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호인7님의 여행

일요등반회 서울 남산등반 2

doggya 2018. 8. 26. 20:59



                                             일요등반회 서울 남산등반 2

                                                                                 Dr. 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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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mens 18.08.20. 13:34
오준은 위아래 길 다 걸었네.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들르셨나요? 동상도 멋진데...
 
 
clemens 18.08.20. 13:54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진처럼 지금 하이아트호텔에서 안중근기념관(옛 신사자리?)으로 직선으로 통하는 넓고 완만한 돌계단이 있었습니다.
중앙청을 과감하게 때려부순 03대통령에게 호감이 엇갈리는 것과 같이, 치욕의 자취를 부순다고 그 치욕의 역사가 없어지는 것인지 이걸 보면서도 같은 느낌이 가끔듭니다.
오히려 그걸 보면서 각오를 다시 하는 계기로 삼도록 하는 게 좋은 건 아닌지?
 
 
Dr. Gold 18.08.25. 18:02 new
남산은 조선 8도 사방의 봉수가 다 모이는 안보의 혈맥입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서 남산을 보아도 사통팔달하는
사정을 알 수 있지요. 여기에 일제가 만들어 놓은 신사를 그대로 놓아 두는 것은 콧잔등에 파리를 올려놓은 것 만큼이나
불편하고 불쾌하겠지요.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학교 호사카 유지교수는 <<우리역사 독도>>(2009, 성안당) 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보면
일본의 천황들은 백제나 신라에서 섬으로 들어간 백제계나 신라계 사람들이 많앗다고 하지요. 백제가 부흥운동을
벌일 때, 일본의 여자 천황은 백제 의자왕의 누이동생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Dr. Gold 18.08.25. 18:23 new
일본에서는 백강(금강 어구 )전투에 2만 7천병 이상의 원군을 보냈다지요. 그런데 당군은 훨씬 큰 배에 여러 공격
기계를 구비하였습니다, 당시 수전은 뱃머리를 부딪혀 적선을 파괴하는 당파작전 위주였기에 高大한 당선이
우세하였지요, 게다가 왜군은 썰물때 해안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배가 금강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선의 공격을
받아서 대패하고 말았지요. 그후 백제부흥군은 일본에서 돌아온 의자왕의 아들 풍을 중심으로 내륙의 성을 지키며
싸웠으나 내분으로 항복하지요.
그후 일본은 전국시대로 발해를 거쳐서 당에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으나, 울릉도나 독도에 미칠 세력도 없었다고
하지요.
 
 
Dr. Gold 18.08.25. 18:18 new
그후 일본은 몇백년간 대륙의 변화에 개입하지 않았죠. 이런 후진국이었던 나라의 신사를 수도의 콧등에 올려놓고, 와신상담할 필요는 없겠지요.
대마도는 원래 고려시대에 경상도에 속한 땅으로 마도라고 불렀죠. 위 책에 보면 대마도주 소(宗)씨도 금관가야에서
간 사람이라고 하지요. 대마도는 90%가 산지로 식량이 부족해서 한일간의 무역으로 생업을 삼았죠. 조선 세조때는
조선에 속하기를 맹서해서 조선에서는 앞으로 경상도의 지시를 따르라고 하였다는 사실이 실록에도 나오죠.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침입한 왜인들을 쫓아서 독도를 거쳐 일본 덕천막부에 들어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확인 받고 오죠.
 
 
Dr. Gold 18.08.25. 18:46 new
당시 대마도에서는 경지가 부족하니, 을릉도의 경작권을 허락해 달라고 조선정부에 간청하죠.
그러나 이것을 허락하면 장차 울릉도까지 왜구의 소굴이 되기 쉽다는 원로대신 윤지완 등의 의견에 따라서
거졀하였죠. 결국 일본인들은 일시 약탈을 위해서 울릉도 등에 침입하는 정도였죠. 강원감사는 도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도민의 쇄환을 건의하죠. 정부에서는 空島정책을 썼으나 약 2~3년마다 수토사를 보냈고,
영토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고지도는 약 8세기경 백제에서 간 사람이 그려준 것이 통용되었다죠. 거기에는 큐슈, 시코쿠,
혼슈 같은 일본 본토만 표시되고, 북해도나, 을릉도, 독도 방면도 없었죠.
 
 
Dr. Gold 18.08.25. 18:45 new
대마도도 일본영토가 아니었죠. 해방후 이승만대통령이 대마도도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죠. 동해도 조선해라고 표시되어 왔죠.
미국 프린스톤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할 때도 섭렵해 본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조선전기에 일본 배들은 돗자리 짜는 풀로 만든 돛을 달고 항해하고, 임진왜란 때도 일본배들은 섬에서
다른 섬으로 운송하는 정도의 약한 배로 편성되었습니다. 조선과 같이 대규모의 판옥선단이 통수권자의
지휘를 받아 작전하는 수전개념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