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사흘을 기다리는 지혜

doggya 2010. 5. 23. 09:34

 

 

사흘을 기다리는 지혜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나온다.

 이 고사故事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변방에서 말을 기르고 있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말이

울타리를 넘어 도망을 쳤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에게 와 말이 도망쳐서 어떻게 하느냐,고 위로

를 했지만 노인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몰려왔던 사람들이 오히려 무

색해 돌아갔다.

 도망갔던 말은 얼마 후 다른 좋은 말과 함께 우리로 돌아왔다. 그러

자 마을 사람들은 이전처럼 몰려와 좋은 말이 공짜로 생겨서 좋겠다,

며 노인의 횡재를 축하했다. 그러나 노인은 전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그 후, 어느 날의 일이었다. 노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

들이 그만 그 말을 타고 놀다 낙마하여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사람

들은 또 몰려와 노인에게 안 됐다고 했지만, 그때도 노인은 별로 슬퍼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 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차출되어 전쟁

에 나가 대부분 죽게 되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절름발이였기 때

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고,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인생은 세옹지마'라는 말을 떠올린

다. 쉽게 슬퍼하지도 그렇다고 기뻐하지도 않으려는 일종의 자기 관

리의 한 방책인 것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밤새 써 놓았던 원고가 컴퓨터의 고장으로 모두

날아가버리는 일이 생겼다. 화가 난 나는 밤을 새운 것도 잊고, 화를

삭이지 못해 안절부절, 집안의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떻게 써 놓은 원고인데···.'

 화가 가라앉지 않은 나는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나의 화를 삭혀주진 못했다. 얼굴은 화

끈거렸고, 걷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때 떡을 파는 한 할머니가 내

게 다가왔다.

 "젊은이, 떡 하나 드시려우."

 할머니이 말이 내게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의 얼굴은 비록 주름투성이였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기쁨

으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며칠 전, 떡 판 돈을 모두 잃어버려 애를 태우고

있던 모습을 기억해냈다.

 나는 떡 한 조각을 집어 들며 말했다.

 "할머니, 오늘은 무척 행복해 보이시네요."

 "행복하고 말구요."

 그 할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돈을 찾으셨나 보군요."

 그러자 할머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은 세상에서 가장 슬펐던 날입

니다. 그런데 사흘 후 예수님은 부활하셨죠. 나는 거기서 사흘을 기다

리는 지혜를 배웠다우. 어떤 근심 걱정이라도 기다려 보면 모든 일이

다시 잘 되게 마련이에요."

 그 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젊은이에게도 무슨 근심이 있어 보이는구려."

 "아, 예―."

머뭇거리던 내 대답보다 할머니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젊은이, 돌고 도는 게 세상이라우. 근심이 있으면 기쁨도 있는 법

이라우. 젊은이도 사흘을 기다려보는 것이 어떠우? 잃어버린 것이 있

다면 잊어버려요. 그래야 더 좋은 것을 가질 수 있지 않겠우."

 할머니는 내 속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이

걸을을 옮겼다.

 "할머니! 떡값이요."

할머니는 내 말에 빙긋이 웃음을 지으시며 다시 앞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돌아와서 먼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은 후, 어제 못 잔 잠을

청했다. 잠을 푹 자고 난 후,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다 썼을

무렵, 나는 밤을 새워 고통스럽게 쓴 글보다 지금 글이 훨씬 좋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걱정거리가 있을 때마다 '사흘을 기다리라'고 한 그 할

머니의 말을 머리에 떠올리곤 한다.

 

 

출처 : 나를 키운, 내 영혼의 진주(박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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