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채화로 그린 그리움

사랑의 향기 그리고 '수채화로 그린 그리움' 서평

doggya 2012. 12. 29. 03:42



사랑의 메타포로 그린 그리움의 미학 / 최봉희(시인)


 

괴테는 ‘모든 것을 젊었을 때 구해야 한다. 젊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빛깔이다.’ 라고 말했다. 빛깔이 야위고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찾고 구해야 나이가 들어서 풍성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나 꿈 속에 그리는 추상적 생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생각의 시각화(Visualization)’라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색채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조세핀 김의 색채 메타포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메타포이다. 그에 적절한 명사와 형용사가 배열된다. 조세핀 김의 색채 감각은 서술적이거나 장식적이지는 않다. 시인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경험한 감정 영역과 연결된다.

또한 색채의 메타포로서 수채화는 깨끗하고 투명하게 그리고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는 내면의 깊은 속까지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24시간을 함께 하여도, 혹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간절히 그립고 애틋한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리움이 싹트고 그 그리움은 영혼을 외롭게 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있어서 그리움이란 삶의 일부분이고 자신을 지탱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기쁨이다. 반드시 설렘이 있다. 일상에서 힘겨운 삶에서 잠시 벗어나 홀가분함과 새로움을 접하는 환희의 시간이다. 내 영혼의 성장 엔진을 힘차게 돌려 나를 키울 수 있는 법이다.

조세핀 김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움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그 안에서 포근한 사랑을 느끼며 외롭지 않게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그리움이란 형태를 빌린 사랑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사랑을 찬미하기 위해서 그리움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수채화처럼 투명하게 때론 파스텔 색깔로 옷을 입은 그리움이 시속에 투영되는 것이다.

 

문학은 삶의 경험과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나 다양한 이야기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꿈을 지향한다. 그래서 시인은 생명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움의 색깔로 그려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사물이 감각을 통해 우리의 느낌에 비쳤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그림자가 이미지다. 그 심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 때 자연의 회화는 상상의 이미지로 바뀐다. 그때 사물은 현실의 사물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 것이 시창작의 시작이다.

 

내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에게 여름소나기 뒤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시선을 끄는 화려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만이 볼 수 있는

풀잎 끝에 달린 아침이슬 같은 소박함 때문입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 일부

 

시인 폴 발레리는 ‘시의 상황의 특징은 감동에 대한 발명이다.’라고 말했다. 시는 감동스런 경험에서 꽃을 피운다는 의미이다. 조세핀 김 시인 역시 사랑의 감동의 그림을 그리움이로 표현하고 있다.

문학은 대상에 대한 사랑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시인은 사랑을 기본 속성으로 하여 글을 쓸 수 있는 창조력, 내용과 형식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역량이 필요하다. 물론 기교적인 능력도 필요하지만, 그 반대로 감성적인 면도 매우 중요하다. 풍부한 감수성을 기반으로 하는 감동이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 아니겠는가.

박용철은 <시적변용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단순한 애정이 아니다. 시는 체험인 것이다. 한가지의 시를 쓰는데 여러 도시와 사람들과 물건을 봐야하고 짐승들과 새의 날아감과 아침을 향해 피어날 때의 작은 꽃의 몸가짐을 알아야 한다. 모르는 지방의 길, 뜻하지 않은 만남,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이별, 이러한 것들과 지금도 분명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마음 가운데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 끝날 땐 세상도 함께 끝날 줄 알면서도

주저 없이 사랑에 몸을 던지고

 

끝없이 자신을 죽여야 하는 줄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에 목숨을 걸고

 

대수롭지 않은 말 한 마디에도

가슴 아파 눈물 흘릴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의 말이라면 뭐든지 듣고 싶고

 

<중략>

 

오늘도

그리운 이 하나

가슴에 묻어두고

조각난 마음의 조각들

주워 몽 맞춰본다 <보고싶다> 일부분

 

미켈란젤로가 조각할 대리석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어느 석재상에 갔다. 못생긴 대리석이라고 뒷마당에 버려진 돌을 흥정했다. 주인은 못 쓰는 돌이라고 하면서 공짜로 줬다. 그 돌로 ‘아기 안은 마리아 상’을 조각했다. 후일 석재상이 놀라서 그 돌을 가지고 어떻게 그 모양을 조각했느냐고 묻자,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가 나를 불러주고 있었다.” 고 대답했다. 이 것이 시인의 능력이고 시각이다. 이떻게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있어야 하느냐가 문제다. 작품이란 자기의 내심에 비춰 재구성한 빛과 그림자의 배합이다. 시인은 대상의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고 정서의 옷을 입혀주어야 한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동이 나타나야 한다. 조세핀 김 시인은 그리움을 통해 우리 영혼 속에 파묻혀 있는 사연을 찾아내는 시인인 것이다. 그 절절하게 외치는 ‘보고 싶다’는 목마름, 잊을 수 없는 감동, 무서운 고독 등을 스스로 찾아내는 일이다.

