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태 두 마리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3남매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기를 다짐하며
사는 부부였다. 부부는 새벽같이 가게문을 열고 밤 늦은 시간까지 장
사를 했다. 그 가게는 생선과 야채를 함께 팔았는데, 특히 겨울철에는
동태가 인기가 있어 잘 나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가게 문을 열고 생선과 야채를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을 했다.
추운 겨울날이라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편은 가게 앞의 눈을 치우고 거리의 눈을 쓸기 시작했고, 아내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다른 일에는 신경을 쓸 경황이 없었다.
그때,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
안으로 들어갔던 아내는 황급히 가게로 나와 남편 쪽을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아내를 발견한 남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여기에 동태 몇 마리 내놨어?"
"열 마리 내놨는데요. 왜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내가 동태 한 짝에서 우선 10마리만 떼어냈었잖아?"
"예, 그거 다 내놨어요."
아내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한다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편
은 가게 밖에 벌여놓은 동태를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동태가 여덟 마리밖에 되지 않아."
"어,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열 마리를 내다 놓았는데···."
아내의말에 재차 확인한 남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아내 역시
근심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여보, 당신이 눈 치우러 간 사이에 누가 동태 두 마리를 훔쳐 갔나
봐요."
아내의 말에 사태를 직감한 남편은 모자를 쓰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 있어. 내가 찾아볼께."
"아니에요. 저도 찾아볼께요. 당신은 저 쪽으로 가세요. 난 이 쪽으
로 갈께요."
그리고 부부는 각각 흩어져서 동태를 훔쳐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매서운 바람이 계속해서 부부의 얼굴을 때렸고, 잠시 주춤했던 눈
발이 다시 흩날리고 있었다.
부부가 흩어져서 동네를 뒤지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흘렀지만, 부
부는 끝내 도둑을 잡지 못하고 가게로 돌아왔다.
잘 살아보려고 먹을 것, 입을 것 아끼고 살던 부부에게 동태 두 마리
는 무척이나 큰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가게에서 파는 물건 한번 먹어
본 적 없고, 생선을 팔아도 찌개 한번 끓여준 적이 없었는데···. 그런
동태를 누가 훔쳐갔으니, 부부의 심정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가게 앞에서 허탈한 표정의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여보, 아무래도 도둑을 잡기는 틀린 것 같아."
"왜, 우리같이 없는 사람의 물건을 훔쳐가는지 모르겠어요."
아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았다.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동태가 먹고 싶었으면, 이 새벽에 남의 물건을 훔쳤겠소.
우리가 이해합시다. 그만 잊어버려요."
남편의 말에도 아내는 마음의 앙금이 가시지 않는 듯
"하지만···."
"그만 해요. 잊어버립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동태찌
게 한번 해주지 못했구려. 오늘 아침은 아이들에게 동태찌게나 끓여
주지 그래요."
"두 마리 도둑맞은 것 보충할려면, 전보다 더 많이 팔아야 하잖아
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너무 우리만 알고 산 것 같소. 동태 두 마
리 훔쳐갈 만큼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우리만 잘 살겠다고 주위를 돌
아본 적이 한번도 없지 않소."
남편의 말에 아내의 볼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네요. 어쩌다 우리가 동태 두 마리
때문에 온 동네를 다니며 도둑을 찾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동태 도둑이 우리에게 우리를 돌아볼 기회를 준 것 같소. 이제
부터는 동태 도둑님이라고 불러야 겠네."
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 부부와 그들의 자녀 3남매는 따끈따끈한 동태찌게를 맛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맛있는 찌개에 환호성을 질
렀고, 부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나누었다.
그 다음날부터 부부의 가게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부부는 일
부러 가게 앞 후미진 곳에 매일 새벽 다른 물건을 갖다 놓았다. 동태,
쌀 한 봉지, 파 한 단, 라면 몇 개 등. 그 물건들은 없어지는 날도 있었
고, 또 그대로 있는 날도 있었지만 부부는 없어지지 않으면 그 물건값
만큼을 매일 저금을 했다. 또 그런 날이면 덕분에 아이들은 매일 맛있
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부부는 이제 구멍가게가 아닌 커다란 슈퍼를 운
영하게 되었다. 살림이 넉넉해져도 부부의 이우사랑은 그치지 않았
다. 이젠 물건을 내놓는 대신에 한 달 벌이의 일정액을 떼어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손님 손님!"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남편이 뛰어나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니, 한 손님이 물건을 사고 봉투를 놓고 갔지 뭐예요."
아내의 손에는 흰 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니, 그걸 주인 찾아주지 않고 뭐하는 거예요."
"아니, 찾아주려고 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려서요."
남편은 옷을 껴입으며 말했다.
"여기 있구려, 내가 찾아주고 올 테니."
"아니에요. 같이 찾아봐요."
아내와 남편은 흩어져서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서
도 그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부부는 허탈한 마음으로 슈퍼에 돌아왔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네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숨을 몰아쉬는 아내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 봉투 좀 줘보구려. 신고라도 해야겠소."
봉투를 건네받은 남편은 봉투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한
장의 편지와 함께 거액의 수표가 들어있었다.
"여기 편지가 있으니 누군지 찾아줄 수도 있겠는 걸"
남편은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10년 전 동태 두 마리를 기억하시는지요. 사업에 실패하고 배고
파 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먹여주고 싶었지만, 그 땐 한 푼도 없
는 무일푼이 신세였습니다. 도둑질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도 자식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해 그때 제가 동태 두 마리를
훔쳤습니다. 당신 부부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을 몰래
홈쳐볼 땐 정말 괴로운 심정이었습니다. 그 후로 가게 앞에는 쌀
이나 라면이 놓여 있더군요. 그걸 가지고 가면서 정말 이제는 열
심히 살아야지, 하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먹고 살
만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들은 돈, 얼마 되지 않지만 그때의 동
태와 라면 값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
송합니다.
편지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편지를 다 읽은 남편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고, 아내는 말없이 남
편을 바라보았다.
"여보! 우리 동태 도둑님이 주신 돈이구려. 이 돈이면 얼마 간 가난
한 이웃에게 따뜻한 밥을 먹일 수가 있겠구려."
남편이 말에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다음날 아침, 그 동네의 가난한 이웃들은 익명의 기탁자가 준 쌀
과 고기를 받아 아침상을 준비했다.
출처 : 나를 키운, 내 영혼의 진주(박태희)
뱃속이 환한 사람 /박문옥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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