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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와 백화점

doggya 2011. 1. 28. 07:28

 

 

준이와 백화점

 

 

 

 준이가 백화점에 가자고 순영을 졸랐다.

 "엄마, 언제 데려갈 거야?"

 "아빠가 월급 타면 가자꾸나."

 "그럼, 몇 밤 자야 해?"

 "가만 있자, 오늘이 15일이니 앞으로 열흘 남았구나."

 "열흘이면 열 밤 자야 하는 거야?"

 "그렇지, 네 열 손가락 전부를 꼽아야지."

 "와, 그렇게나 많이?"

 순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불 홑청을 뜯고 있었다.

 "에이, 엄마, 너무해!"

 준이가 대문을 확 열어 젖히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문에 달

아놓은 방울종이 한참을 딸랑딸랑거렸다.

 순영은 대문 틈으로 내다보이는 골목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

다. 남편 월급 타면 은행 융자 이자 물어야지, 곗돈 내야지, 시아

버지 약값 보내드려야지, 준이 유치원비 내야지······.그러고 나

면 한 달 생활비도 달랑달랑한데 철없는 녀석은 저렇게 백화점

타령만 하고 있으니······.

 옆집 기태 엄마는 속도 모르고 백화점 구경시켜주는 게 뭐 어

렵냐고 했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준이를 데리고 백화점에 갔다

가 완구점 앞에서 값비싼 로봇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혼쭐

난 순영이었다.

 순영은 수돗가에서 이불 홑청을 빨았다. 시름을 씻어버리기라

도 하듯이 몇 번이고 맑은 물로 헹구었다.

 대문에 달린 방울종이 딸랑딸랑 울렸다. 내다보니 안으로 들

어오는 준이의 얼굴빛이 변해있었다.

 "왜, 누구랑 싸웠니?"

 "아니."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

 "엄마, 나 점심 먹은 거 다 토했어."

 "뭐라고? 낮에 사 먹은 호떡이 체한 거로구나. 내가 뭐랬어?

군것질하지 말라지 않던!"

 순영은 한달음에 동네 약국으로 뛰어가서 소화제를 사 왔다.

그러나 준이는 소화제를 먹고도 다시 토했다. 자리에 눕히자 어

지럽다며 울어댔다. 순영은 문득 불길한 느낌에 남편에게 전화

를 했다.

 "병원에 한번 가봅시다."

 남편이 준이를 업고 나서자, 순영은 준이의 신발을 들고 뒤따

라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준이를 진찰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머리 사진을 한번 찍어봐야겠는데요."

 엄마, 아빠는 말문이 막혀서 한동안 바로 서있지를 못했다.

 한참 후, 컴퓨터실에서 나온 의사가 급히 보호자를 찾았다.

 "수술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준이는 이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큰

주사를 맞으며 수술 시간을 기다렸다.

 곁에서 울고 있는 순영을 보고 준이가 말을 걸었다.

 "엄마, 왜 울어? 엄마도 아파?"

 "······."

 "나 처럼 많이 아파?"

 "······."

 "엄마, 내가 엄마 것까지 아플게. 울지 마."

"준아······.!"

 "엄마 우는 거 싫어. 엄마는 웃어. 난 엄마가 웃는 얼굴이 젤 좋

아."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와 준이를 끌차 위로 옮겨 실었다. 남

편은 묵묵히 벽 쪽으로 돌아섰고, 순영이 끌차를 뒤따르며 말했

다.

 "준아, 수술받다가 하느님을 뵙게 되거든 엄마 아빠와 더 살게

해달라고 빌어, 응? 그곳이 천사들이 사는 꽃대궐이라고 해도 준

아, 꼭 그렇게 빌어야 해. 엄마 아빠도 빌게. 우리 준이랑 함께 살

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을게. 라면만 먹고 산다 해도

준아, 엄만 우리 준이와 함께 산다면 늘 감사하며 살 거야······."

 준이의 눈동자 속으로 사뿐히 순영의 얼굴이 들어섰다.

 "걱정 마, 엄마. 난 얼른 나아서 백화점에 가야 해. 백화점 가

서 엄마 선물 사야 해."

 "엄마 선물?"

 "응."

 "무슨 선물?"

 준이가 엄마 귀를 잡아당기고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엄만 기운 속옷을 입잖아. 저번에 내가 봤다. 그래서 할머니

가 와서 준 돈하고, 아빠 친구가 와서 준 돈하고 배갯속에 감춰

뒀어. 백화점에 가면 엄마 속옷 사줄려고······."

 밤하늘에 하나둘 별들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별들은 모두 준

이가 들어가있는 수술실을 초롱초롱 지켜보고 있었다.

 

 

행복은 쫓아가 구할 물건이 아니다. 다만 즐거운

표정과 웃음을 늘 띠우고 있음으로써 복이 들어오

는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불행은 언제 어디서 닥

쳐올지 모르는 것이다. 또한 불행을 막을 길도 없

다. 다만 평소에 남을 해치고자 하는 감정을 없애

고 마음을 평온하게 갖는 것으로써 불행을 막는 근

본으로 삼아야 한다.

-채근담

 

 

출처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랑(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