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지구여행과 체험/한국

한국 - 길상사와 한용운의 집

doggya 2024. 6. 7. 06:36

한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이곳 저곳을 다니며 이런 저런 먹거리를 맛 보았지요.

역시 이런 재미는 한국이 좋은 거 같았어요.

 

대전에서 동네 이름은 모르겠고 강변을 산책하다가 멋진 풍경이 있길래 한 장 찍어 봤어요.

 

거제도의 굴 전문점에 갔었는데 처음에 이런 국을 주더군요.

 

굴이 들어간 죽인가?

 

이건 굴구이인데 계절이 늦어서 그런지 굴을 이렇게 익혀 주더군요.

 

통영의 시장통에서 먹은 생선 매운탕인데 무슨 생선인지 잊어 먹었어요.

그렇지만 매운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통영의 전복 전문점인데 아주 맛있더군요.

국수에 오징어 회하고 전복을 넣은 것이 물회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전복 돌솥밥이에요. 싹싹 다 긁어 먹었지요 ㅎㅎㅎ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에요.

근처에 고모집이 있으면서도 가본다 가본다 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 봤네요.

초파일을 앞두고 있어서 등이 많이 달려 있네요.

 

제단이었어요. 앞에도 옆에도 있더군요.

 

길상사에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신 곳이라는데 아마 일부분인가 봐요.

전라도 송광사 불임암에 나무밑에 수목장을 했다는 걸 어디선가 본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좀 의외였어요.

 

법정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곳

 

법정스님의 거처에서 밑으로 내려 오는 길은 아주 잘 꾸며진 산책로 처럼 좋더군요.

 

대웅전이 있는 곳을 피해서 뒷쪽으로 이렇게 멋진 산책로(?)가 있었어요.

 

원래 요정이었던 곳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건물이 뚝뚝 떨어져 있는 것이 운치있게 보이더군요.

 

본래는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고급 요정이었으나 요정의 주인이었던 고 김영한(1916~1999, 법명 길상화)이 법정 스님에게 자신이 소유한 요정 부지를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김영한은 일제 시대의 시인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등장하는 나타샤로 알려져 있으며, 백석은 연인이었던 그녀에게 자야(子夜)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김영한은 평생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식사를 하지 않았고, 길상사에 기부된 김영한의 대원각 재산은 시가 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영한은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대답했다고 할 정도로 백석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1999년 11월 14일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해를 눈이 오는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길상사 경내의 길상헌 뒤쪽 언덕에는 김영한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위의 글은 위키백과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성북동에 있는 숙정문이에요.

서울에 있는 동안은 틈만 나면 올라가던 성곽이었어요.

 

이 숙정문에 대한 것은 예전에도 썼었는데 다시 한번 쓰면 

숙정문(肅靖門)은 조선의 수도인의 한양의 4대문(大門) 중의 하나로 북쪽의 대문이다.

북대문(北大門)이라는 속칭이 있으나, 이는 근대에 와서야 불린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三淸洞) 산 2-1번지북악산 동쪽 고갯마루(근정전)동쪽)에 있다.

 

숙정문은 음양오행상 水, 智를 상징하는 북대문으로서, 1396년(태조 5년) 9월 도성의 나머지 삼대문과 사소문(四小門)이 준공될 때 함께 세워졌다. 그러나, 풍수지리설에 의해 북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 진다고 하고, 실제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위치하기도 한 바, 다른 한양도성 문과는 달리 실질적인 성문의 기능은 하지 못하다 1413년 폐쇄되었다. 대신 숙정문에서 약간 서북쪽으로 위치한 창으이문(彰義門) 인근, 오늘날의 상명대학교 인접한 지역에 홍지문(弘智門)을 내어 그쪽을 통해 다니게 하고, 실질적인 북대문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원칙적으로 위치상·명목상의 북대문은 숙정문(肅靖門)이나, 오행상·기능적인 북대문은 홍지문(弘智門)으로 여기기도 한다.

 

숙정문을 떠나 다시 내려오는 길이에요. 

계단이 엄청 많았지요.

 

거의 매일 그 앞으로 지나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몰랐던 만해 한용운의 집이 근처에 있다고 해서 가 봤어요

이 동상은 길가에 있었는데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게 신기했지요. ㅎㅎㅎ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음력 7월 12일) ~ 1944년 6월 29일)은 일제강점기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불교를 통한 언론, 교육 활동을 하였다.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에 대한 대안점으로 불교사회개혁론을 주장했다. 

3·1 만세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이며 광복 1년을 앞둔 1944년 6월 29일 중풍병사(입적)하였다.

 

분명히 스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가 보고 놀랐어요.

아내도 있고 그 것도 재혼도 있고 이혼도 하고 또 자녀도 있었다네요.

위의 사진은 살림집이었다고 해요.

 

시가 한 귀절 적여 있기에 다시 보려고 찍었지요.

 

동해안의 한 휴게소에서 찍은 건데 밑의 저 집들은 민박집이라고 하네요.

아주 운치 있어 보였어요.

 

강원도 덕구 온천에 갔을 때 개인탕에서 찍은 거에요.

물이 아주 좋더군요.

 

실내도 아주 정갈하니 잠깐 머물고 쉴 공간으로는 아주 훌륭했지요.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의 시간은 아주 알차게 잘 보내고 왔어요.

간 곳은 여러곳이지만 사진은 그리 많이 찍지는 않았네요.

그럼 또 다음 여행에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