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늘은수원화성.성를규경시켜드릴까요
자세한것은위폐이지홈폐이지참고하셔요
관심없으면안읽어봐도상관없고요
평일이지만특히 어린이들현장학습나온
유아들이많았어요...성곽을따라올라갔는데
아마제가본것은극히일부분
활쏘는국궁장도있었는데 시간제약
그리고엄첨많은사람들이줄서있었어요
성높은누각은자물쇠가채워져있어
누각에서바라볼수없었어요
나중에기회가주어지면또다시답사해볼량으로
오늘은꺼죽데기만보고 힐링하고왔습니다
수원성을다녀오고나서
2014년.9.17일수요일 ㅇ
-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습니다.
-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습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습니다.
-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팔달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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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포루는 북서포루의 서쪽 129보 5척의 거리에 있다. 치(雉)가 성 밖 19척까지 튀어 나왔다. 외면의 너비 27척, 5량 집을 지었다. 사방 2간인데, 구조는 동북포루와 같다. 3면의 평평한 여장은 누의 바닥과 이어지며,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을 내었고 안쪽에 나무사다리를 설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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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포루 | |
![]() |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검정 벽돌을 쌓에 치성과 같이 성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북서포루는 성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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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포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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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포루 | |
![]() |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일 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정조20) 7월 10일 완공되었다.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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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수류정(동북각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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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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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원화성 문화 재
단 관광 홈페이지에서 발췌
조선 후기인 1794년에 세운 화성의 남쪽 문으로, 문의 이름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성의 4성문 중 동쪽문과 서쪽 문에 비해 북쪽문과 남쪽 문은 더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서울성곽의 동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 지정번호 : 보물 제402호
- 지정연도 : 1964. 9. 3
- 시대 : 조선 1796년(정조 20)
- 유형 : 건축
- 소재지 :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입장료 \2000원
평일이라 관람객들이 그다지 없었답니다
전혀 예고치않은 나들이아랴서 발바닥 아파서 수원 성꺼죽데기만 보고
왔나 봅니다
여기는창룡문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관람차말고 그냥 도보를 성곽을 한바퀴 돌려면 1시간 30분 정도이면
수원화성 성곽을 구경할수 있다는 택시기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옷차림 신발 불편해서 겉모습 구경햇지만 상당히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자..오눌은수원화성.성를구 경시켜드릴까요
자세한것은위폐이지홈폐이지참고하셔요
관심없으면안읽어봐도상관없고요
평일이지만특히 어린이들현장학습나온
유아들이많았어요...성곽을따라올라갔는데
아마제가본것은극히일부분
활쏘는국궁장도있었는데 시간제약
그리고엄첨많은사람들이줄서있었어요
성높은누각은자물쇠가채워져있어
누각에서바라볼수없었어요
나중에기회가주어지면또다시답사해볼량으로
오늘은꺼죽데기만보고 힐링하고왔습니다
수원성을다녀오고나서
2014년 9.17일 수요일
성곽의 곷 수원화성은 아버지장헌세자에대한 효심으로 부친으 원침을 수원화산으로 옮긴
조선 제22대 정조대왕 이1794년 1월엧ㄱ공하여 2년9개월만에 1796년 9월에 완공햇다고합니다
둘례가 약 5,7미터 성곽의높이가 4.6미터 실학자인 유형원과정약용이설계석재와벽돌의 병용 화살과칭검 총포를 방어하는는 전근대적 성곽구조를 가졌다고합니다 이후200년동안 성곽이무너지기도하고 한국전쟁을격으면서 파손
1975년에 보수 복원 1997년12월 이탤; 나폴리에서 열린유네스크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수원화성 4대문 팔달문장안문 화서문 창룡문
수원화성을 출입하는 4개의문 팔달문과 장안문은 남북의 정문출입구랴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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