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유럽

루마니아 비에르탄 - 이혼하려면 감옥생활 1년 필수

doggya 2016. 1. 20. 06:27


오늘은 드라큘라와 작별을 하고 시비유로 가는 날이에요.

가는 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중세 요새이자 교회인 성에 잠시 들리기로 했는데 시골길은 어떻게 생겼는지 기대가 되네요.



그 동안 성들 그리고 요새들 또 근사한 집들만 보다다 시골길로 접어드니 소박한 집들이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지네요.




도로를 벗어나 동네로 접어들자 집들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군요.

이곳은 큰 도시에서 대략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라서 아주 조용하고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저도 이런 곳에 집 하나 장만하고 가끔 와서 살고 싶어지는 그런 생각이 드는 동네였지요.

독일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하는군요.

하긴 영국의 챨스 황태자도 근처에 집을 사놓고 가끔 휴양하러 온다고 하니 좋긴 좋은 곳인가 봐요.




이 곳은 일단 밖에서 한 번 봐야 한다고 하기에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어요.



일단 이 요새의 외벽을 한 번 빙 둘러 보니 밖에서 보기에도 3겹의 성벽이 있어서 굉잔히 견고하고 무적일 거 같이 보여요.



여기서 보면 성벽이 세겹으로 되어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겠지요?

절대로 함락을 못 할 거 같지요?

하지만 이 곳도 함락을 당한 적이 있다니 세상에 무적은 없는 모양이에요.



벽을 빙 돌다 보니 여기저기 구멍이 보이는데 이 것은 물을 흐르게 하는 역할도 있지만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으로도 쓰였다고 하네요.


위의 것과는 조금 다른 구멍이 보이지요?

활도 쏘고 또 총도 쏠 수 있지만 밖에서는 절대로 안에 사람을 공격할 수 가 없는 구조더군요.




성을 돌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바로 이거였어요.

몇 군데 있는 망루인데 구멍이 꼭 사람의 표정 같지 않나요?




그리고 그 표정들도 다 다르고요.

루마니아 사람들은 건축물에도 생명을 불어 넣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 같아요.



성을 한 바퀴 돌아 정문 입구로 왔어요.

이미 관광철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이 오는지 조그만 상점들이 있네요.

대개의 경우 손으로 만든 레이스나 식탁보 같은 거, 또는 근처에서 나오는 너트 종류의 간식을 팔고 있엇어요.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 지역은 이 교회가 지어지던 1486년에는 항가리 제국의 영토였다고 하는데 

건축이 다 끝난 1524년에는 잠깐 캐톨릭 성당으로 쓰이다 독일 사람들이 점령하면서 루터란 교회로 바뀌게 되었답니다.



이 열쇠 구멍은 처음 교회가 지어질 때의 오리지날이라고 하는데 모양이 재미있지요?



이 곳에 와서 돌아다닌 루터란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제대의 모양이에요.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성당을 개조했기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얼른 봤을 때 천정에 벌레가 기어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아 한참을 올려다 봤는데 그림을 그렇게 그려 놨더군요.



의자에 장식들은 페인트를 칠한 게 아니고 색이 다른 나무들을 잘라 끼워서 만든거라는데 입을 딱 벌렸어요.

그 많은 것들을 ~~ 와 ~~ 시간도 되게 많았던가 보다. ㅎㅎㅎ




벽에 새겨진 이 모양은 원래 캐톨릭 성당이었다는 걸 말해 주네요.



제대 쪽에서 뒷부분을 바라 본거에요.

지금 보수 공사중이라서 뒤쪽으로는 갈 수가 없다고 하네요.



예배중 설교를 하던 이 곳 또한 원래의 모습 그대로 하니 참 보존으르 잘 해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대 옆으로 조그만 문이 하나 있었어요.

그 안은 방이었는데 옛날에 귀한 것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고 해요.

물론 교회의 것도 있지만 시민들의 것도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여기서 정말 대단하는 생각이 든 것이 바로 이 자물통이었어요.

