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딱, 한 숟 가락만 더 주세요

doggya 2010. 5. 11. 09:55

 

 

딱, 한 숟 가락만 더 주세요!

 

 

 

가을이라 그런가 뭔 행사가 이리 많은지?

결혼식이 주류를 이루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비하면 밤에

도 가야할 곳이 점점 생겨나더니 이젠 그 횟수가 더 많아집니

다. 마땅히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야 하는 자리지만, 언제나 그

런 자리는 좀 껄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비즈니스 차

원에서 얼굴도장 찍으러 가는 이도 있겠지요.

  

서너 달 사이에 벌써 문상을 세 번이나 가고  병 문안도 두어

번, 이젠 청첩장 받아보는 일은 회사에서나 가끔 있고 제 가까

운 주변에선 누가누가 아프다거나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려옵니다. 그런 자리에 참석한 다음날이면 퇴근 후

어머니 댁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갑니다. 간다는 소리도 없이

불쑥 대문을 들어서면 잠옷 차림에 눈을 비비시면서,

  

"얘야, 오면 온다고 말이라도 해야 국이라도 끊이고 밥이라도

새로 해놓지! 넌 아직 그 버릇 못 고쳤냐?"

전 웬만하면 전화를 안 합니다. 이런 버슷은 대학 시절부터 혼

자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때 생긴 건데, 개강할 때쯤 나타나면

집에선 난리가 났었지요. 애가 실종 됐다고요. 아무튼 습관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냥 김치에다가 찬밥 있음 한 그릇 줘요!"

전 엄청 무뚝뚝합니다. 참 이상하죠? 밖에선 재미있는 얘기도

조리 있게 곧잘 하는데 집안에만 들어서면 말이 없어지니 말입

니다. 장남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대부분이 장남인

친구녀석들도 하는 행동이 저와 비슷한 것 같으니까요.

 

허기를 채우느라 어스름한 불빛 아래 밥상을 끼고 허겁지겁 먹

고 있는 제 모습을 어머니는 곁에서끝까지 쳐다보십니다. 저

는 모른 체 연신 숟가락질만 해댑니다.

  

"더 주랴?"

"예, 조금만··· 딱, 한 숟가락만 더 줘요!"

밥그릇을 불쑥 내밉니다.

바로 옆에 밥통이 있어도 저는 꼭 어머니한테 퍼달라고 합니다.

심지어 즐겨보시는 연속극 때문에 안방에 계실 때도 저는 어머

니를 부릅니다. 딱 한 숟가락의 밥을 더 먹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머니는 그 정말 딱 한 숟가락을 퍼주시고는,

 

"야, 연속극 다 끝나겠다!"

방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가십니다. 그 밥 한 숟가락 퍼주시는

게 어쩌면 어머니의 즐거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 요

즘입니다. 저는 먹는 것에는 전혀 욕심이 없습니다. 식사도 불

규칙하고 저녁은 술로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죠. 있으면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지냈습니다.

 

오랜 세월 어머니는 제 성격 맞추시느라 참 고생 많이 하셨을

겁니다. 전 한번 안 먹는다고 하면 밥상 들고 쫓아 다녀도 절대

로 안 먹었습니다. 그런 제 고집만 세웠지. 정작 어머니의 자식

에 대한 마음은 몰랐던 겁니다. 요즘은 배가 불러도,

 

'딱 한 숟가락.'

더 먹습니다.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더라도 굳이 불러서 말

이죠! 밥을 먹다 중간에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다른 곳에 시선

을 빼앗긴 어머니의 얼굴에서 세월의 상흔이 묻어 있음을 순간

순간 느낍니다. 자식들이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건강한

것이 어쩌면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건

하나둘이 아닙니다. 어머니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나한테 효도할 생각 마라. 너희들은 태어나서 아기 때 나와 네

아버지 얼굴에 웃음을 준 것으로 벌써 효도를 다한거나 다름없

다!"

늘 이해 안가는 말씀으로 자식들의 호의를 거절하시곤 합니다.

 

친구 어머니가 며칠 전 위암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친구녀석은

끝내 다른 친구들에게 말도 안 합니다. 전 눈치로 다 알고 있었

죠! 넘겨짚으니 그제 서야,

 

"수술이 상당히 잘됐어! 결과 좀 보고 좋으면 일주일 쯤 후에

퇴원하실 수 있을지도 몰라1"

애써 슬픈 빛을 숨기려는 녀석의 떨리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로 느껴집니다.

 

"야! 몇 호실인데?"

전 친구들한테도 무지막지하게 대합니다.

육두문자 날리는 건 기본이고 만나면 저한테 엄청나게 시달림

도 받아야 합니다. 술 고문부터 시작하여 저의 개똥철학까지

들어줘야 하니까요!

 

"응, ××병원 ××병동 ××호실인데··· 올라구?"

"이따 보자!"

저는 후다닥 수화기를 내려놓습니다. 오늘 친구 어머니의 얼굴

을 뵙게 되면 이번엔 제가 시달릴 것이 분명합니다.

 

"찬주야! 이놈 장가 좀 보내야 하지 않겠니?"

그럴 때 전 정말 난감해집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그 말씀이 오

늘 따라 빨리 듣고 싶어집니다.

 

 

출처 : 살맛 나는 이야기 (글 박찬주)

 

 

              Dreamy Love Song - Gheorghe Zamf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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