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성북동 성락원♧

doggya 2019. 6. 12. 12:05

인생이라는 여행길에는...
쉬어갈 곳이 굉장히 많다.
쉬어갈 곳을 만나면...

조급해하지 말고 충분히 쉬어가라.
항상 모든 짐을...
죄다 둘러메고 있을 필요도 없다.

오늘은 오늘의 짐만 짊어지면 된다.
우리는 초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힘과 능력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 내일의 문제를...
오늘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라.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기고...

어제의 걱정은 어제에 버려두어라.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만이...
당신이 충실해야 할 유일한 시간이다.

♧성북동 성락원♧

#성락원  겉모습만 구경하다 

성락원이란  이름은  도성밖   자연의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의미를  담아   심회장이

지었다고합니다


성북구 성북동 1번지 일대 마을로서, 조선 철종 때심상응 이조판서를 지낸  별장인

 성락원이 있던 데서 인근 마을 이름으로 유래되었다

 성락원 명칭은 항상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잘 가꾸어진 정원 등으로 마치 별세계・

낙원에 들어선 듯한 감흥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여기가  어디인가  하면 바로 성락원입구입니다    

비밀스련  정원이라고합니다  

그리고   해외 중요 인사  시진핑   오바마  도  정치인들 모임도  하는 곳인가 봐요  

200년넘게   베일에  싸여있다가    얼마전에  한시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  

19세기  심상응의정원으로   사용   됬었고 

고종의다섯째아들이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저로   이용    했다고합니다 


1790년대    조성대지금까지   개인소유로  남아 일반인에게  공개된적이 

 없는 서울도심의 비밀정원이래요 


오잉 그련데  조금전 실시간 뉴스가  뜨네요  실제주인은  의친왕이  아니랴고요 

궁금해서   검색한 자료입니다  아랫 참고해보셔요 ㅎㅎㅎ

맨앞에는  성락원  적혀있어요

명승 35호 시대조선말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번지

본문 아래에있는 검색한 자료와비슷하게 

자연연못도  있고  후원연못도  있고 송석정 누각 형정자도  있다도  적혀  있었어요  

제얼굴이  반사되어서   사진  은 생략  ㅋㅋㅋㅋ하도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해서요 




실내가  내부가 엄첨궁금했으나   에약을 해야만   들어갈수 있나봐요

월화 토요일  주3회 하루   7회   인원도  제한하나봐요   

성락원  1790년대   황지사라는 분이 처음조성 


19세기  철종   재위시절  이조판서를 지낸 심 상응의정원 

일본 강점기에는 고종의아들 의친왕이  35년간 별저로사용  

의친왕의   기거한건물은 남아있지않다고합니다  

심상응의   후손인  고  심상준 제남기업회장1950년사들였다고  한다 

관람료는   한국 가구 박물관 사전 에약하며  \10000원이라고   합니다 

 

성락원  설명를하다가    민감한지    별다른이야기도하지 않고  저기보이는곳이

성락원이고   어이없게  쫓겨나는   헤프닝도  경험했어요   

정말  비밀이 많은  곳인가 봐요   하하하 








성락원


내용

명승 제35호. 지정 면적 1만 4407㎡. 성락원은 뒤에 산등성이를 등지고 좌우에 청룡·백호의 산줄기가 벌려선 형국에 자리잡고 있다.

성락원 입구에 들어서면 두 줄기 계류가 하나로 모이는 산문(山門) 같은 계곡이 있으며, 여기에 ‘雙流洞天(쌍류동천)’이라는 글자가 계류 암벽에 새겨져 있다.

쌍류동천 안으로는 용두가산(龍頭假山)을 만들어 성락원이 밖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 용두가산은 성낙원 내원(內園)을 아늑하게 감싸서 깊이를 주기 위해 만든 인공조산(人工造山)으로 200∼300년 된 느티나무·음나무·참나무 숲이 울창하다.

내원에는 계류의 암벽 밑에 소(沼)를 조성하였다. 이 소는 장축이 16m, 단축이 약 12m이며, 물 깊이는 약 1.5m이다. 소의 주위는 자연암벽과 암반으로 이루어졌는데 물이 흘러내리는 북쪽 암벽에는 인공으로 수로를 파고 3단의 폭포를 조성하였다.

제일 위의 폭포는 낙차가 15㎝로, 직경 30㎝, 깊이 15㎝의 둥근 석구(石臼: 돌절구)에 떨어진다. 중간폭포는 낙차가 30cm로 역시 같은 크기의 석구에 떨어진다.

