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안나할머니의 연인

doggya 2006. 6. 2. 00:55

장애인이잖아, 아직까지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고개를 쪽으로 삐딱하게 돌리고,  시끄러운 소음을 걸러내느라  애를 쓰며  열심히 경청을 하고 있는 나에게 점심을 먹으며 친구가   말이다.

 , 그렇구나.. 이마에 딱지를 붙였으니 자타가 공인한다고 수는 없고, 정부에서 붙여주는 등급을 따져도 한참 낮은 급수긴 하겠지만,  하여간  친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장애인이다.  그런데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고 2년을 살아 보면 만큼 둔하다는얘기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동안 여러가지 운동으로 단련된 내게 건강이란 마땅히 언제나 함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렇게 해서 생긴 자만심으로 왠만한 무리쯤은  다반사로 삼고 있었다.. 그러다  2년전  겨울이 끝나갈 무렵,  몇년만에 찾아온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던 감기끝에 바이러스가 내이(內耳) 들어가 자만심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어지러움증으로 몸을 가누지 했을 뿐이던 것이   귀의 청각 상실로 이어질 줄은 몰랐었다.

시간이 가면 정상으로 회복 되겠지 하는 희망과  기다림 속에서 날들을 보냈고,   차도없이 점점 시간이 흘러가게 되자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이 건강해 수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언가 중요한 마음으로 부터 포기한다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게  되자. 베토벤도 9 교향곡을 작곡했을때  귀가 먹었었다고 거창한  비유를 웃으며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다. .

 

그렇다면 자연은 나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기만 한걸까? 절대로 그런 같지만은 않다.  우선은 아무리 작고 보잘 것없는 것이라해도 나에게 주어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아픔으로 , 그리고 어려움을 이해할 있게 것은  축복이라고 있을 같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한가지를 잃으면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된다고 하는데,   인간은  잃어버린 부분 대신에 마음의 문을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 않나 싶다.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국가  자격고시를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가지 경험도 얻을 겸해서  널싱홈에서  간호원으로써의   발을 내딛었다. 널싱홈은 4 건물에 거주자가 250명에 달하는 아주 규모가 이었다. 1층은 혼자서 기동할 있는 정상적인 사람들의 거처였고, 2층은 24시간 간호와 보호를 받아야하는 사람들의 거처, 3층은 약간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그리고 4층은 자주 폭력을 휘두를 정도로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닌 사람들로 곳이었다.

 

초보간호원에게 주어진 임무는 위험부담도 가장 적고 일도 쉬운 일층 담당이었다.

얼굴과 이름을 외우느라 한창 바쁘던 때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였다.   미소와 말투, 그리고  몸짓에서 여자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그마한 체구의  안나는 젊었을때도 상당한 미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곱디 고운 여자였다.

 

어느날 아침, 약을 주어야 하는데  안나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방엘 봐도 없고,  발코니에도 없고,  식당에도 없고,  아무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대개 일층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건물안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었다.  또한 건물밖이라 해도  담당자에게 얘기만 하면 쉽게 나가 가까운 가게정도는  갔다 있을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있어,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로 있었지만, 그래도 먹을 시간을 놓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함께 일하던 간호원에게 물어도  안나가 밖으로 나간다는 허락을 청하는 것을 적이 없다고 했다.   만약에 사람이라도  실종되면 가족에게도  알려야 하지만, 문제는  바로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고 문책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초조해지고 겁에 질린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건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볼만 곳을 뒤지고 헛탕을 , 맥이 빠져 돌아오다가  혹시나 하고  2층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모두가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인  방들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걷던 눈이 순간 크게 떠졌다.

 

햇살이 드는 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자그마한  안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후유…… 안도의 한숨을 안나를 부르러 들어가려던 나는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안나의  곁에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나가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하이 했다.

순간, 아름답긴 하지만  이상하게까지  보이는 뜻밖의 광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 몰라 잠시 망설였다. 왜냐하면, 보안상의 이유로  남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약봉지를 안나의 손에 얼른 쥐어주고는  방을 나와  담당 간호원에게로 달려갔다.

 

담당 간호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벌써 아주 오랫동안 연인관계라며   건물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다운 카플이라는 것이었다. 안나는 93, 그리고 방의 주인인 제프는  72, 그러니까 21 연하의 애인인 셈이다.   우와,  보기와 같이 얼마나 멋있는 여자인가? 같은 여자로써 뛰어난 능력에 존경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에 한가지 들은 얘기는 제프는 타고난 장님이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앞을 없는 관계로 2충에 거주한다는 얘기였고, 안나는 매일 제프를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함께 앉아 얘기도 하고, 창문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흐르는 구름도 보고,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찾아오는  가족이 없는 사람에게는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었던 것이었다.

