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수필

내가 만난 다이애나 왕비

doggya 2006. 12. 21. 09:29

내가 만난 다이애나 왕비/ 조세핀 김

 

얼마전에 TV에서 비운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영국의 다이애나 왕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그 프로그램에 소개 된 것 중에는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도 꽤 있었는데, 특히 왕비로 탈바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적인 면과 왕비이기 전에 평범한 엄마로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전히 아름답지만 화면에 비친 앳된 얼굴과 내가 보았던 원숙한 모습과  비교가 되어 떠 올랐다.  내 기억속의  다이애나왕비는 TV 카메라에 비친 행복한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한  남성의 사랑을 쟁취하는데 실패한 고뇌를 안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었으며, 동시에 한 남자가 아닌 이 세상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내가 다이애나 왕비를 만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챨스 황태자와 정식으로 이혼을 하고 전세계의 병원과 소외받는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 하고 있던 중에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그 일정중에 내가 근무하고 있던 호스피스 병동(Northwester Hospital)을 방문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다이애나 왕비의 방문 소식에 우리 병동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모두들 기대에 들떠 있었고,  우리 병동에 관계되는 사람은 청소부까지도 철저한 보안검사(security)를 받아야 한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다이애나 왕비를 가까이서 볼수 있을 거라는 설레임과 기대감이 모두들의 마음을 붙잡아 놓고 있었다.

 

그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가 끝나고, 드디어 방문날짜가 되었다.  그날 아침에  나는 여러가지 준비로 바빴던 12시간의 밤근무를 마치고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그냥 집으로 갈까하는 강한 유혹도 있었지만, 모처럼의 귀한 기회를 그냥 스쳐지나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도 환자를 돌보지 않아도 되는지라, 환자와 왕비가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 있는 가족실 앞에서 서성거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드디어 다이애나 왕비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가슴설레는 기대속에 훤칠한 키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왕비가 병동을 들어서는 것을 본 순간, 우리 모두는 긴장하면서도 그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엄숙해지기까지 했다. 물론 영화에 나오는 배우와 같은 화려한 미모는 아니었지만, 가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인자한 미소와 내면에서 풍기는 위엄같은 것이 아름다움을 더 해 주고 있었다.

 

원래 스케줄은 미리 선택된 환자 한 사람과  1시간 정도 인터뷰를 한 다음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 되자  경호원들은 서둘러 병동을 떠날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우리들도 그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경호원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유인즉 왕비가 더 오래 있겠다고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는 형식적인 방문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의식이 없이 누워만 있는 환자라도 그들 모두를  방문하겠다는 것이엇다.  그 말에 병동은 발칵 뒤집혔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가 시찰을 온다고 하면 정해진 코스에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그 길을  정확히 그대로 따라 가게 마련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른 병실의 환자들은 손님을 맞을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왕비를 영접하느라,   모든 것이 뒤로 미뤄진 상태였는데, 모두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준비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일과가 끝난 뒤라 그 열기에서 제외가 됐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일단은 인터뷰를 끝낸 환자를 방으로 데리고 가야하는데,  일과가 끝난 내가 그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뒤에서 휠체어를 미는 동안 옆에서 환자의 손을 잡고 방까지 동행하면서 기자들이 참석한 공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마음에서 울어나는 대화를 나누는 왕비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감격도 컸지만, 그 태도에서 가식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 더 큰 감동이었다. 환자의 방까지 에스코트를 한 다음, 한참을 더 환자의 동태와 병동에서의 생활, 불치의 병에 걸린 후에 가족과 환자자신이 겪는 어려움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후 포옹하고 헤어지는 왕비의 태도는 속에서 베어나오는 사랑, 그 자체였다.

 

사실 그러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놀랐다고 하는게 솔직한 표현일거다. 나는 유명인에 대한 경외감같은 것을 가져 본적이 없다.  대중이 만들어 놓은 하나의 표상일 뿐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다이애나 왕비도 예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서도 남을 것인가 말것인가로 고민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그런데 남아서 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곁에서 볼 수 있엇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환자의 방을 나오자, 급하게 대강 정리만 해 놓은 다른 환자들의 방도 빠짐없이 일일이 들어가 가족이 있는 경우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고, 또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는 손을 잡고 고통없이 편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는 방을 나서는 왕비의 모습을 보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례가 아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진실한 마음이 저렇게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의 그 감격이 다 가시지도 않은 얼마 후, 언제나 처럼 새벽에 중환자를 목욕시키고 있던 중, TV에서 나오는 왕비의 사고 소식을 보고는 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난 후 왕비라는 타이틀보다는 그녀의 인간성을 사랑하게 됐던 우리는  일시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세월이 한참 흘러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젊은 날의 그녀를 다큐멘터리에서 보면서 비운에 간  영혼이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한번 떠 올랐다.

 

계간 '글벗' 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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