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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 궁 건청궁 향원전♧
일대를 보여 드릴께요
건청궁(乾淸宮)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설명을위하여 모셔온 사진임을 밝혀둡니다
굴뚝 같죠
경복궁 홈페이지서 발췌
향원정 그림입니다 공사중이었습니다 대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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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경복궁 홈페이지서발췌 |
#봉양문
함화당과 집경당들어가는 문은 여려개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향명문 진덕문 응복문 창무문이 있다고 합니다
#집경당
문헌에 의하면 함화당과 접경당은 고종 27년인 1890년에 지여진 건물로
고종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였고 일제하에는 조선 총독부가
미술관 사무실로 사
사용 했던 곳으로 2009년 1월에 복원을 끝내고 공개가 된 곳입니다.
경복궁이 창건되고 점차전각들이 들어서게되면서 경복궁 교태전북쪽에는
많은전각들이 건립
집경당 향원정 남쪽에남은 전각이며 경복궁 내전 침전으로 사용된건물
#관명문 밝은빛을 살핀다는 뜻 (밝은빛이땅속으로 들어가는 본다는 뜻이다 )
서쪽문이므로 땅속으로
해가지는 모습에서 명이괘의 교훈을 살린것으로 보인다
장안당의 뒤편 서쪽담에 난문 필성문과 취규문의 중간에 위치 하고
관문각과통하던문이다 2006년 복원당시 서양식의 건물인 관문각은 복원하지않았다
궁궐에는 참많은 괴석과 석물들이 많군요
경복궁에서도 교태전후원과 아미산 정원에괴석이 있다고합니다
그련데 어디서 찍었는지 저도 헷갈려요 ^-^
#성화당
인줄알았는데 아닌걸로 나오네요
#함화당 ;함화는 모두가 화합한다는 듯이다
서경에나오는 아름답게 부드렵게 아름답게 공손하시어
백성들을 품어 보호하시며
홀아비와 과부 들에게은혜를 베풀어 생기가 나게하며
아침부터 낮과 저녁에
이르기 까지한가한 밥먹을 겨를도없이 보살펴
만백성들을 화합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하였더
집경당의 서쪽에 있다
#장고
#예성문 ~의식을 마무리함 듯이랴고합니다
위치 태원전 장고로 들어가는문
1867년고종4년 만들고 경복궁 중건당시 만들어으나
일제강점기훼선 2005년 태원전 복원공사와함께복원
#
#팔우정 (집옥재서측에세워진 부속건물 로 고종의 서고 )
#집옥재(고종의 서재 )
1876년 경복궁 불이나자 고종은창덕궁으로 이어햇다가 1
885년 다시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건청궁에서 생활했습니다
집옥재월대에도 삼중계가 설치되 어있어 삼중계는 어칸의삼부쪽으로 용판석이 설치되고 양측면과 어칸좌우에 소멧돌에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는 서수를 두어건물의 격을 높이고있습니다
원래 집옥재와 부속 건물들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는 없던 건물로 고종 28년에 창덕궁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집옥재는 창덕궁의 주합루와 규장각처럼 어진(왕의 초상화)과 책들을 보관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집옥재에 보관하던 책들은 4만 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집옥재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궁궐의 전각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건축 기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로 지은 모습을 양쪽 벽을 통해 알 수 있다.
#협길당 ;동옥재 동측으로 위치한 협길당은 단층의 팔작집 건물
우리나라 전통적인 건축의장으로 지어져있는 건물이라고합니다
대대적인 공사중이었습니다
#
필성문 ;서쪽에서 장안당으로 들어가는 문 이다
필성은 도와서이룬다는 뜻이다 벽돌로 만든월문이며 글씨는 돌에 새겼다다
여기도 정원에 석물이 있었어요
#추수 부용루 (장안당 서쪽의 누각 )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경복궁 홈페이지서발췌
(추수부용이란 가을물속의 연꽃을뜻한다 )
#장안당 ~오랫동안 평안하게지낸다는 뜻
정원에 앞마당에매화나무
일월오봉도 (고종이 집무를 보았을 마루의 )
#초양문
처음을 나타내는 양으기운을 뜻한다
아침해 혹은아침햇살 도동지에서 입춘이전까지 시간을 초양이라 부르기도
초양은이른봄
글씨는 청나라 옹방강의 글시를집지
오른쪽 복초제 왼족아래는 담계라는 낙관 새겨져있는데 둘다 옹방강의 호이다
#함광문 :공녕합으로 들어가는문
함광은 만눌을 포옹하여 공화가 빛난다는 의미
빛을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
미덕을 몸에지니고 드려내지 않는상태 지극한 덕을
지니고 있음을 비유할때의표현이다
#곤녕합 (땅이편안하다 뜻이라고합니다 )
