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눈물의 3단 찬합

doggya 2010. 5. 15. 18:15

 

 

눈물의 3단 찬합

 

 

 

4,50대 사람들에게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 대학 1년 때의 그 환

경 그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젊음은 무

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정말

보람 있게 인생을 다시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듣자마

자 'Never!' 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때의 생활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

기 때문이다.

 

 40대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지금까지의 고생 중에서 대학 생활

때만큼 고생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대학 입학금만 부모

님의 도움을 받았고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받은 기억이

없다. 등록금 및 생활비 등 모든 것은 내가 벌어서 충당했다. 입학한 첫

학기부터 생활고로 인해 눈물의 연속이었다. 그 고통이 직장에 취직할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당시 대학생에게는 불법이었던 과외를 하면서 지하철에서 신문팔이

도 열심히 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히 공부는 등한시할 수밖

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과외하

다 해고된 달은 돈 천원이 없어서 굶기가 다반사였다. 어떤 때는 3일 동

안 자취방에 앉아서 물만 먹은 적도 많다.

 "3일 굶고 남의 집 담을 안 넘을 사람 없다." 그 말은 정말 진실이었

다.

 

 객지생활에서 제일 서러운 것이 차디찬 겨울에 연탄  한 장 살 돈, 밥 먹

을 돈, 약 사먹을 돈도 없는 상황에서 배도 고프고 아파서 골골하면서 차

디찬 방에 혼자 누워 있을 때이다. 여기에 명절까지 겹치면 정말 서럽다.

 이 다섯 가지가 함께 하면 정말 외로움이 무엇인지 막막함이 무엇인

지 알게 된다. 대학 생활 7년 동안 딱 세 번 펑펑 운 적이 있었는데 한 번

은 견디다, 견디다 도저히 못 견딜 만큼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울었고,

두 번은 너무나 감사해서 울었다. 1992년 12월 31일 저녁, 이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학졸업반이었고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날

이었다. 남들은 신년을 맞이하는 즐거움에 취해 있을 시간, 나는 차디찬

자취방에서 몸져누워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불쌍해서 몇 장 준 연탄

이 떨어진지도 며칠 째, 나는 또 한 번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온 몸이 불덩어리처럼 타 오르고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대학 과 친구와 그의 여자 친구가 들어왔다. 내 사

정을 잘 아는 친구였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찾아 왔다면서 무엇인

지 꺼내어 앞에 내려놓았다. 3단 찬합이었다. 열어 보니 정성스럽게 싼

김밥, 유부초밥, 그리고 각종 맛깔스런 반찬들이었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차 한 잔 건네주면서 배가 고플 텐데 먹으라고···.

 

 김밥 한 조각을 먹고 씹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을 쏟고 말

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그때를 떠 올리자 다시 눈물이 난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고맙다는 말이 목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 친

구는 내가 먹는 동안 조용히 나가더니 약을 사 가지고 왔다. 밥 먹고 약 먹

으라고···.다시 한 번 내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짐을 했다. 평생 동안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

고. 매달 내 수입의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내고 매달 그 이상을 나 또는

가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쓰겠다고. 친구가 가져온 3단 찬합은 평생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그때의 다짐을 실천하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출처 :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글    : 김홍진(1966년생, 선물회사 영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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