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니까요
베트남전쟁이 한창일 때 한 부락의
고아원에 박격포 탄이 떨어졌다.
몇 사람이 죽고 몇 사람은 부상당했다.
급히 도착한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여덟 살 소녀를 먼저 치료하기로 했다.
부상이 심했던 것이다.
당장 수혈이 필요한 이 소녀와 혈액형이 맞는
사람은 부상당하지 않은 고아 몇 명뿐이었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의사는 그 아이들에게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다친 이 소녀에게 누군가 피를 나누어 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한참 후 '헹'이라는 이름표를 단 아이 하나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그러다가 짐짓 확신에 찬 얼굴로 다시 손을 들었다.
간호사는 즉시 헹의 팔을 걷었다.
팔에서 피를 빼내고 있기를 얼마 후
헹은 나머지 한쪽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더니
작은 몸을 떨며 흐느꼈다.
당황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때마침 베트남 간호사가 도착했다.
헹과 몇 마디 나누던 그녀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헹은 당신들과 말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이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
자기 피를 전부 뽑아 주겠냐고 물은 줄 알았던 거예요.
자기는 죽는 거고요."
"그렇다면 왜 이 아이는 자진해서
피를 뽑아 주려고 했을까요?"
베트남 간호사가 헹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자
울음을 그친 헹은 너무나 맑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걘 내 친구니까요."
-『통하는 기도』차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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