주역에서 지도 처도 신도를 상징 곤은 유슨함을 설명
왕비가 거처하는 이름에 활용
명과 청의궁궐에도 황후가 거처하는 곤녕궁 이있다
글씨는 고종어필이며
왼쪽아래에는 주연지보 만기지가 라는 낙관도 전서 새겨져있다
왕비가 거처하던공간이다
한편이곳은 고종32년 (1895년 )8.20일 일본인과 훈련대에의해새 명성홯후가시해된곳
궁내부대신 이경직 공년합기둥에서살해당하였고
연대장 홍계훈은 광화문 밖에서 살해 당하였다
'예'예성(禮成)'은 '의식(儀式)을 마무리함'의 뜻이다성(禮成)'은 '의식(儀式)을 마무리함'의 뜻이다
명성황후생활공간
#사시향루 ~사계절끊이지않고 꽃향기가 풍긴다는 의미이다
주련은
*왼쪽 맥상 요준 경북두 ~밭두둑의 요임금 술잔은 북두를 기울게하고
*오른쪽 누적 순악동 남훈 ,;누각앞의 순임금 음악은 남족훈풍 불어오게하네
#옥호루
곤녕합과 붙어있는 누각
명성황후가 상해된장소 알려져있다
1895년 음력 8월20일 일본공사관직원 일본군꺙패 난입해 왕후를 찔러죽이고
녹산 (건청궁 동쪽)시신마져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르다
이것이 명성홯후 시해 살해사건 을미사변이다
돌배나무
#녹금당
복수당에 딸린부속건물로
온돌방과 창고방을 둔 궁인들의 처소로 짐작 된다고합니다
#정시합 ~곤녕합 두ㅣ쪽의침방
왠지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고 생각하니 씁슬하고 썰렁합니다
고궁이 한산하기만 합니다
#정화당 희미 하게 잘 안보이지만요
: ‘정화(正化)’란 ‘올바른 교화’ ‘계통이 바른 교화’를 뜻한다. 한나라 종리의(鍾離意) 2)의 『답부기(答府記)』에 나오는, “올바른 교화의 근본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며 먼 곳으로 미치는 것임을 밝혔다.”<원전 5>라고 한 데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정시합 ; 정시는 처음을 바르게한다는 의미
여기서 처음을 바로잡는것은 인륜의시작은 부부관계를 바로잡음으로써
가리키는것으로 집안을바로잡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야한다는 뜻이다
#녹금당
;녹금이란 녹색의 거문고 란뜻
푸른숲이 내능아름다운 소리를 거문고소리에 비유한것이 다
#복수당
정확하게잘모르나 용도를
왕세자 유모상궁 처소 수라간 여성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자선당
왕세자와 왕세자빈 처소
어진성품을 기린다는 뜻이랴고합니다
자선당(資善堂)
사정전 동쪽편에 위치한 자선당은 동궁으로서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된것을 1999에 복원한 것으로 동궁 전체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선당과 비현각만 복원되었다.
동궁은 국왕이 아닌 까닭에 '전'이 아닌 '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자선당은 앞면 7칸의 건물로 서쪽에 세자와 세자빈의 침실인 2칸의 방이 있고
동쪽에는 가구들과 물건을 보관하던 곳으로 보이는 방 2칸이 있다.
동궁은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한 분위기를 하고 있으며 자선당 추녀마루에 잡상이 있다
자선당(資善堂)
사정전 동쪽편에 위치한 자선당은 동궁으로서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생활공간이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된것을 1999에 복원한 것으로 동궁 전체를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자선당과 비현각만 복원되었다.
동궁은 국왕이 아닌 까닭에 '전'이 아닌 '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자선당은 앞면 7칸의 건물로 서쪽에 세자와 세자빈의 침실인 2칸의 방이 있고
동쪽에는 가구들과 물건을 보관하던 곳으로 보이는 방 2칸이 있다.
동궁은 규모가 크지 않고 소박한 분위기를 하고 있으며 자선당 추녀마루에 잡상이 있다
| 자선당은 일제강점기 때 경복궁 철거에 앞장섰던 오쿠라가 일본의 자신의 집으로 옮겨서 ‘조선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설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이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은 자리에 오쿠라호텔이 들어섰다. 호텔 정원에 버려져 있던 기단과 주춧돌은 1995년에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 왔으나 화재로 인해 훼손되어 자선당 복원 때 쓰이지 못하고 건청궁 동편 녹산에 보존하고 있다 |
경복궁 홈페이지서 발췌
#청휘문
맑은 빛이란 뜻이라고합니다
해와달의 밝은빛
#응복문
저뒤로 민속박물관이 보입니다
모처럼 건청궁 일대까지 관람했습니다
나중에 또방문하면 도새로운 느낌이겟죠
미로처럼 문도 많고 전각도 많고 경복궁 일대를
걸으면서 또다시 배워 봅니다
디음에는 국립민속 박물관을 보여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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