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가을저녁 무렵의 회상 
여름이 서쪽하늘에 달려 있다
비가 내리고
느티나무엔 아직 화려한 날들이 
가지마다 대롱거린다
소중한 유전자(遺傳子)를 
뼈 속 깊이 감춘 채
한 겹씩 벗겨내는 무수한 잎들 사이 
어린 싹들의 깔깔대는 웃음이 
성큼성큼 다가서는 
겨울뒤편에서 들린다
문득 한 톨의 정자(精子)를 심기 위해 
그 여자의 집 앞을 어슬렁거리다
주머니 속에 남은 지폐 몇 장을 만지작거리던
인사동 그 호프집을 먼저 떠올린다
취기가 오른 정사(情事),
나의 유전자는 그녀의 자궁(子宮)속에서
또 다른 집을 짓고 살아 갈 것이다
겨울뒤편에서 환희의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의 소리가 들린다
아아
북을 치며 달려 오는 유년의 기억들
생활비가 박히고, 등록금이 박히고, 
내가 박히고, 형과 아우들이 수없이 박히던 
어머니의 낡은 재봉틀 소리가 들린다
잔설이 내리면 
그녀와 앉았던 호프집엔
또 다른 유전자를 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댈 것이다
삶을 바늘 끝에 박으며 
늙어 가신 어머니의 
잔금이 수없이 진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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