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창덕궁고궁 투어(인정전 .선정전 .금천교)

doggya 2019. 12. 26. 01:29

♧창덕궁고궁 투어(인정전 .선정전 .금천교)

#그녀의 여행기
#자작글

*입장료 ₩3000원
*일행 4명

창덕궁 전각 일부분과 창덕궁 후원 해설사 설명을 들의면서 한시간정도
투어 하고

창경 궁 대온실 겨울속의 봄을 만끽하고
춘당지 구경 하지만 계절관계상
아름답다던 단풍대신에 얼음이 얼어

있는 춘당지 감상하며 그래도 붕어임지
잉어도 만나고 잘생긴 야생 고양이


인지 주인이 있는지 고양이도 만나고 보기 힘든 백송도
보고 창경궁 한바퀴 돌고서 역사의


현장 돌아보고서 또다시
창덕궁 방향으로 되돌아온길을
돌아오면서 듈려보지 못한 인정전

일대와 금천교를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설명은 사진보고 할께요




자 ~~구경은 잘하셨어요
언제 어느때 고궁은 관람해도 아름다워요 궁금하신분은 직접 관람하셔요


#인정전 

문이황금색   위엄 을 상징한다고합니다 


인정문 

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과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인정전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창덕궁  홈페이지서 발췌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정전이며  왕의즉위식   신하들 하레 외국사신접견  중요한 국가의식을 치르던곳 

기쁨과  슬픔을함게한  공간  임금님이 떠나시고  새로운 임금님즉위식 

인정전내부에는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일월 오약도   병풍이있고 

병풍은   해와달   임금님과 왕비 상징  5개의산봉우리는 동서남북중앙 다섯산 국토를 상징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이치에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이라고합니다 

참고로   유리창을  비롯하여   전구나커어튼  서양장신구설치되어있는구한말 수교후   오래문물이  들어오고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   창덕궁으로  이어한후에   인전전의 실내바닥이 전돌에서  바뀌고  전구가 

설치되는 부부적인 변화  5대궁에서    처음으로  전기가들어온곳은 1887년 경복궁이라고   합니다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正殿)으로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접견 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앞쪽으로 의식을 치르는 마당인 조정(朝廷)이 펼쳐져 있고, 뒷쪽으로는 북한산의 응봉으로 이어져 있다.

2단의 월대 위에 웅장한 중층 궁궐전각으로 세워져 당당해 보이는데, 월대의높이가 낮고 난간도 달지 않아 경복궁의 근정전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다.
인정전

인정전은 겉보기에는 2층이지만 실제로는 통층 건물로 화려하고 높은 천장을 볼 수 있 다. 바닥에는 원래 흙을 구워 만든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지금은 마루로 되어있다. 전등, 커튼, 유리 창문 등과 함께 1908년에 서양식으로 개조한 것이다. 인정문 밖 외행각(外行閣)에는 호위청과 상서원 등 여러 관청들을 두었다.
1405년(태종 5)에 창덕궁 창건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1418년(태종 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 2)에 재건, 1803년(순조 3)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복원해 현재에 이른다.
외행각 일원은 1991년 이후에 복원했다. 인정전은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홈페이지서발췌




인정전내부에는   임금님의 용상이  있고  일월 오약도   병풍이있고 

병풍은   해와달   임금님과 왕비 상징  5개의산봉우리는 동서남북중앙 다섯산 국토를 상징 

임금이  중앙에서 사방을  다스리고   음양의이치에따라  정치를   펼친다는 뜻이라고합니다 

사진들은 저번에 고궁탐방했을때찍은사진입니다 

용상과  일월도 

임금님   해   왕비   중전마마달

다섯개의   산봉우리 폭포 파도   소나무가 

 그려져있다고합니다  가운데  봉황한썅

천장에   봉황이있다고 합니다   





#인정문   현판



#인정전

인정은 

어진 정치를  뜻한다고합니다 

#인정문

국왕의    즉위식이  거행된장소   왕세자는   앞임금이  별세한 궁권 (빈전에서  왕의빈소에서 옥쇄를  박고 

그궁궐의  정전이나   정전 정문에서  즉위  

임금님이     별세할경우   다음임금은 인정전이나  인전문에서즉위 

즉위식은  주로  인정전보다  인정문에   많이치워졌다고합니자  

더욱더자세한것은  앞면에 설명한인정전  읽어보셔요 

#광범문

광범문은  임금이평상시에  거처하는  편전인 선정전  을 비롯한 

창덕궁위 동편에위치한 건물과 

인정전을 왕래할수  있는 문입니다   

광범이란  규범을빛낸다   뜻을 의미한다고합니다

  