평소 부지불식간에 자기가 체험한 것, 자기의 상념에 머물러 있던 기억심상이 어떤 동기에 의하여 유발된다. 그것이 바로 시적 감흥(Inspiration)이다. 그는 죽도록 사랑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사랑하는 대상을 찾고 그리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대를 느끼고 있어요

그대도 눈을 감아 보세요

아름다운 선율로 그대를 감싸고 있는

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죽도록 사랑해서>에서 후반부

 

프랑스의 사상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다. 새로운 탄생은 심리적 만족감이다. 행복하고 싶다거나 잘 살고 싶다는, 사랑을 갈구하고 어떤 기적을 바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참된 삶을 위해서 그리움을 수채화로 그리고 자신의 모든 삶을 투영하는 것이다. 그것이’삶의 미학’이다.

공자는 ‘인생론’에서 오십이 지천명이라고 했다. 하늘의 명령이 무엇인가,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다. 그래서 21세기는 어쩌면 ‘나’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랑의 물감을 통해 수채화로 그리움을 그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을 할 때 행복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내가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리움으로 예쁜 무늬를 그린다. 그리고 사랑의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그에 주는 것이 진정 행복이 되는 것이다.

 

주는 사랑 한 줄 넣고

받는 사랑 한 줄 끼우고

그리움으로 예쁜 무늬 만들고

섭섭함과 야속함의 잡티는

꼭꼭 집어내어

멀리 던져 버리고

꽁꽁 다지고 당겨서

너무 느슨하거나 늘어지지 않게

너무 쫀쫀하거나 딱딱하지 않게

<중략>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그대에게 드리겠어요 <그대에게 드리는 선물> 중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체험을 통하여 사색하고 창조하여 자기의 행복의 철학을 만든다. 행복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 사랑함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그와 함께 할 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도 행복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물결 속에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 되어

그대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에 촉촉이 저을 수 있는 걸 보면

몸이 함께 해야만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닌가 봐요 <사랑하는 마음> 후반부

 

우리는 저마다 행복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하지만 행복은 어떤 만들어진 실제의 대상이 아니다. 행복은 각자가 만들어 가는 의지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행복이 쉽게 얻어질 수 있을 만큼 안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행복을 이야기하고 행복한 생활, 행복한 삶을 염원하게 된다. 현실이 각박하게 느껴지면 느껴질 수록 우리들의 행복의 열망은 더욱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이란

하늘에 떠가는 조각구름 같아서

세찬 바람 불어 오면 흩어지게 마련이지요

 

그리움이란

물에 떨어지는 한 방울 물감 같아서

시간이 흐르면 있는 듯 없는 듯 희석되지요

 

그래서

애달픈 사랑도

가슴 에이는 그리움도

시간 속에 녹아든다고 하던대 <시간 속에>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마음이 되는 기대감이다. 희열 그 자체이다. 그래서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아름의 추억을 가질 때에 우리는 가장 진실하고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내가 곧 그이고 그가 곧 나인 것이다.

 

시인은 시라는 맑은 수채화를 그리며 향기나는 사랑 안에서 살고 싶다. 사랑이 주눈 포근함과 행복함, 위대함 앞에서 낭만이 넘치는 그 성숙함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세핀 김 시인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에게 호흡할 수 있는 설렘을 주어 성장시킨다. 껍데기인 육체의 성장이 아닌 내면의 성장을 일으키는 지혜와 철학과 순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조세핀 김 시인에게 있어서 그리움이란 삶의 일부분이며 그를 지탱해 주는 창조력이다. 그리움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그 안에서 포근한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그리움이란 들이쉬고 내쉬는 영혼의 숨결’인 셈이다. 그래서 사랑을 찬미하듯 오늘도 그리움을 그리고 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수채화 그림처럼 그의 사랑은 투명하다. 때론 파스텔 톤의 색깔로 옷을 입은 그리움처럼 신나는 설렘으로 나들이를 시작하고 있다. 오늘도 시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승리, 설렘이 가득한 행복한 사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