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기에 행복을 주었던 노래 / 조세핀 김
난 지금도 Chris De Burgh 의 Lady In Red 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아니 노래 전체가 아니고, 전주만 흘러 나와도 한숨을 깊이 쉬는 버릇이 있다.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듯이……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대형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그만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지면서 거의 숨을 멈출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의 감정이란 너무나 기뻐도, 너무나 행복해도 슬퍼지는, 참으로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걸 그때 느꼈다.
힘든 이민생활에서 그래도 장래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 하고, 아침 일찍이면 잠도 안 깬 눈으로 학교로 향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 노래를 들을때 만은 너무나 행복했었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그때 웨이트레스로 일하고 있던 식당에서 였다.
시카고의 다운타운에 위치해 유명한 인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꽤나 알려진 고급식당이었는데, 그 유명세를 이용해서 주말이면 식당이 끝나고 나서 새벽까지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그런 곳이었다.
보통은 식당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 파김치가 된 몸을 침대속으로 쑤셔 넣는 것이 일과였는데, 그 날은 내 마지막 손님이 늦게 자리를 뜨는 바람에 클럽이 시작하는 시간까지 본의 아니게 머물게 됐다.
테이블을 모두 치우고, 아래층에 댄스 플로어가 마련되자, 스피커에서 그날의 첫 음악의 전주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만 숨이 탁 멎어 버린 것이었다.
마치 천년을 찾아 헤매던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보았을때 처럼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리곤 온 몸의 맥이 다 빠져 그냥 조용히 의자에 앉아 넋을 잃고 그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 노래가 끝나자 마자 단숨에 DJ 실로 뛰어 올라가 제목이 뭔지 가수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음반하나 살 만한 여유가 없어 일하는데서 듣는게 고작이었고, 그 애 태우던 안타까움도 지금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끔씩 별 건 아니지만, 뇌물을 주며 DJ 에게 그 노래를 부탁했고, 어떤 땐 내가 손님때문에 늦게 까지 남아 있는 걸 보면 슬며시 Lady in Red 를 나한테 선물로 틀어 주곤 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시간이 남아 그냥 잠깐 구경이나 하자고 들렀던 백화점에 걸려있던 빨간 원피스는 다시 한번 내 가슴을 뛰게 했엇다.
그걸 살 형편도 또 그걸 입고 갈 곳도 없는, 일과 학교를 오가는 꽉 짜인 생활이 전부인 나 였지만, 그냥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에이…… 한번 입어나 보지, 뭐. 그리곤 안 사면 될 거 아냐 ……”
그러나 입어만 보고 말리라는 결심을 그대로 지킬 수가 없었다는 것은 불 보듯 뻔 한 일.
앞뒤를 안 돌아보고 그냥 사서는 기쁜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 가면서, 손에 들린 쇼핑 빽과 주머니의 무게를 느낀 순간, 그 옷을 입어 보았던 걸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하지만, .돌려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노는 날 하루 더 일하지 뭐…… 그런 생각으로.
그 주말에는 일이 끝나고도 일부러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바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DJ는 예외없이 내 노래를 첫 음악으로 틀어 주었다.
Chris De Burgh 의 Lady In Red 가 대형 스프커에서 마루를 울리며 흘러 나올때, 나는그 빨간 원피스를 입고, 혼자 플로어에 서서 눈을 감고 음악에 취해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랫만에 만난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있는 듯 황홀한 기분으로
"I Love You"
제일 마지막에 낮게 속삭이는 이 한마디는 아직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주제 : 지금 당신의 블로그 배경음악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한마디]
<아띠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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