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평화님의 선물

이야기 시) 오랜 친구

doggya 2013. 1. 20. 20:19
오랜 친구 / 김진학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동대구역까지 마중 나온 20년 만에 만난 친구부부,
젖소 150마리의 농장과 영농법인을 운영하던 그들이
1990년대 말, 젖소파동으로 알거지가 된 후 
천주교 은퇴신부님과 함께 7년간 산간오지에서 
가톨릭피정센터와 청소년수련원을 만들었다는데
모든 것을 다 이룬 그들의 피땀을 모두 은퇴신부에게 주고 
부부는 다시 맨 몸으로 경상북도 산골의 작은 
천주교 공소에 터를 잡고 앉았다.
생전 처음 와보는 낯선 산골은
도시에 찌든 나그네에겐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이제 우예 살라꼬?”
“밥 묵고 살지... ?
“차암 사람도... ”
젊음과 패기가 넘치던 부부의 머리에 간간이 서리가 앉고, 
돋보기를 써야 작은 글이 보인다는
친구부인의 말이 내리는 가을비처럼 슬프다.
깊은 신앙심 하나로 버텨온 성인 같은 사람들...
“지금껏 잘 살았는데... 앞으로도 잘 살게 해 주시겠지...”
“그래도 그렇지... 이 사람아 그렇게 맨땅에 맨몸으로 나오면 우짜노?”
교통편이 좋지 않아 기다렸다가 버스타고 오려는 나를 
굳이 고물 승용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동대구역까지 배웅을 나와 
개찰구 앞에 서서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아름다운 부부...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을 감는다.
“나는 과연 내 영혼에게 진정한 양식이 될 이승에서의 일을
과연 저 부부만큼 이루어 놓았을까?“
창밖엔 여전히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註) 공소 : 신부(神父)가 없는 작은 천주교 시골성당
* 시작노트 - 어느 해 가을, 오랜 친구에게 다녀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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