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의 글들/삶이 스쳐간 흔적

악연으로 만난 너와 나

doggya 2009. 1. 29. 05:01




      악연으로 만난 너와 나 / 조세핀 김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 다음 날
      굴뚝 위에 앉아 졸던 다람쥐 한 마리
      가스를 먹었는지
      실족을 했는지
      그만
      벽난로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니 ……
      여기가 어디야
      아니 ……
      넌 누구야

      서로의 시선을 맞추고
      한참 신경전을 벌였다
      어떻게 봐도 분명히 너는 불청객
      고만 나가 주어야겠다
      아무리 애원을 해도
      우린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할 수 없지
      보디랭귀지를 쓰는 수 밖에……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 모양이 우습지도 않은지
      겁에 질린 다람쥐라는 녀석
      덩달아 뛰면서
      꼬리 털을 세우고 흰 이빨을 드러낸다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 주어야지
      뒷 문 열어 놨잖아
      무언의 대화가 한참 오간후
      선반 위의 그릇 한 개 떨어 뜨려 깨고는
      꽁지야 나 살려라
      열어 놓은 문으로 뛰어나가
      눈 위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날 노려 본다

      얘야
      추위에 내 쫓아 미안하지만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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