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어머니

doggya 2010. 3. 30. 21:20

 

 

어머니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밤새도록 잠을 못 자고 있었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우선 가슴부터 철렁했다

 

 

 재홍이는······ 거기 갔드나 ······

 

 

 웬일이세요. 이렇게 아침 일찍?

 

 응 ······ 내가 니인데 머 부탁할 일이 하나 있아가······

 

 동생은 첫 휴가를 나왔었다. 그가 귀대하는 날 아침

 나는 3만 원을 주자는 아내에게 단호히 2만 원만 줘서 보내라

했다

 

 

 아버지는 잘 계시고요? 응······ 인자 논에 나가셨다······

 

 아버지는 대구 공사장에서 내려오신 거로게군

 우린 논을 다 팔았다 시골집은 저당잡혀 있고

 

 

 웬일이세요. 말씀해보시라니까요. 통화료 올라가요.

 

 아버님이 아무 일 없으시다면 우선 걱정은 어머닌데

 이렇게 전화를 하시는 걸 보니 무슨 갑작스런 노릇은 아닌

듯하고

 

 

 어머니와 나는 지지난달에 똑같이 한양대 신경정신과엘 들

렀다

 나는 신경쇠약이고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심하시다

 조금만 움직이셔도 픽 쓰러지시고 가슴은 마구 둥당거리신

단다

 

 

 야야······ 내가 이거 자식한데 처음 하는 말인데······

 어머니는 순간 목이 콱 막혀오셨다 돈이 얼마쯤 필요해가

 나도 순간 목이 콱 막혀왔다 어 얼마나 필요하세요. 어무

이······

 

 나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한 9마 넌, 아니, 딱 7마 넌

만 하모 되겠구나······

 

 

 나는 더욱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의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

가 마구 들려오는 듯했다

 

 

 예에, 그걸 뭐 그렇게 어렵게 얘기하세요 아무 걱정 마세요 어

무이······

 

 

 지난번 소아마비의 누이동생이 결혼할 때도 나는 한 푼의 부

조도 못했었다

 나는 그 누이를 미워하고 있었다. 아니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

미워하고 있었다

 

 

 그 누이는 그날 그 점촌의 예식장에서 90만 원의 현금과 리이

카 카메라 한 대를 잃어먹었었지

 자기가 나온 전문대학의 교수님이 주례를 서실 동안 신부 대

기실에서는 그 돈과 물건이 증발하고있었던 것

 그리고 그 외제 카메라는 남에게서 빌려왔던 것

 

 

 그런데 어디다 쓰실 건데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좀 풀려

왔다

 

 응. 야야, 모심기를 할라 카이 당최 현금이 있어야제······

 요새는 일손이 귀해가 논뚝에서 딱딱 돈 안 주모 일 안 해준

다······

 

 

 그까짓 농사 지아가 뭐 해요! 나는 아니 그는 갑자기 고함을

버럭 질렀다

 성대 정치과엘 다니다 군대 간 ― 그는 장학생이었다 ― 동생

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가 판 논의 소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갓집 돈 240만 원과 또 무슨 돈 170만 원 때문에 어

머니는 거의 매일 울고 계셨고

 

 야야······ 아무리 그래도 농사꾼이 농사짓다가 농사 안 지으

모······ 어머니의 목소리는 다시 감기기 시작하셨다

 

 

 나는 다시 눈시울이 뜨끔하여 예, 예, 알았어요. 알았어요.

 오늘 당장 보내드릴께요. 통화료 올라가이 빨리 끊으세요.

 어무이 건강 조심하이소······

 

 

 오야······ 내 걱정은 마래이······

 니 몸조심하고 어쩌고 하며 계속되는 걸 나는 수화기를 딸칵

놓아버렸다

 내 울화가 치미는 흐느끼는 목소리를 어머니가 너무 오래

들으셔서는 안 되니까

 

 

 어느 틈에 아내가 깨었던지 눈물이 흐르는 내 눈을 둥그렇게

쳐다보다가, 남산만한 배를 들먹거리며.

 팔뚝을 마구 함부로 쳐들며 10만 원 보내자. 10만 원······ 하

며······

 

 

 2

 

 지난번 선거에서 아버지는 민정당의 박×석 씨를 어머니는

 서×열 씨를 그리고 동생들 셋은 모두 최×환 씨를 ­­­― 최×환

씨는 성대 출신이다 ­― 찍었다 한다

 그러면 이 잠실의 강동구에서 나와 나의 정부인 나의 아내는

그 누구를 찍었었던가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죽어도 의회주의자니까 ―

 

 

 

  9만 원에서 7만 원으로 내려오는 동안

어머니가 넘었을 무수한 엇갈림의 고개여! 그 언덕엔 "논뚝에서

딱딱 돈 안 주모 일 안 해"주는 일꾼들이 진을 치고 있고 딸아이

의 결혼 비용이 입을 벌리고 있으며 신경통과 신경쇠약의 육신

이 있다. 또한 통화료가 올라간다고 '빨리 끊으이소'라고 말하

는 가난한 시인의 생계도 깃발처럼 펄럭이고······.사랑은 이렇

게 지진이다

 

/박남철

 

 

출처 : 시가 있는 환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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