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 좋아하다 나라를 잃다
백제 21대 개로왕은 내기 바둑과 장기를 누구보다 즐겼습니
다. 어느 날 개로왕은 심심해서 평복을 입고 백성들이 사는 저자
거리를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절세 미인의 여인이 지나갔
습니다. 왕은 호기심으로 옆의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도미라는 자의 부인이온데 매우 아름답게 생겼을 뿐만 아니
라 행실이 착하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왕은 그날 궁으로 돌아가 당장 그녀의 남편인 도미를 불러들
였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아무리 정숙하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마음속까지는 모르는 일이며 그대보다 더 잘난 사내가 유혹하면
틀림없이 넘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미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습니다.
"그럼 바둑으로 내기를 하자. 과인이 지면 많은 상금을 줄 것
이요. 그대가 지면 그대의 부인을 불러들여 과인이 며칠간 시험
해 보리라."
도미는 하는 수 없이 임금의 명령에 따라서 바둑을 두었으나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도미 부인은 자기 대신 하녀를 왕의 침
실에 가도록 하였습니다.
속은 것을 안 왕은 다음날 도미를 불러 호되게 야단을 친 후에
왕을 속인 죄로 눈알을 빼고서는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바둑에서
진 벌로 약속대로 그날 밤 도미 부인이 시중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도미 부인은 눈먼 남편을 데리고 백제국을 떠
나 고구려로 도망쳤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은 전에 백제국이 국경을 침범해 고국원왕을 살
해한 적이 있었으므로 그 원수를 갚기 위하여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가 이러한 소식을 듣자 계교가 생각나 바둑의 고수인 도림이
란 스님을 백제국으로 은밀히 파견시켰습니다.
바둑을 좋아하던 개로왕은 도림을 보자 이내 바둑 친구가 되
어 그의 말이라면 듣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도림은 은근히 큰
궁궐을 짓게 하였습니다. 국력을 탕진시키기 위한 계략이었습니
다. 왕이 그럴 듯이 여겨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궁전짓는
거창한 일을 시켰습니다.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백성들이 못살
겠다고 아우성일 무렵 도림은 슬그머니 고구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장수왕에게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드디어 개로를 잡을 때가 왔다! 하고 장수왕은 군사들을 휘몰
아 백제로 쳐들어갔습니다. 도림의 꾀에 빠진 것을 안 개로왕은
후회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고구려 군사들은 7일 만에
백제의 변방을 모조리 함락하고 왕궁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왕은 하는 수 없이 도성을 빠져나와 산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대장 걸누가 추격하며 소리쳤습니다.
"개로는 서라!"
혼비백산한 개로는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도망칠 수가 없었습
니다. 장수 걸누가 달려와 칼 끝으로 얼굴을 쳐들어보고서 개로
왕이 틀림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걸누 역시 개로왕의 학대에 못
이겨 백제를 도망쳐 고구려로 가서 장수가 된 자였습니다.
"개로는 얼굴을 들어 보라!"
개로왕이 올려다보니 예전에 자기 수하에 있던 장수였습니다.
"걸누 장군 아니시오! 이번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오. 평생 그
은혜는 잊지 않겠소!"
"그렇다. 나는 옛 백제사람 걸누다. 그러나 너같은 자가 왕위
에 있으니 나라는 망하고 백성은 모두 도망친다.너같은 자는 죽
어 마땅하다!"
걸누는 왕의 얼굴에 침을 세 번이나 뱉고는 말하였습니다.
"정숙한 부녀자를 욕보이고 바둑으로 세월을 보내니 어찌 나
라가 망하지 않겠느냐! 이는 하늘이 내린 벌이니라. 나도 이제까
지 쌓은 한을 갚기 위해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걸누는 아차산성에서 개로왕의 목을 쳤습니다.
출처 : 일곱개의 작은 보석 (열린 글터)
(절제의 작은 보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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