현판은  일제때  왜식으로 변경된  인정전   

 주변행랑을  원상회복하면서    새로제작하였다고합니다  

@이한문도   가운데글자몰라서 울며느리에게물어봐서 알게되었다

이제는 고궁  투어하면 어느정도   현판  한문이   눈에  익숙하게  들어와서

읽을수   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외국문물 이들어오고    전등 커어텐

우리나라가  이웃 일본 중국보다   전기가 먼저들어왔었되요 에디슨에게  

 고종이신하를 시켜    편지를 보냈데요 조선


의궁궐에  전기불을 설치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데요

에디슨이   감격해서   기술자시켜서 

 1887년3.6일 경복궁 건청궁 연못 향원지에 두개의작은 공모양의유리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전기가들어왔데요   그당시  도깨비불이라고했었되요

향원정에서  물을끌어들어 물에서 불이나온다하여   ㅋㅋㅋ

지금   우리가  전기가없다면  그어떤것도   할수없는   세상에  우리는  사나봅니다

절전하여 전기를 아낍시다   전기의고마움을 알고요


경복궁 건청궁 안뜰 고종황제의   어명으로

 경복궁에 750개 전등을가설 점화하고 점등해었고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발전소는   고종황제에 의해 건립되었다고합니다

 (내용 한국 전기 안전공사 에서검색한자료





저뽀족한 것은 새들이   배설물을     싸지말라고     뽀족하게  

해꼬지라는  설명을 들은것 같으네요   해설사가이드선생님에게 서요 

해꼬지도    말도 거기서유래하고요   새들의똥꼬를 찌르게   앉마라고 

조상들의  지혜라고    한것같네요 


#드므    방화수를  담는 용기 



#약방

  약을  짓는 방이라고합니다


궁중의    의 약을 담당했던   곳  

약방은   인정전서쪽에   임금의병을가까이서  치료할수있도록   


내의원(內醫院)으로서 궁중의 의약을 담당했던 곳이다. 내국(內局)·내약방(內藥房)·약원(藥院) 등으로도 불렸다. 태종 때 내약방으로 설치되었다가 1443(세종 25)년부터 내의원이라고 했다. 약방은 인정전 서쪽 행각에 가까이 있는데 이는 임금의 병을 가까이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의원을 내의사(內醫司), 궁 밖에 있는 의료 기관인 전의감(典醫監)과 혜민서(惠民署)를 외의사(外醫司)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약방의 역할을 나타내는 ‘調和御藥(조화어약)’, ‘保護聖躬(보호성궁)’의 현판이 현재는 옛 성정각(誠正閣)의 남쪽 맞은편 건물에 붙어 있고 약절구도 그 마당에 있다. 그래서 지금은 일반적으로 성정각이 내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순종(純宗, 1874~1926년) 때 창덕궁이 개조되면서 내의원이 헐리고, 현판들과 의약 도구들이 옮겨졌다고 하는데, 단순히 도구들만을 옮긴 것이 아니라 이 때 성정각이 내의원의 기능을 맡게 된 듯하다. 현재의 건물은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문화재청에서  발췌 )

 





후궁은 백날 가도    첩이나  나중이란 뒤란듯입니다

*정비를 원비 

* 다음중전마마를  계비  

*후궁은  뒤이어서   조선의  후궁들이  지낼수 있게  경치가 아름다웠다는설명 


불과몇달전만해도   용담이이부게피었던데요    휑합니다  ㅋㅋㅋㅋ



궐내각사  권역 

왕실의   여려관청   밀집되어있다  






가운데는  왕 이  걷고 양옆으로는 문관과 무관이 걸었다고합니다 

궁궐에는  유난히쪽문이  많은데  

민비가 명성황후 ) 도망갔던 문  쪽문  단봉문  이라고합니다  


고궁중에    유일하게 청기와건물이라고합니다  

조선의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아니라 신하의  나라 

임금님은 어진정치를   하랴고

했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합니다 

요즘   천날만날  국회에서  밤낮주야로  언쟁하는것 보면은요  

여려차례설명햇지만   청기와건물은   창덕궁   으뜸편전 

왕과산하가  정무를  보던 곳입니다  

#선정전 

선정전 (宣政殿, 보물 제814호)

