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만들어 낸 이야기

미시간 호수로 지는 해 - 2

doggya 2012. 3. 8. 01:33

영준과 현정이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신혼이 한 참 지나서도 거의 날을 거르지 않고 치근대는 영준이 그 때는 밉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그 재미없는 놀이를 왜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현정에게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가 원할 때 밤이고 새벽이고 없이 들이대는 영준에게는 전위란 게 없었다. 부엌에 있건 곤히 자고 있건 상관이 없었다. 생각나면 무작정 달려 들고 자기가 만족하고 나면 돌아 누워 골아 떨어지는 것이 그였다. 어떤 땐 섹스 후에 혼자 자위를 하면서 억지 만족을 구하던 현정이 영준과의 섹스를 핑게가 있다면 피하고 싶어지기 시작할 때 영준이 엘에이로 간 것이었다. 엘에이로 간 얼마 후부터 영준이 발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하고 편하게 받아 들였다. 게다가 갱년기가 다가오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인지 남편과의 잠자리를 근래 들어 한 번도 원해 본 적이 없었다. 현정은 그런 육체적인 것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그랬다. 영준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우리처럼 궁합도 잘 맞고 사이좋은 부부도 이 세상에는 참 드물 거야, 그치?"

"맞아, "

모두 다 그렇게 보았다. 현정 또한 거기에 굳이 반기를 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우리 이렇게 늙어 죽을 때까지 손 꼭 붙잡고 같이 살자.”

현정은 정말 그러리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주위의 관심을 끌어가며 한 요란한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고, 다정한 친구처럼 주위의 부러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 땅에 겨우 일 년 치 영준의 학교 등록금만 달랑 손에 들고 왔을 때는 설레임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불안감이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하늘만큼이나 무겁게 어깨 위에 내려앉았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기운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현정이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영준을 부축한다는 건 말이 부축이지 사실 겨드랑이 밑에 매달려 걷는 거라고 해야 옳을 거 같다. 다리가 완전히 풀려 버린 듯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아메바처럼 흐느적 거리다 그대로 무너져 버린다. 그럴 때 마다 함께 땅으로 내동이쳐 지길 몇 번이던가? 이삼십 번이 넘게 이런 식으로 걷다 보니 현정도 기진맥진해 졌다. 아무리 걸어도 영준은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지가 않다. 영준의 생명에 대한 불안감보다는 계속 걸어야 하는 이 일이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영준의 팔을 그냥 팽개쳐버릴 것만 같다.

"나, 아……안……자도 돼?"

"안돼. 계속 걸어야 돼."

퉁명스럽게 짜증이 섞인 소리로 대꾸했지만, 사실은 현정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계속하다가는 자신이 영준보다 먼저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처음으로 보는 영준의 초췌한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 사람이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던 지금까지 함께 살아 온 남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정의 남편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적어도 무언가 한가지는 남보다 뛰어난 게 있어 아내의 존경심을 불러일으켜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자고 연애할 때 빼고는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갖게 해 본적이 없게 만든 영준이었다. 내노라하는 한국의 명문대학을 나와서도 제대로 된 직장 한번 잡아 보지 못하는 무능력에 현정이 항상  벌어야만 유지할 수 있었던 가계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 조차도 현정은 불평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감쌀 수가 있었다. 

 

‘안 되겠다. 의사한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그래야 그냥 재워도 될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하루종일 이렇게 걸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눈은 감은 채 남의 집 차고 벽에 기대어 거의 땅바닥에 눕다시피 하고 있는 영준을 한 번 흘겨 보고는 전화를 꺼내 닥터 양의 번호를 찾아 돌렸다.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걱정스런 목소리의 닥터 양은 입원시킬 것을 제안했다

"치사량은 아니지만, 시스템에 얼마나 퍼졌는지 모르니까, 만약을 생각해서 당장 입원시켜요."

그 소리를 듣자 현정은 더럭 겁이 났다. 자신의 판단이 잘 못 되어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현정은 얼른 인수에게 전화를 해 그리로 차를 가져 오라고 부탁을 했다.

