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貧富) / 김진학
바람은 강 어디쯤에서 일어나
가슴 한 가운데를 불고 있었다
언제 올지도 모를 기약 없는 언어들이
황량한 모래바람에 날리고 
바다 건너온 반짝이는 외제승용차가
가난한 산동네를 짓밟고 지나면
장마진 가슴들이 견디다 못해
높다란 빌딩에서 뛰어 내리고 있었다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리는 
불러봐야 쓸쓸한 노래들이
피보다 진한 꽃잎이 되어
빌딩 아래 지나는 사람들 
가슴에 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갈곳을 잃어 방황하고 
성난 강은 더 센바람을 일으켜 
그 섬의 북단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도시의 가로등은 흐려지고
땅위에 흩어진 불빛들은 일렁이다 
힘을 잃고 몸살을 앓는다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뿌려지는 빗줄기는 
하나둘 우울한 노래를 부르다
이슥한 어둠저쪽으로 사라지고 
영혼을 팔아 팥죽 한 그릇을 싼
성경의 노래들이 카인이 되어
도시의 밤에서 나신으로 
춤추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의 양심은 죽어있고 
악마는 아리따운 여성의 탈과 
건장하고 멋있는 남자의 탈을 쓰고 
벌거벗은 몸으로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구역질나는 모습들을 어른이나 아이 구분 없이 
화면 가득히 무차별로 쏘아대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나간 행복을 주워 담으며 
비 내리는 늦은 아침을 걷던 노숙자는
따뜻한 햇살을 그리도 기다리다
봄비에 쓰려져 죽어가고 있었고
은행 번지수를 잊어버린 400만의 사람들이
이미 문닫고 망해버린 어느 공장 앞에서 
혹시나 월급이 나오나 하고 녹슬어 가는
대문의 자물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섬의 북쪽엔 늘 멱살 잡이와 화려한 말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어느 높으신 분의 재산이
도시 가난한 산동네를 다 합친 것보다 몇 배는 
더 많다는 것이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언더 그라운드 언어가 되어 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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