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내 마음의 선생님

doggya 2010. 4. 4. 13:17

 

 

내 마음의 선생님

 

 

 

 난 중학교  시절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뜻도 모를 세

계사 연대나, 수학공식을 줄줄이 외우는 삶이 의미가 없어보였

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뻔한 시계바늘에 맞춰 살고 싶지도 않

았습니다. 소설책 읽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고, 친구들과 어울

려 노는 편이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성적이 엉망일 정도로 공

부를 못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

러나 국어 시간만큼은 늘 기다려졌습니다.

 

 김혜연 선생님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습니다.

이제갓 40대에 접어든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셨고 늘 자상하

셨습니다. 특히 선생님을 좋아한 이유는 수업 시간에 5분 정도

시간을 내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해주셨기 때문입

니다. 영화나 책 이야기를 하실 때도 있었고, 자신의 연애 이야

기 등 주제는 늘 달랐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재미에 푹 빠져 있

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은 모범생만을 편애하지 않으셨고 모든

학생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여태까지는 학

교 밖에서 선생님을 보면 피했지만 그날은 인사를 하고 싶었습

니다. 나는 "선생님!" 하고 부르며 횡단보도를 건너갔습니다.

내가 부르는 소리르 들은 선생님은 버스에 타지 않고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기다려주셨습니다.

 

 "왜 아직 집에 안 갔니?"

 

 "친구들이랑 놀다보니······."

 

 "너 집이 어디지?"

 

 "버스타고 세 정류장만 가면 되거든요. 소방서 앞이에요."

 

 "그렇구나. 참, 수업시간에 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학교 수업은 정말 재미없어요. 그 시간에 소설책 읽는 게

훨씬 재미있거든요."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지만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대학 가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왜 그런 말을 하니. 대학은 관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너의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가는 거야. 풍요롭게 산다는

게 부자로 산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선생님의 말뜻을 알기는 했지만 가난한 우리 집 형편에 대학

보내줄 돈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

지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만심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중학교 3학년 시절을 무사히 보

낼 수 있었습니다. 작은 사고들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선생님이

앞장서 나를 두둔해주셨고 나 역시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나 때문에 선생님이

가슴 아파하시거나 곤란해지시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

니다. 선생님은 내가 사고를 일으켰을 때마다 내 어깨를 다독

거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훈아, 네가 좋은 애라는 걸 안다. 난 너를 믿는다."

 

 몇차례 반성문을 쓰기는 했지만 그 역시 선생님께는 칭찬

거리였습니다.

 

 "너 반성문 잘 썼더라.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문장력이

뛰어나던데. 네가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을 텐데.

그렇다고 반성문 쓸 일 자꾸 만들지 말고."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물

론 내 잘못이 크기는 했지만 선생님들은 나를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윽박지르기 일쑤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배를 피우다 여러 차례 들켜서 정학을

한 번 당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대로 행동하다보니

 어느새 학교에서 손꼽히는 문제아가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기

도 싫었고 공부하기는 더욱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하교길에 나는 중학교 동창들의 싸

움에 끼어들었고 그것이 패싸움으로 번지는 바람에 경찰이 출

동한 큰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고

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내 중학교 동창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뺐다가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에 가보니 단순한 싸움과 돈을 빼앗은 행위는 근본적

으로 달랐습니다. 돈을 빼앗은 행위는 이른바 '노상강도' 였습

니다. 피해를 입은 학생들과 간단히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피해자 중 한 명이 돈을 빼앗을 때는 내가 현장에 없

었다는 증언을 해주어서 나흘 만에 혼자 풀려나오긴 했지만 문

제는 학교에서 더욱 심각했습니다.

 

 강경한 선생님들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유치장에 나흘이나

갇혀 있었던 나를 퇴학시키자고 주장했습니다. 몇몇 선생님은

내가 돈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싸움을 한 건대, 그걸 가

지고 퇴학까지 시킨다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을 냈지만 강경한

목소리에 묻혀버렸습니다.

 

 나를 퇴학시키는 일을 결정하는 상벌위원회가 열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수업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도서관에 앉아 있던

나를 담임선생님이 부르셨습니다.

 

 "너 김혜연 선생님 알지?"

 

 "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세요."

 

 "오늘 날 찾아오신다고 연락하셨더라. 어디서 들으셨는지

이번 사건을 다 알고 계시더라."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그날 점심시간이 지나서 김혜연 선생님은 정말 우리 학교를

방문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현관에서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하

시고 본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후에 학생부실을 나와서 나를 찾아오셨습니

다. 오랜만에 선생님 얼굴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다.

선생님도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

니다.

 

 "재훈아, 넌 좋은 애다. 선생님이 너 믿는 거 알지? 그만 가

봐야겠다."

 

 1년전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서둘러 학교에서 나가셨고 나는 학생부 주임선생님

께 불려갔습니다.

 

 "중 3때 담임선생님이 너 때문에 내 앞에서 우시더라. 그리

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재훈이는 1년 동안 교사로서 가장 흐

뭇한 보람을 느끼게 해준 학생이라고······."

 

 그때 사건은 선생님의 눈물 때문에 유기정학을 받는 선에서

끝이 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으

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끝까지 나를 믿어준 김혜

연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출처 : 한 달이 행복한 책 (유 린 지음)

 

 

                 하늘색 꿈 / 로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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