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쥐똥나무

doggya 2010. 5. 22. 08:41

 

 

쥐똥나무

 

 

 

 이름 없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의 소원은 자기만의

이름을 갖는 것이었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자기만

이름이 없어 나무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소원해도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이는 없었다.

하다못해 자기 스스로 '하늘나무'니 '별나무'니 하고 이름을 붙여

보았지만, 아무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이름이란 다른 이

들이 자꾸 불러주어야만 진정 자기 이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밤이었다. 병든 쥐 한 마리가 살며시 다가와 그에

게 말을 걸었다.

 "나무야, 난 지금 병이 들었어. 온몸이 쑤시고 아파. 더구나 난

지금 잠잘 곳도 없어. 오늘밤 날 좀 재워줄 수 있겠니?"

 "그럼, 재워주지."

 나무는 이제 막 돋은 부드러운 이파리를 엄마처럼 벌려 쥐를 편

안하게 재워주었다.

 "정말 고마워. 잘 자고 났더니 이제 좀 괜찮아. 그런데 나무야.

배가 고프다. 뭐, 먹을 거 좀 없겠니?"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쥐가 울상을 짓고 배를 슬슬 뜨다듬으면

서 말했다.

 "글쎄, 아무것도 먹을 게 없는데, 어떡하지? 우리 나무들은 이슬

이나 햇살을 먹고살기 때문에 마땅히 줄 게 없네."

 나무는 배고픈 쥐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

무 것도 줄 게 없어 자기 몸의 일부인 푸른 잎사귀를 조금 떼어주

었다.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배가 고프니까 우선 이거

라도 좀 먹어봐. 나중에 더 맛있는 게 있을 거야."

 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자기 몸을 떼어주다니!'

 쥐는 지금까지 여러 나무들을 찾아가 하룻밤 재워줄 것을 부탁

도 해보고 먹을 것도 얻어먹어 보았지만, 이렇게 자기 잎사귀를

떼어주는 나무는 처음이었다.

 "넌 정말 고마운 나무구나. 그런데 넌 이름이 뭐니?"

쥐는 나무 잎사귀를 다 먹고 나자 그의 이름이 궁금했다.

 "난 이름이 없어."

 "아니, 이름이  없다니? 그런 나무가 어딨어?"

 "정말이야. 이름을 갖는 게 내 소원이야."

 나무는 자기만이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마음이 아팠다.

 "슬퍼하지 마. 내가 좋은 이름 하나 지어줄께."

 쥐는 앞발로 나뭇가지를 톡톡 치면서 슬퍼하는 나무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그 대신 나 부탁이 하나 있어. 매일 밤 네 품에 안겨 자게 해줘.

네가 어떤 나무인지 알아야 이름을 잘 지을 수 있어."

 "좋아. 잠잘 데가 없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와. 내가 재워줄 테

니까."
 쥐는 매일같이 나무의 품에 안겨 잠을 잤다. 잠들 때마다 '나무

에게 어울리는 이름이 무엇일가'하고 곰곰 생각했으나 마땅히 좋

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이름을 안 지어주는 거지?"

 나무가 재촉할 때마다 쥐는 나무에게 꼭 알맞은 이름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날 듯 생각날 듯하면서도 나무에게

알맞은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빨리 안 지어주면, 널 안 재워줄 거야."

 나무는 기다리다 못해 가끔 그런 말을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 나무는 쥐를 품에 안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름 따

위는 이제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쥐가 찾아와 새근새

근 잠이 들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쥐도 나무의 품에 안기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나무의 품에

안겨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도록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밤이었다.

쥐가 나무의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배고픈 고양이 한

마리가 쥐를 향해 살금살금 발걸음을 죽이며 다가갔다.

 나무는 온몸을 흔들어 쥐를 깨웠다.

 "위험해! 일어나! 고양이야!"

 쥐는 번쩍 눈을 떴다. 잽싸게 몸을 날려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

다. 그러나 더 이상 도말갈 데가 없었다.

 순간, 고양이가 나무 위로 재빨리 뛰어올라 쥐의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아아!"

 나무는 쥐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무의 몸

에 쥐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부슬부슬 내리던 빗물에 쥐의 피가

벌겋게 씻겨 내려갔다.

나무는 쥐의 시체을 안고 밤새 울었다.

쥐는 썩어 나무의 거름이 되었다.

 

 

 이듬해 봄, 나무의 몸에 새움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처음에는 열매가 진초록 빛을 띠더니 차차 흑갈색 빛을 띠다가 나

중에는 새까만 빛을 띠었다. 그 모양이 마치 쥐똥 같았다.

 한 아이가 엄마하고 나무 앞을 지나가다가 나무의 열매를 보고

소리쳤다.

 "엄마, 이거 좀 봐. 꼭 쥐똥 같애!"

 "그래, 그렇구나. 어쩜 그렇게 쥐똥하고 똑같이 생겼니. 이 나무

이름이 쥐똥나무인가 보다."

 그때부터 나무는 쥐똥나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그렇게 소원

하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다들 우스운 이름이라고 놀려댔지만

쥐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 이름이 나무는 너무나 좋았다.

 

 

출처 : 스무살을 위한 사랑의 동화1(정호승)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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