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삶이 스쳐간 흔적

엄마의 용서를 구하며

doggya 2009. 5. 23. 04:45


      엄마의 용서를 구하며 / 조세핀 김


      산후병으로 어린 동생들을 줄줄이 놔두고
      그녀가 열 두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언니들이 모두 시집가 버린 집에서
      핏덩이는 입양을 시키고
      나머지 동생들에게 엄마 노릇을 하며
      계모의 무서운 눈초리에서
      동생들을 보호해야 했던 그녀에게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조차
      느낄 새가 없었으리라

      악독했던 계모가 사고로 죽고 나니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단다
      천벌을 받은 거라고, 그러나
      어린 마음에 해방됐다는 기쁨보다는
      공포가 더 컸다고 했다.
      귀신이 되어 해코지 하러 올까 봐서

      자식들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는 밥 세끼 먹여주는
      공급자이외에 다른 존재가 아니었으니
      따뜻한 말 한마디
      가슴에 남는 사랑인들 받았으랴

      받아 보지 못한 사랑을
      자식에게 줄 만큼 창조적이 아니었던
      평생을 청상과부로 살아야 했던 내 엄마
      원망으로 멍들었던 어린 가슴은
      살아생전에 한 번도
      그녀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랑이 아닌 의무로 살아야 했던 모녀관계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사이에
      엄마를 묻고 나서야 찾아온 때 늦은 후회
      다시 태어나도 갚아야 할
      나의 가장 큰 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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