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미국 다른 지역들

8일간의 알라스카 크루즈 - 3일째

doggya 2006. 3. 21. 08:21

         

                               

<내가 일주일을 보냈던 배. Island Princess. 제일 뒷쪽에 꼭대기 불룩나온곳에 Gym 이 있었고 그 바로 밖 갑판에 탁구대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위로 농구장, 테니스코트, 체스세트등이 있었요. 맨앞에 돌고래 코같이 나온것이 선장실이고 그 바로 밑이 부페 식당이었읍니다.>


제3일 (5월 23일 일요일)

 

첫날의 긴장탓인지, 누워서도 뒤척뒤척하다가 늦게서야 잠이 들어 새벽에 커피를 갖고 온 룸서비스의 노크 소리에 소스라치듯이 놀라 일어났습니다.
커피한잔으로 몸의 세포들에게 기상나팔을 아무리 불어대도 반쯤 감긴 눈은 떠질 줄 모르고,  그 눈으로라도  TV 를 켜고 모니터를 통해서 방송되는 바깥 경치를 보려고 하는데, 어쩐지 화면이 흐린게 뿌옇게 잘 보이질 않는 것이었어요.
눈에 무엇이 끼었나?
아무리 눈꼽을 비벼도 맑아지지 않은 건 카메라에 부딪치는 빗방울 때문이란 걸 뒤늦게야 깨달았지요.
어차피 오늘은 하루종일 항해를 해야한다고 했으니까, 비가 와도 큰 지장을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요. 어제는 그렇게 좋던 날씨가.....

 

얼른 옷을 주워입고 배뒤편의 갑판으로 나가 진짜 비가 오는 지를 확인하려고, 길고 꼬불꼬불한 복도를 정신없이 걸어 문에 도달하였지요.
그런데 아무리 밀어도 열리질 않는거였어요.
아, 그러면 당기는 건가보다. 당겨도 열리질 않았읍니다.
아침이라 기운이 없어서 그런가?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바람때문에 그러니 세게 밀으라고 큰 소리로 말해 주더군요.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있는 힘을 다해서 열고 나간 곳은 배의 뒤가 아니고 맨 앞, 선장실 바로 밑이었어요. 
완전히 방향감각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갔던 거지 뭐겠어요.
어쩐지 복도가 무척이나 길다고 생각했지요.

비바람이 치는 속을 달리는 배의 앞머리가 바람이 세서 문을 열수가 없었던 거였읍니다.
하늘은 마치 성난 심술쟁이처럼 찌푸린 얼굴을 하고 약이라도 올리는 양으로 바람과 비를 합해서 퍼붓고 있었어요.

 

실망에 실망을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반대편 복도를 헤매는 바람에 방을 못찾고는 배의 맨뒤 갑판까지 가는 일이 생겼지요.  왜 이다지도 방향감각이 무딘지... ㅉㅉㅉ
배의 스쿠터에서 뒤로 웅장하게 내뿜는 거센 물살을 보고 있으려니 마치 물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겁이 더럭 나더군요. 


춥고 을씨년스러워 다시 방으로 돌아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는 운동이나 하려고 Gym으로 향했어요. 
갈곳도 내릴 곳도 없는 곳에서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았으니까요.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눈덮인 산과 물위에 둥둥 떠있는 조그만 빙산 조각들을 보며 트레드 밀(러닝머신)에서 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샤워를 끝내고 벼개에 $2.00 을 놓고는 부페로 향했어요. 이배는 이미 팁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 사람이 하루에 $10.00, 그러니까 항해중의 팁은 모두 일인당 $70.00 인 셈이지요. 더 안 주어도 되고, 마음에 안 들었으면 다시 돌려 받을 수도 있고, 기분 좋으면 더 주어도 되고.
유럽에서 돈 벌러 왔다는 내방의 스튜어드가 아주 잘 해주었기에 나도 조그만 성의 표시로 놓고 나왔던거지요.

 

부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창가로 스쳐지나가는 우중충한 바깥경치를 구경하고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식당보다는 부페가 좋더군요.
음식의 질은 일류식당을 뺨치고,  무엇보다도 식사시간을 구애받지 않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먹어도 되니까 (24시간), 자유로워서 좋았어요. 그리고 옷을 차려 입지도 않아도 되고.
워낙이 어딘가에 맞추어야하는 구속을 싫어하다보니까 그 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답니다.

 

배의 제일 앞, 선장실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 식당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사방이 탁 트인것이 마치 타이타닉의 뱃머리에 서있는 기분이었어요. 앞에 놓인 음식접시만 없었다면 말이죠.

 

비도 점점 약해지고 바람도 약해지고, 하여 밖에 나가 갑판을 거닐 수가 있을 정도가 됐어요. 

오늘 지나가게 되는 곳은 College Fjord  하는 조그만 빙하 베이인데,  아침 7시 16분에 들어가서 Wellesley Glacier 를 한 바퀴돌고 10시 36분에 Prince William Sound 라고 하는 곳을 들어 갔다고 하니까 아마 잠결에 갑판에 나갔을때와 짐에서 열심히 뛰고 있을때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의 바깥온도가 화씨 47도 정도니까 꽤 쌀쌀했지요. 그래서 중간정도의 자켓을 입어야 걸어다니겠더군요.

 

                            바다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만년설


배는 11시 52분터 오후 1시 57분까지 Cape Hinchinbrook 에 있다가 다시  Gulf of Alaska 로 항해를 시작했어요.

