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맛있다
일본 신주쿠 교엔이라 하는 공원에 가면 지선이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물론 공원 측에서는 전
혀 모르는 사실이고, 저와 함께 그 나무를 바라봤던 목사님께
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그 나무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공원 안에 수 천 그루의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자라
고 있었지만 그 나무만 어찌된 일인지 옆으로 누운 방향으
로 자라고 있으니까요. 연못을 향해 옆으로 누워 있는 나
무는 여느 나무들처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는 못합
니다. 그 대신 삶이 지치고 피곤한 이들에게 편안한 나무
침대가 되어주고는 하지요. 그 나무가 그렇게 나무뿌리를
다 드러내고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폭풍우를, 세찬 비바람
을 견디어 왔는지, 어떤 세월을 지내왔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나무는 특별해 보였습니다. 그 나무는 다
른 나무들과 달랐지만 분명 우리 눈에 아름다워 보였습니
다. 그래서 지선이 나무입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 여름에 교통사로를 당해 전신에
55%.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저의 상태는 4~5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중상으로 의사들조차 포기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투를
벌여야 했고, 기적적으로 삶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죽음
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더 이상 예전의 모습
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무릎 위로 온몸에 화
상을 입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손가락
을 여덟 마디나 절단해야 했습니다. 온몸은 미라처럼 붕대
를 감고 있었고, 성한 제 피부를 떼어 상처에 이식하는 피
부이식 수술로 계속 또 다른 흉터들이 생겼습니다. 당기는
피부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으므로 제 몸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잃었던 평범함을 찾아가고 있지만,
2001년 가을, 그 나무 앞에 서 있던 저는 당기는 피부 때
문에 눈도 잘 감지 못하고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는 모
습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눈
에 들어온 것입니다. 아마도 남다른 그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인 듯해서 자꾸만 눈이 갔었나 봅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저는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
습니다. 23년 동안 지극히 평범하게.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저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어도 눈에 띄는 아주 특별한 사람,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신주쿠 교엔의 수천 그루 나무들 중 한 그루
처럼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나
라면 자살했을 거야'
지금의 특별한 모습을 하게 되기까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 지금으 모습으로 서기까지 고통의
시간들을 자신의 일이었다고 상상해 보며 대부분의 사람
들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
실 저도 사고 나기 2달쯤 전에 TV에서 화상환자의 다큐멘
터리 프로를 보면서 엄마에게 "저건 사는 게 아니라고."라
며 울먹였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불과 몇 개월 후, TV에서
보았던 그 환자 앞에 더 심한 화상환자의 모습으로 서게
되리라고는 꿈도 못 꾸었으니까요.
그런데 '저건 사는 게 아니라고.' 했던 삶을 제가 살아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제 의지로 감당하지 못할
순간도 많았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픔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
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훨씬 더 많은 날들이었지만 그래
도 살고 싶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참는 것밖에 없던 시절. 중환자
실에서 죽음과 전쟁 같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오빠가 제
게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선아, 그래!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어?"
그랬습니다. 더 이상은 떨어질 나락도, 더 이상은 나빠
질 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으니까요. 고난
을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그곳
은 정말 바닥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더 떨어질 곳도 없는 바닥이기 때문에 이제
올라갈 일만, 시작할 일만,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라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소위 '깡' 이
라고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이전에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
는 삶을 얻었습니다.
사고 후 처음 일주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선생님이 다가와 혼
자 숨 쉴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니
깐 잠시 후 몸 속 깊숙이 박힌 것 같은 산소 호흡기를 빼주
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물을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말
라있던 제 목을 축여주는 그 물은 너무도 시원하고 맛있었
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물이었습니다.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데도 저는 계속 마셨습니다. 아직도 그 시원한
맛을 잊지 못합니다. 이제 겨우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진
통제를 맞아야만 하루에 30분이나 잠이 들까 말까한 그런
고통 중이었음에도 그 물 한 모금에 저는 '행복' 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아주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짧아진 손
이긴 하지만 두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서 맞게 된 2000
년의 겨울바람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도, 살아
서 다시 보게 되는 아름다운 가을 하늘도······ 모두 기쁨
이고 감격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제게 얼마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큰 감사거리
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잃어버린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저 역시 많은 것을 잃고
나니 모든 것이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온전히 남은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
며 글을 쓰며, 엄지손가락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
했고,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
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막대기 같아져버린 오른팔을 쓰며,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귀바퀴란 것이 귀
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고.
잠시였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룩절룩 걸
으면서 다리가 불편한 이들이 걷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
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하나씩 되찾게 되는 기쁨은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뚫고 올라온
눈썹 한 가닥이 정말 감사했고, 친구들과 명동거리를 다니
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된다
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말하십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
하는 것이, 과거의 나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진심일까? 아마 그분들은 더 많이 가지고, 누리는 것
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
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 때 저는 인생이 너무나
고해이니깐 너무 오래 살게는 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한 적
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이제는 살아 있
어서 행복합니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이지만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오
며 저는 이제 '사는 맛'을 조금식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병실에 있을 때부터 저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습니
다. 그것은 바로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로 '사는 맛'을
잃어버린 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살맛나는 인생을 찾아
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재단을 세
워서 수술비도 후원하고 무엇보다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공부도 시켜주고, 또 한국에서 수술할 수 없는 이들을 외
국병원과 연결도 시켜주고 후원도 할 수 있는 그런 재단을
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해서 화상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된 화상 가족들의 상실감과 우울함, 지워
지지 않는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심리상담센터를 만들
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꿈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장애로 고통 받는 분들이 새 삶을 찾도록 돕는 푸르메재단
이 생겼고, 저 또한 미국에서 '재활상담'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보았던 그 나무처럼. 저는 친구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해 보았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도, 살아갈 모습도 예
전에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리고 남들과도 참
많이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기대와 다르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어그러졌다거나, 불행한 인생이 되
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보고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무가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늘로 향한 나무가 보지 못하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누워서 자라며 연못에도 닿고, 땅과도 더 많이 맞대고 있
는 그 나무는 보고 만질 것입니다. 제 삶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모습으로는 만날 수 없고, 이전에 삶으로
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워가며, 그 나무처럼 아름답
게 느껴지는 인생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저 '다른' 나무가
아니라 특별하고 '아름다운' 그 나무처럼 말입니다.
출처 : 사는게 맛있다 (푸르메재단 엮음)
글 : 이지선
이지선 : 1978년에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화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게 된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는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삶을 위해 보스턴대학 대학원에서 장애인들
의 재활상담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지선아 사랑해》 《오늘
도 행복합니다》가 있다.
나는 문제 없어 / 황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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