 

응급실에서 위 세척을 한 후 약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먹인 숯가루가 아직 남아 입술도 그 주위도 시커멓게 된 채 '자살미수'라는 딱지가 붙어 병원의 규칙에 따라 감시자가 24시간 붙어 있는 환자가 되어 누워있다. 평소에는 그리도 코를 잘 골던 사람이 지금은 너무도 조용히 죽은 듯이 자고 있다. 하지만 원래의 버릇대로 가끔씩 숨을 멎는 것은 여전했다. 그것 때문에 심장이 약하다고 조심하라고 의사로 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전엔 그거 때문에 많은 것을 조심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만약의 경우가 생겨도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가 뭐 그리 어려울까?

 

긴장이 풀린 것을 느끼자 현정은 창가에 놓인 의자에 그대로 쓰러지듯 앉아 버렸다. 허탈하게 내다 보는 유리창에 반사된 영준의 누워 있는 모습에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평생을 모시고 살던 홀어머니를 미국 온지 10년 만에 잃고, 이국땅에서 아니 생전 처음 치르는 장례식을 어떻게 할 지 몰라 절절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7살에 청상과부가 되어 오직 현정 하나만을 의지하고 사시던 엄마, 어떤 땐 참 마음의 짐이 되기도 했던 어머니였다. 아직까지도 현정이가 영준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유일한 건, 그 오랜 세월 동안 장모 모시고 잘 살아 주었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 단둘이만 살다가, 영준이가 들어오고, 인수가 태어나고, 그래서 2명이었던 식구가 4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해준 영준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현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죽이고 싶도록 미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데…… 한가닥 연민의 정 같은 것이 가끔, 아주 가끔 솟아 올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몹쓸 감상적인 생각이 현정을 묶어 놓고 있는 굴레였다. 언젠가 영준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리쿼스토어에 강도가 들어 권총을 머리에 대고 위협을 했다고 파랗게 질려 입술까지 떨며 말 한 적이 있었다. 생전 처음 당한 일에 밥도 못 먹고 덜덜 떨고 있을 때도 영준이와 죽음이란 단어는 연관을 지을 수가 없었다. 흔한 말로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같이 살게 운명지어져 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지금의 현정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 있다. 그가 죽으려고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한치의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

이미 영준은 현정의 곁을 떠난 사람이다. 적어도 현정한테는 그렇다. 그래서 현정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사는 것이 힘들 때마다 현정의 마음 속의 영준은 자꾸 작아져 갔다. 미국 와서 한국에서 보다 더 모든 것을 현정에게 미루는 영준이었다. 영준은 9남매의 중간에 끼어서 부모의 관심 밖에서 성장했다. 적극적인 다른 형제들한테 이리 저리 치이다 보니 참으로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해 버린 것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장래를 의지하기보다는 기회의 나라에서 무언가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 그로서리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캐쉬어로 일하며, 살림하며, 학교 가는 시간을 쪼개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과도기에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모든 것에 매달렸다.

 

피터를 만난 것은 바로 이때쯤이었다. 피터는 현정이가 수강하던 심리학 교수였다.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이 책은 내가 불과 몇 년 전에 학교 다닐 때 공부한 책이긴 하지만……."

첫 강의 시간에 책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깊어 마음의 제일 깊은 곳에 거두어 낼 수 없는 앙금을 남기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에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오케이, 오케이, 한참 전, 옛날에……."

"우하하하……."

흰 머리칼이 여기저기 반짝이는 그를 보며 모두 박장대소를 하는 바람에 첫 시간의 어색한 분위기는 깨져 버렸다. 그렇게 그는 농담도 잘했고 아버지처럼 자상한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선생님들만 보아오던 현정의 눈에는 그가 신선하기까지 했다. 중간고사의 한 과제였던 여러 학생 앞에서 구두로 발표해야 하는 시험을 리포트로 대신하게 해 달라는 현정의 노트에 자기 오피스로 오라는 대답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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