 

여행을 계속하면서 알은 거지만, 알라스카는 도로가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차로 여행을 하게되면, 페리를 타고 항구에서 항구로 가는데만도 18시간에서 24시간걸리는 것은 보통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불편한 페리에서 하루를 보내는것 보다는 여러가지 면에서 쿠르즈가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더군요.

 

 

아침겸 점심을 먹고나니, 벼란간 할일이 없어졌읍니다.
사람들은 자쿠지에도 들어가 찜질도 하고 하는데, 목욕탕만한 텁에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 바라보고 앉아있는다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고, 수영장은 몇번 휘저으면 마즌편에 다을만한 사이즈라서 마음에 안 들고, 그렇고 해서 길잃은 강아지마냥 배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돌아다녔답니다.

 

오늘 저녁은 선장과 함께 블랙타이 디너(정장을 입고 참석해야하는)라서 그런지 미장원과 스파에 여자들로 꽉 차있었고, 여기저기서 반지며 목걸이와 같은 악세사리를 팔고 있었어요.

배에서 사는 것은 모두 세금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좀 싼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있는 가게들은 사람들로 꽉차 있는게 발 디딜 틈도 없었어요.

 

다니다 보니, 로비에서 현악기 4중주 연주가 있어, 그냥 소파에 푹 파묻혀 앉아서 음악을 즐기기에도 아주 괘적한 분위기였어요.  그러다가.

미니골프도 기웃거리고, 게임방도 기웃거리다, 돈 1불을 들고 카지노에를 갔었지요.

25전짜리 스러트 머신에서 30초도 안 되서 다 털리고는 다른 사람들 돈 잃는것, 돈 딸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것등을 불구경하듯이 이리저리 구경하며 다니다 나왔지요.

 

계단을 아래위로 누비며,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침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갔었어요. 그런데 기관실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하더군요. 

내가 테러리스트처럼 보였나???


그런데 여기서 알은게 하나있는데, 듣고는 놀랬어요.

배에서 쓰는 물은 바닷물을 끌여 들여서 끓여 단물로 만들어 쓴다고 하대요. 거대한 물탱크를 보고 기절할 뻔 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물을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대요.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겠지만요.

 

할일은 없고 맛있는 냄새는 코를 찌르고, 배의 꼭대기에 있는 덱에 가서 피자를 하나 시켜 들고는 또 이리저리 서성서성.

쿡킹 클라스도 있고, 도자기 클라스도 있고, 짐에서 휘트니스 클라스도 있었지만, 그렇게 흥미를 끌지는 못했어요.
대신에 갑판에 있는 탁구대에 가서 탁구를 한참 치고나니 땀도 나고 기분도 좋더군요.
탁구대는 배의 맨 뒤에 있는 갑판에 있는데, 소용돌이치며 내뿜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치는 탁구의 재미도 괜찮았읍니다. 공이 몇개 바다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겪긴 했지만요.

 

그런데, 이제 고민이 생겼읍니다.
선장과 같이하는 블랙타이 저녁식사에를 가야되나 마나.
여자들은  칵테일 드레스로 한껏 폼을 있는대로 내고, 남자들은 펭긴처럼 턱시도를 쫙 빼입고 저녁 5시도 되기전부터 식당앞에서 서성거리는 게 눈에 띄더군요.


그중 낮에 갑판에서 본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반바지에 티셔츠차림의 낮에 본 모습과는 전혀 딴 사람으로 보였어요. 한벌의 옷이라는게 저렇게 사람을 달라보이게 만드는구나...


저의 저녁식사시간은 7시라서 생각할 여유가 조금 있었습니다.

방에 누워 테레비를 보다가 블랙타이디너에는 안가기로 마음을 먹고는 6시 30분경해서 부페에 가서  허리띠 풀러놓고 신나게 그리고 편하게 저녁을 때려 먹었지요.

 

식사후  내려오는 길에 보니까, 저녁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그 날의 정장한 모습을 기억에 새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느나라고 줄을 서있는 것을, 저는 엘레베터 타는 줄인줄 잘 못 알고 청바지 차림으로 그 속에 한참 끼어 서서 이방인 같은 눈길을 받는 것도 몰랐지요.
왜 이렇게 줄이 안 줄어드나 의아해 하다가 그게 사진 찍는 줄인줄 한참 나중에 알았지요.

 

프로그램을 보니 8시와 10시에 라스베가스에서 공연하는 어떤 마술사의 공연이 있고, 어떤 남미식 식당에서는 라틴 음악회가 있고, 또 한쪽에서는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마술을 보러가기로 마음먹고 극장쪽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느굿한 마음으로 옮겼어요.

 

모두들 저녁식사후 아직도 정장차림으로 우아하게들  앉아 있더군요. 그렇거나 말거나. 푹신한 소파에 구기듯 들어 앉아 구경은 아주 재미있게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벌써 밤이 깊어졌고, 한쪽에서는 댄스파티가 있다는데, 그만 오늘은 좀 일찍 자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지난 밤에 설친 잠을 충분히 자 두려고요.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까 사람들이 고래구경한다고 갑판에서 망원경을 들고 야단들이더군요. 거기 한구석에 끼어서 물에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고래 꼬리를 보고 환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합세를 했지요.


밤 11시가 넘었다고 해도 아직 대낮같이 밝아서 구경하는데는 아무 지장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별구경은 참 힘들다는 얘기가 되지요.

 

그리고는, 방에 돌아오니, 침대보가 열려있고 모든것이 깨끗이 정돈된 상태에서 벼개에 또 초콜렛이 염전히 놓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냠냠 씹어 먹으며, 초콜렛처럼 달콤한 잠으로 빠져 들어갔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