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마음의 귀로 명작을 남긴 베토벤

doggya 2010. 5. 25. 09:34

 

 

마음의 귀로

명작을 남긴 베토벤

 

  

                                남의 힘을 바라지 말고 당신의 신념을 믿으라.

                      굳은 신념이 당신이 새로운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다.

                                                - 노만 V. 필(미국의 목사 · 저술가)

 

 

 음악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교수가 신입생들에게 물었다.

 "한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가 있네. 그 남자는 돈이 없으면 가구

를 내다 팔아 술을 사고, 걸핏하면 폐결핵에 걸린 아내를 때렸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가 임신을 했다네. 여러분이 그 알코

올 중독자의 아내라면 뱃속의 아이를 어떻게 하겠나?"

 예쁘장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저라면 당장 유산을 시키겠습니다."

 그러자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악성 베토벤을 죽였네."

 이 우스개 소리처럼 베토벤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음악가

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귀머거리라는 시련을 딛고, 《영웅교

향곡(1804)》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1809)》등 불후의 명곡을 남

겼다.

 베토벤이 이처럼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에 우뚝 설 수 있

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즉 '나는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훌륭히 해낼 수 있다.' 는 신념 때문이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서부 독일 라인 강변의 본에

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궁정악단의 단원이었으며, 아버지 요한도 궁정악단의 테

너 가수였다.

 그러나 아버지 요한은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로 집안을 거의 돌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베토벤이 4살 때 음악적 재능을 보이자 모차르트처럼

음악 신동으로 만들어 돈벌이를 할 생각으로 혹독한 음악훈련을

시켰다. 방 안에 가두어 놓고 주어진 피아노 과제를 제시간에 끝

내지 못하면, 끼니도 주지 않을 정도로 혹독하게 연습을 시켰던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스파르타식 피아노 지도를 받은 베토벤은 7세 때

에 쾰른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그리고 11세 때부터는 학교

를 그만두고 돈벌이를 위해 극장을 돌아다니며 연주를 하였다.

 1782년 궁정예배당 오르간 임시연주자가 된 베토벤은 2년 뒤

에는 정식 멤버가 되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소년가장 노릇을 하던 그는 17세 때에 오스

트리아의 빈으로 가서 흠모하던 모차르트 앞에서 즉흥 연주를 갖

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빈으로 되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가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

았고, 그 이후로 모차르트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베토벤은 모국어인 독일어조차 제대로 쓸 줄 몰랐

다. 11살 때 학교를 그만둔 뒤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었다.

 그러다 다행히도 본의 명문인 포 브로이닝 가(家)에 출입하면서

많은 예술가와 예술애호가들로부터 문학 · 철학 · 역사 등 다방면

에 걸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때에 평생의 은인인 폰 발트슈타인 백작을 만나 물

심양면으로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

타 제21번 《발트슈타인 소나타》는 바로 발트슈나타인 백작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그 뒤로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라이벌인 살리에리로

부터 작곡과 성악을 배워 연주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25세 때부터 귀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30

세 무렵에는 사람의 말소리도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병세가 악화

되었다. 이때 의사로부터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요

양하기 위해 빈 교외의 하일리겐슈타트로 갔다.

 그러나 청력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으므로 베토벤은 절망감에

빠져 지내다가 자살을 결심하고 장문의 유서를 썼다. 이것이 바

로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이다.

 두 동생에게 부칠 생각으로 쓴 이 유서는 베토벤이 죽은 후에

발견되었다. 귓병으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피력한 이 유서의 중간부분에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누구보다도 완벽해야 할 나의 청력이 나날이 나빠지고 있으

니,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밤을 새워 장문의 유서를 작성한 베토벤은 피곤에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베토벤은 얼굴을 간질이는 따가운 햇살 때문에

눈을 떴다.

 그때 창밖의 나무 위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

려왔다. '밤사이에 기적처럼 귓병이 다 나았나?' 생각하고 양쪽

귀를 막아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새들의 노랫소리는 또렷이 들려

왔다.

 그제야 베토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귀로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생각하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려 했

던가? 이제 나는 마음의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음악으로 충

만한 내 자신을 믿자. 다시는 자살 같은 어리석은 생각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베토벤은 포기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신이 청력을 앗아간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연주자보다는 작

곡자로서 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작곡에 전념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베토벤 특유의 늠름하고 강렬하고 웅장한 선

율의 《크로이첼 소나타》, 《제5번 교향곡(운명》, 《제6번 교향곡

(전원)》, 《바이올린 협주곡》 등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

이다.

 

 

 고난은 불행과 동의어가 아니다.

 고난은 신념과 만날 때 행복의 어머니가 된다.

 여기서의 신념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뭔가 기필코 이

루고야 말겠다는 용기와 도전의 모태인 것이다.

 모든 성공은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력을 잃은 상

태에서도 자신에 대한 신념을 가졌기에, 그 고난을 훌륭히 극복

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명곡들을 작곡하여 대 음악가로 거듭났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어떠한 고난에 부딪치더라도 자신에 대한 확고

한 신념만 가지면, 성공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복(박정혜 엮음)

 

 

                         베토벤 교향곡9번 4악장

  Presto-Allegro assai-Andante maestoso-Allegro energico,

 

 

'사랑방 > 햇살님의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로쇠 나무  (0) 2010.05.28
동태 두 마리  (0) 2010.05.26
희망은 긍정의 친구  (0) 2010.05.24
사흘을 기다리는 지혜  (0) 2010.05.23
쥐똥나무  (0) 2010.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