선정전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곳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뒤편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이곳을 혼전(魂殿,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보물 제 8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발췌 )





고궁  땅  발자국소리가 작은  쥐새끼소리도 

   들린다는 화강암 깔려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구중궁궐에   누군가가   침입해도 


 작은 발자국소리도  들린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대궐이란   (궁궐이란  )임금님과  왕족이 살고  생활과  복합적인 공간 

우리보고  걸어오면서  무슨소리  안들었느냐고  그려고보니  움직일때마다


사각사각   모래 밟는  느낌   그래서 넘어지거나  까지면  상처도난답니다 

모래밭에서는요   ㅋㅋㅋㅋ

그리고  정치를  한곳이   궁궐이라고    합니다  

블로그에서   이동한글입니다  



#백송   멀리서보아도  훤하게  보여요  

하얀나무에  푸른잎이  너무  신기했어요 


창경궁 춘당지 옆에 백송 3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수령은 100년 정도이다,

 멀리서 보아도 하얗게 빛나는 모습이 과연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백송은 중국 북경 부근이 원산인데, 사신들이 오가며 가져다 심은 것이


 우리나라의 백송이고,번식력이 약해서 수가 적고 귀해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고사하거나 

가치 상실 등으로 해제 된 것을 빼고나면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송은 단 5그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창경궁의 백송 3형제는 천연기념물 미지정 백송이고,

 현재 남아 있는 천연기념물 백송은 서울 재동백송과,

수송동백송, 경기 고양시의 송포백송,충남 예산의

예산백송,경기 이천시의 이천백송인데 수령이

 200년~600년으로 재동백송이 가장

오래 된 백송으로 알려져 있다고합니다


여기는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올라오는   계단입니다 


금천교를  지나서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돌다리랴고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돌다리랴고합니다   



#금천교(錦川橋)(보물:제1762호)

금천교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 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明堂水)위에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의 명당수, 즉 금천(禁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물가에는 화강석 6∼7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축대를 설치하였고, 여기에 금천교를 설치하여 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태종 11년(1411)3월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규모는 의장(儀杖)을 갖춘 국왕의 행차 때 노부(鹵簿)의 폭에 맞도록 설정되었으며, 상면은 길이12.9m, 너비 12.5m로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넓다.

구조는 하천 바닥의 중앙과 물가에 놓인 기반석을 토대로 홍예를 2개 튼 형식으로 물가의 축대는 부벽(扶壁)구실을 하고 있으며, 홍예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을 얹었다. 다리의 상면은 불룩하게 곡면으로 만들고 바닥을 3칸으로 구분하여 칸마다 장대석을 고르게 깔았으며, 다리 가장자리에는 그 위에 동물상을 조각한 이주석이 세워져 있다.

난간은 머리 부분을 연화보주형(蓮花寶珠形)으로 장식한 법수와 그 사이에 세운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석은 하엽동자기둥(荷葉童子柱)모양의 부조를 중심으로 2칸으로 분절되었고 칸마다 안상을 투각하여 놓았다.

법수 밑에는 멍엣돌 위치에서 돌출된 석재에 짐승머리모양을 환조(丸彫)로 조각하였다. 다리 측면의 홍예 사이 벽에는 귀면형(鬼面形)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의 홍예 기반석 위에는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이상 등 환조로 만든 동물상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금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궁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 등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발췌 )         





유일하게   창덕궁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고합니다 

궁궐전각과   후원 해설사   동행시간표입니다  

참고하십시요 



돈화문을 거쳐서    관람잘했습니다   

아마 소요시간은   4시간정도   투어같은것 같습니다  

미흡하지만  구경은 잘하셨나요  

다음에는 또다른곳을   가게된다면  보여  드리겠습니다 


2019년    12.19 목요일   창덕궁 창경궁  고궁을  다녀오고나서  

*내가찾아간 방법  

*대중교통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도보가능  

*고궁투어를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