다중으로 안전장치를 한 것인데 이 것이 처음 만들어 진 것이 교회가 처음 세워지던 1524년이었대요.



그 동안 잘 쓰다가 무려 400년 후인 1900년대에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박람회에 출품해서 일등상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400년이 지난 후에도 이만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곳이 없었고 또한 이 것이 그 만큼 견고하고 과학적이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그래서 그런지 이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더군요.

아직도 완전하게 작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지요?



제가 이 평범해 보이는 그림을 찍은 이유는 이 그림 역시 페인트를 한 게 아니고

색이 다른 나무들을 잘라서 붙여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것이 놀라워서지요.



요새에서 내다본 동네의 모습이에요.

참 평화로워 보이지요?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모두들 이 성안으로 피해 인명피해를 막았다고 하는군요.




요새로 쓰일 만큼 참 견고하게 지어졌지요.

이 교회에는 매 일요일 루터란 교회 신자들이 예배를 들였지요.

그런데 이 마음에 모든 사람들이 다 루터란으로 개종한 게 아니었대요.

그럼 그 소수의 캐톨릭 교도들은 어디서 미사를 들였을까요?



본 교회 건물 뒷문 앞에 이 조그만 탑의 밑에 아주 쬐끄만 방이 하나 있어요.

캐톨릭교도들은 교회에서 밀려나 여기서 미사를 들였다고 하네요. 같은 시간에요.




같은 시간에 바로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들이고

이 작은 공간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미사를 들이고... 처량하게 느꼈을까요?



지나다 보니 또 다른 표정의 탑이 보이네요. 재미있지요?

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구요.



교회 뒤켠으로 가니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어요.

성직자들이 살던 곳일까요?

그러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작지요?



이 곳은 일종의 감옥(?)이었어요.

부부가 사이가 안 좋아 이혼을 하고 싶을때 성직자에게 이혼하겠다고 의견을 내 놓으면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여기 였대요.

이 좁은 공간에서 부부가 일년을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밖에 못 나가는 건 둘 째치고 따로 갈 방도 없어요.

그렇게 일년을 이 좁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보고도 이혼하겠다고 하면 그 때는 이혼을 허락했다고 하는군요.

제 생각에는 백이면 백 다 이혼했을 거 같아요.

24시간을 같이 살다보면 정이 들기 보다는 짜증이 날 거 같아서요.

그런데 실제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결합해서 사는 쪽을 택했다고 하는군요.



아무리 봐도 성밖의 경치는 참 평화롭네요.




순전히 나무로만 지어진 이 탑은 농산물 같은 걸 보관도 하고 또 망루로도 쓰였다고 해요.



옛날 성직자들의 묘에 있던 비석들을 한 데 모아놨더군요.



처음 들어 올 때는 지붕이 있는 계단으로 올라왔는데 내려가는 길은 이곳이요새라는 걸 실감나게 해주는 그런 길이네요.



예전에는 중간중간에 문을 달아 성 한겹을 넘어도 쉽게 침범할 수 없게 설계를 했네요.




밖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는 이런 광장이 있는데 날이 좋으면 사람들이 참 많이 모여서 즐길 수 있는 곳 같아요.




광장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이 곳이 전성시대일 때의 건물들이 시골답지 않게 웅장한 모습을 보이네요.

그리고 뒷산은 모두가 포도밭으로 여기서 양질의 포도주를 생산한다고 해요.



이렇게 비에르탄을 둘러 보고 오늘의 목적지인 시비유로 달렸지요.



중앙 광장에 자리 잡은 호텔에 들어가니 비철이라서 광장이 바로 보이는 이층에 방을 주었어요.

참 고풍스럽지요?



그리고 창밖을 보니 광장이 한 눈에 들어 오네요.

이제 가방 내던지고 광장 주위를 한 번 둘러봐야겠어요.

물도 한 병 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