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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머리 정승

doggya 2010. 4. 24. 11:38

 

 

돼지 머리 정승

 

 

 

 조선조 성종 5년, 경상도 성주 고을에 돼지 머리 형상을 한 장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60이 넘었는데도 아이가

없어 늘 금화재에 치성을 드린 결과 부인이 태기가 있어 한 아이

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이 너무도 돼지를 닮았

습니다. 얼굴은 유달리 검고 눈은 지나치게 작은 데다가 입은 툭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늙은 내외는 금화재 정기를 타고

났다 하여 감지덕지 애지중지 길렀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순손이

라 지었습니다. 그런데 순손은 얼굴이 하도 못생겨 돼지 머리를

한 장가라고 놀려댔지만 머리는 영특해서 네 살 때 이미 사서삼

경을 외우고 16세에 천문지리에 통달하였으며 19세에 세상의 음

양의 이치까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같은 고을에 사는 지체 높은 양반에다 부자

인 김 좌수가 자기의 아리따운 무남독녀인 금옥이를 순손에게 시

집보내겠다면서 매파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장 노인은 즉시

결정을 하지 않고 뒤로 미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김 좌수나 장

노인 모두 머리가 돈 게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그처럼 못생긴 사

내에게 예쁜 처녀를 시집보내려는 김 좌수도  머리가 돈 것이고,

또 그런 좋은 혼처를 두고 망설이는 장 노인도 미쳤다고 하였습

니다. 그렇게 미루기를 여러 달, 마침내 김 좌수댁의 끈질긴 구혼

에 장 노인도 승낙하였습니다. 성대한 혼인식을 치른 후에 순손

과 금옥은 마을 사람들이 비웃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혼 첫

날밤을 돼지우리 옆 건초 더미에서 잤습니다.

 

 그처럼 별난 일을 하던 순손은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등

극하였을 때 과거령이 내려 과거를 보았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

이 순손이 장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장원을 한 순손

을 보자 그 못생긴 얼굴 모습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무슨 벼슬

을 원하냐고 물었습니다. 순손은 성주 고을로 보내 달라고 하

였습니다. 연산군은 껄껄 웃으며 즉석에서 성주 고을의 원님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장원 급제하면 조정에서 일을 보게 하거나 암행

어사를 시키는 것이 관례였는데 워낙 얼굴이 못생겨서 가까이 두

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향 성주 고을의 원님이 된 순손은 누구보다도 고을을 잘 다

스려서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채

청사가 내려왔습니다. 채청사란 폭군 연산군에게 아름다운 여자

를 골라 바치는 직분이었습니다. 장순손은 채청사의 명을 듣지

않았습니다. 고을 양민들의 딸을 골라 보내야 하는 일은 결코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채청사가 계속 엄포를 놓는 바람에 하는

수 없 이 고을 원에 속한 기생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월홍이라는

기생을 딸려보냈습니다. 그런데 월홍이 서울로 올라가고 나서 다

음해 종묘에서 나라의 제사가 있었는데 월홍이 제삿상에 올려진

돼지 머리를 보고 픽 웃고 말았습니다. 연산군이 옆에서 이를 보

고는 무엄하다고 다그쳤습니다. 월홍은 저 돼지 머리를 보자 성

주 고을 원님이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연산군

은 아직도 고을 원님을 잊지 못하고 있다면서 월홍을 하옥시키고

즉시 금부도사를 성주에 내려보내 장순손을 잡아 올리게 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것도 모자라 다음날 선전관을 불러 칼을 내어주

며 뒤쫓아 떠나 즉시 칼로 장순손의 목을 베어 버리라고 명하였

습니다.

 

 며칠이 지나 장순손은 갑자기 닥쳐온 금부도사에게 이끌려 서

울로 압송되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창을 지날 때 고

양이 한 마리가 갈림길에 앉았다가 야옹 하고 울고는 지름길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장순손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금부도사

에게 지름길로 가자고 사정하였습니다. 금부도사도 지름길이라

하니 말없이 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보는 대로 장순손

을 목베라는 명을 받고 내려오던 선전관은 바로 그 지름길이 아

닌 곳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중에 내려오는 선전관을

만났더라면 장순손의 목은 날아갔을 것입니다.

 

 마침내 장순손이 수원부에 도착하였을 때 한양에서 연산군을

몰아 내는 중종반정이 일어났습니다.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즉위하자, 억울한 죄인 장순손은 옥에서 방면되어 다시 내려가

고을 원님을 하다가 훗날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출처 : 일곱개의 작은 보석 ( 열린 글터)

          (여유의 작은 보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