 

후에도 종종 제프의 방과 안나의 방에서 함께 있는 두사람을 보게 되면서 답을 찾을 없는 의문을 나도 가지게 되었다. 만약 제프가 장님이 아니었다고 해도 21 연상의 안나를 애인으로 택했을까?

 

어느날,  요란한 앰블런스소리가 들리고 이층에서 들것에 실려 내려오는 환자가 있었다. 바로 제프였다.  급성폐렴으로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고,  손을 잡고 앰블란스까지 따라가는 안나의 슬픈 얼굴은 차마 수가 없었다. 제프가 병원으로  이후론 다른 사람과도  섞이지  않고 혼자 멀거니 창밖을 내다보는 안나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끼니도 걸르는 때가 많아 모두를 걱정시켰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폐렴이라고 생각했던 제프가 합병증으로 돌아오는 날짜가 하루하루 늦어지고, 안나는  매일매일 제프가 언제 돌아오는지를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제프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는……

어떻게  안나에게 전해야 할지 모두들 너무나 난감했다. 방법을 찾지 못한채 차일피일 날짜를 미루면서 너무나 쓸쓸해 보이는 안나의 표정을 보는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약을 주러 안나의 방에 들어간 어느날, 아주 밝은 표정으로. 책상위를 정리하는 안나를 보고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진 내가 떠듬떠듬 물었다.

안나, 내가 도와 줄거 없어요?”

, , 아니야, 그냥 제프와의 일을 정리하는 뿐이야, 사진이랑 그런 말야.”

아니, 왜요? 제프는 얼마 있으면 돌아올텐데.  알았다! . 안나 마음이 변한거군요? 며칠 봤다고 벌써 애인이 생겼어요?”

어색한 표정이  농담으로 가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곁에 앉았다.

아니야, , 말야, 알고 있어. 제프가 이미 죽었다는 말야. 처음엔  믿고 싶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그게 확실하다는 느껴. 그러니까 억지로 위로해 주지 않아도 . 고마워

하며 내손을 잡는 것이었다. 들켜버린 거짓말을 어떻게 해야하나? 부끄러운 생각보다 그걸 알아버린 안나가 걱정이 되었다.

안나, 미안해요. 어떻게 말을 전해야 좋을지 몰라서 모두들 거짓말을 했던거예요. 그런데 안나, 괜찮아요? 표정이 아주 밝게 보이는데……”

, 괜찮아. 동안 제프가 있었기 때문에 매일이 즐겁고 사는 재미가 있었고, 이젠 제프와의 추억으로 내가 사는 날까지 살거야. 걱정하지마.”

, 그래도 다행이다. 이젠 거짓말을 해도 됐으니까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장난기가 발동을 했다.

안나,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대답하기 곤란하면 해도 돼요.”

뭔데, 얘기해 줄께.”

안나하고 제프하고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잖아요. 21살이나. 그런데 어떻게 애인이 있었어요? 제프가 안나의 나이를 몰랐나요?”

아니야,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게  모두들 궁금했겠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묻더군. 네가 처음 묻는거야.”

, 미안해요. 대답 해도 돼요.”

아니야, 괜찮아, 말해 줄께. 처음 제프가 장님이라는 알고 그를 도와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었어. 그러면서 얘기를 많이 했지. 그러면서  정이 들게 거였어. 그런데 제프는 나이나 용모나 그런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  아름다운 마음이 그의 마음속에 그려준 모습이 자기가 사랑하는 나라고 말야. 아름다움이란 마음에 있는 거라는 제프의 말에 나도 감동을 했던거야.”

눈으로 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랑이 활짝 열린 제프의 마음의 문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안나의 밝은 얼굴을  뒤로 하고 방을 나오는 나의 마음도 그리고 발걸음도 매우 가벼웠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내가 장애인이 되고 나서  살아 났다. 나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다.  

예전처럼 눈으로만 보기 보다는, 귀로만 듣기 보다는,  내가 잃어버린 소리만큼 열린 마음의 문으로 세상을 있었으면 하는 기대감과 함께.

 

 

(월간 문학의 2006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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