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평화님의 선물

재회

doggya 2013. 2. 17. 23:50

재회 / 김진학 당신을 보며 죽음을 생각합니다 내 세포하나하나에 박혀 있을 당신의 유전자를 생각합니다 용변을 받아내고 정신이 없으면서도 내 얼굴을 알아보는 당신은 시간의 외로움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납니다 여든 중반의 굴곡이 취한 시간들 사이에서 까마득히 당신의 젊은 날들로 거슬러 오릅니다 지친 듯 아물거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묵주알은 하나도 늙지 않은 모습으로 앙상한 손끝에서 돌아가고 있네요 당신이 올리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시간이 없는가봅니다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가까워진 이별의 침묵 내 안에 새겨진 당신의 유전자를 하나씩 꺼내어 눈물에 담글 시간입니다 그건 떠난 이의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당신은 나를 두고 떠날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신 당신은 떠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또 당신의 갈증으로 오래 아파할 것입니다 아마 내가 당신처럼 떠나는 날까지 통증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 때는 아마 내가 흘린 눈물 중에서 가장 진한눈물을 흘리겠지요 사흘 만에 처음 웃으셨고 사람을 못 알아보다가 나만 알아본다는 도우미의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그게 당신과 나의 모진인연입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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