제일 밑단의 폭포는 낙차가 150㎝로 가장 큰데, 직경 80㎝, 깊이 20㎝의 석구에 떨어졌다가 소 속으로 넘쳐 흘러들어간다. 폭포로 떨어지는 3단의 물줄기는 생동감 있는 수경(水景)을 연출하고 고요한 계곡에 요란한 물소리를 낸다.

이 폭포 옆 바위에 ‘靑山壹條(청산일조)’라는 전서체 각자가 있으며, 소의 서쪽 암벽에는 행서체의 ‘檣氷家 阮堂(장빙가 완당)’이 새겨져 있는데, 장빙가란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린 집이란 뜻으로 김정희(金正喜)가 썼다.

이 장빙가 각자가 있는 암벽 위에 “影碧池 海生(영벽지 해생)”, “百泉會不流 爲沼碧闌頭 自吾得此水 少作江湖遊 癸卯五月 孫文鶴書(온갖 샘물을 모아 고이게 하니 푸른 난간머리에 소가 되었네. 내가 이 물을 얻은 뒤부터 약간의 강호놀이를 하네. 계묘 5월 손문학 씀).” 이라는 각자가 있다. 영벽지란 세 글자는 초서체로 썼으며, 해생이란 호를 가진 사람이 오언시를 해서체로 쓴 것이다. 계묘는 1843년(헌종 9)으로 추정된다. 이로써 성락원의 소의 명칭이 ‘영벽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영벽지 각자 위의 바위에 전서체로 내리쓴 또 하나의 각자가 있는데, 원문은 “明月松間照 靑泉石上流 靑山數疊 吾愛吾盧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 맑은 샘물은 돌 위에 흐르며 푸른 산이 몇 겹 싸여 나는 내 농막을 사랑한다).” 이다.

영벽지 소 속에는 괴석 하나를 물 속에 배치하여 놓았으며, 이 영벽지 동쪽 언덕 위에 변형된 고가 한 채가 남아 있는데, 이 집은 원래 농막의 본채로 이강(李堈)이 살았다 한다.

이 집에서 숲 속의 돌계단을 오르면 또 하나의 못[池]이 영백지 위에 있다. 못 동쪽에는 근래 지은 ‘송석정(松石亭)’이란 누(樓)가 있으며, 못 북쪽 계류가에 ‘松石(송석)’이란 각자가 있어 원래 이 못가 바위 사이에 큰 소나무들이 울창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못으로 흘러내리는 계류는 중간중간에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며, 상류에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집수하는 기능의 못이 하나 더 있다. 성락원은 산의 계류를 이용하여 상·중·하에 세 개의 연못을 만든 곳으로 성락원 내에는 좋은 샘물도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오염되었다.


출처   한국 민족 문화대백과사전 발췌


우리에게  멋진 축구소식도 들려주는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16강에서     8강   그리고  4강   그리고 결승전  u20 월드컵 결승 진출


(이사진은 친구가 보내온사진입니다   다들 축구에  미쳤나 봐요  ㅋㅋㅋㅋ

내포스팅한것 알면  친구가  기절하려나 ㅋㅋㅋㅋㅋㅋㅋ


헐   ~~~~~~~~~~~~대박이다  그럼 뭐여  주인이  또바뀌는 것이여  


하지만 축구 소식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수요일  아침입니다 



2019년   6.12수요일 

성락원 / 사진=연합뉴스

                    입력 2019.06.12. 09:39

전통 정원인 명승 제35호 '성락원'(城樂園)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은 문화재청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받은 자료를 검토한 결과, 철종(재위 1849∼1863) 대 이조판서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확인됐다고 오늘(12일) 밝혔습니다.

김영주 의원실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1992년 8월 문화재위원회 회의록과 1994년 5월 발간된 자료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성락원이 심상응 별장으로 기재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승정원일기 1898년 2월 22일 '경기관찰부 주사 심상응을 임명함'이라는 한 건의 기록을 찾았다"며 "시간적 격차나 지위를 고려하면 심상응이 철종 시기 이조판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승정원일기 철종 대 '이조판서' 검색어로 기사 1천84건이 검색되나, 모두 '심상응'과 관련이 없다"며 "조선 철종 시기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은 자료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김영주 의원실 관계자는 "성락원 명승 지정 근거 중 하나인 '이조판서 심상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역사적 오류는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