선물을 왜 주겠다고?"
"어르신께서 올해의 수확왕으로 뽑히셨잖아요. 그래서 축
하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때서야 노인은 농부의 본분을 되찾은 것 같았다. 청년이
지켜보는 앞에서 노인은 보물창고 문턱에 놓여 있는 수레를 가
리켰다. 바퀴가 하나 달린 녹슨 수레였다.
청년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르신, 저 수레는 보물이 아니에요. 제가 보물을 옮길 때
이용하는 평범한 수레에 지나지 않다고요. 외바퀴이고 또 녹슬
어 있잖아요. 진짜 보물을 선택하세요."
숱한 보물들을 외면한 채 녹슨 수레를 고르다니, 청년을 계
속해서 진짜 보물을 선택하라고 권유했다. 그렇지만 노인의 고
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청년은 올
해의 수확왕으로 뽑힌 노인에게 녹슨 외바퀴 수레를 선물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며칠 후 청년을 노인의 밭 옆으로 지나가다가 깜짝 놀라 발
걸음을 멈추었다. 노인이 녹슨 외바퀴 수레를 밀고 있었는데,
수레에 담긴 것들이 전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청
년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화고 붉어진 얼굴로 노인에게 달려
갔다.
노인은 외바퀴 수레 때문에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서 오게, 젊은이! 이 녹슨 수레에 거름을 담으면 이렇게
모두 황금빛으로 반짝이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
나에게는 거름이 곧 보물이라네."
청년은 노인이 밭고랑에 쏟아붓는 황금덩어리를 바라보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출처 : 아침을 여는 행복 편지(김승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