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 성북동 투어 성북동 가는길에 ♧

doggya 2020. 1. 10. 16:13

사찰 (길상사) 방문
#성북동 트래킹

#그녀의 여행기
#자작글
우리나라는 같은 사찰이름이 참많다
길상사 하면 과연 무엇이 먼저떠오르나요



#법정스님
#김영한
#백석시인
(백석시인의 연인자야)
애절한 사랑이야기

제가 설명 할려고 하는것은
길상사는 서울 성북구위치한다
흔히 혹자들은

(법정스님과 김영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착각 하기도 하지만
김한이 사랑한 분은 백석 유명한시인이랍니다

 스님과 사랑이야기로 착각해서 몇자 등록합니다

언젠가 ) 전 모밴드 회원님들과 다녀왔었다
성북동 일대를 ~~~
*최순우 옛집과
*조지훈 옛터
*선잠박물관
*선잠지역

*성락원 꺼죽데기만보고 쫓겨나고
*성락원 비밀의정원
예약해야 입장가능

*그리고 길상사
*만해 한용운 생가와심우장
*성북동 비둘기
*수연산방 (이태준가옥 ) 투어한적이있다

가이드선생님 설명을
들어면서 15명 다녀왔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구박물관 꺼죽데기만보고
예약 가능
관람료 ₩2만원
본론으로 길상사를 탐방하시는분
조금은 도움이될까하고서요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이야기빼놓을수없다

그리고 백석의시가 유명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샇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오막살이집)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길상사를 아시는분 이시를 분명히 알것이다




#길상사
※주소 서울성북구 선잠로 5길 68
지번 성북동 323

길상사는 대한조계종 소속 사찰
*1987년 고급요정 대원각을 운영하던 김영한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였고

*1997년 대원각 일부 개보수 길상사 창건
10년이라는 실경이끝에 법정스님도허락
스님의 설법을듣고서~

서울도심 위치에 자리한 원래 최고급
요정 대원각 요정주인 ( 고 )김영환
1916~1990)

*법명 길상화 님이 건물로 시주하여사찰 바뀜
*1995년 6.13.법정스님에의하여
*1997년 대한불교 조계종 등록 길상사로

이름바꾸어 재등록

*같은해 초대주지스님 청학스님취임
*2010년 법정스님 78세입적
길상사에서 지병으로 떠나셨다고합니다

#김영한
길상사의 원주인 (고 )김영한은 근대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알려진
자야 동일 인물이다


죽을때까지 한사람만 사랑한 여인자야
시인 백석의 연인 백석이 자야랴고
불렸던 그녀 기생 요즘기생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가세가 기울여 기루에 팔려 기생이되다
진향이라는 기명을 받고서 하지만

요즘 기생과 달라서 영리하고 미모도빼어나고 글솜씨도 뛰어나
대중잡지에 수필을 기고 할정도로

조선을 홍보하는 엽서의 모델이기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길은 아니나
그녀는 가무에 능해서 조선제일의 기녀

유명한 잡지에 수필을 발표할정도로
무엇보다도 백석과의인연이 특별하다
죽을때까지 사랑한 남자 시인백석을

만난다 지금의 길상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인 백석
*본명 백기행
*1912년 평안북도 정주출생
*오산중학교 졸업 하고

*일본 아오야 마 학원에서 영문학 공부
*1934년 귀국 조선일보 입사
여려편의 시집을발표하고 작품활동시작
*1941년 조선일보 지면을통해

시를발표
*광복후에는 신천지 학풍 적막강산
1947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1948년 발표

*해방직후 고향정주에머무렸으며

시인백석은 그를 주제로 한 석 박사논문만

 총600편 이룰정도이며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며

대중들에게 사랑도 한몸에 받은시인
우리들 가슴에 절절히 아름다운 시로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1955년 1월 사망 알려져있다고합니다

※김영한과 백석의 사랑이야기

백석이 일본 유학후 조선일보 기자로 잠시 일하다 함흥 영생여고

 교사로 부임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함께

앉게되어 첫눈에 반해 서로 동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가 김영한과 만나고 있다는게 알려지자 미련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김영한을 만난다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세번의

결혼 을 했고 김영한을


사랑하기에 만주로 도피하고져하나
김영한은
백석의 걸림돌이 될까봐 거절하고

결별한다
백석은 할수없 이 혼자 떠난다

그련데 누가 알았으랴 해방과 전쟁를
겪으면서 서로 갈라져 헤어져 살게될줄이야 38선이가로막혀 생이별

하지만 백석의 대한 김영한의 사랑은
끝나지 않고 백석의 생일이되면
음식을 먹지 않고 그를위해 기도

그를위해 문학전공 백석의 대한
자신의사랑을 담은 책을출간 그를생각한
마음에
*1999년 창작과 비평사에 2억원기금
백석문학상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법정스님에게 1996년
누구나 와서 마음의 평안을찾는곳이 되기바란다며 대원각을시주

하려고했으나 무소유 법정스님거절
김영한도 다른 종교인에게 시주할만도 한데 무려 10년동안실갱이

결국은
법정스님 이 허락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그당시 시세가 1000억이넘었다고합니다
7천평 부지에 40여동건물 대원각건물이


헉 ~~그럼 지금시세는 도대체얼마일 까요~?
우리는 상상도 못할꿈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죠

후회하지 않느냐 질문에 대답은 후회는 무슨후회 천억도 그사람

 시한줄만도 못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끝내 김영한은 백석 만나지 못하고
첫눈 오는날 자기 유해를 길상사 앞마당에 뿌려달라고 하고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사랑를 기억해 낸다
영화 속에나 나올만한이야기죠

죽을때까지 한사람을 사랑한 여인
김영한은 시인 백석의 연인
백석이 자야랴고 불렸다 합니다

불심이 깊은 불자가 아니더라도
무소 유 법정 스님 존경하는 분이라면
즐겨 찾으리라 믿으며 법정스님의

삶을 가치관을 존경하지 않는분이
어디있을까요
어느 사찰이나 이야기 가있고
길상사는 더욱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있다

김영한이 사랑한사람은 법정스님이 아니라 백석 시인이었답니다
최고급 요정 대원각 올라가는길은

담도
높고 성북동 가난한 문인들이
많이 살기도하나 부자들이 왕족들이

사는 곳도 있답니다
대원각 주인 요정주인 김영한
(길상화 법명)
이루 지못한사랑

길상사하면 꽃무릇이 또한장관
붉은상사화
꽃무릇이 필때쯤 다시한번 와보고싶다

스님은 근사한 봉분도 없고 그냥 뿌렸다는것 같아요
그리고 김영한첫눈오는날 유해를뿌려달랴고 했다는데
물어볼 불자도 도없고 스님도 못만나고
그냥 생각만 했어요
또 꽃무릇 상사화는 어느곳에 많이
피는지 겨울에 이뿐꽃과
단풍대신 새파란 맥문동만 보고왔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정보가 차이 가 날수도 있어요
장문을쓰면 오타도 발생하고

오늘 길상사를 다녀왔습니다
상사화가 피면 다시 와보고싶어요

아그리고 길상사에 서 점심도 공양받고왔어요 천원짜리몇장
적게 내어도 스님께서 외상도 된다고

안심하고 맛나게 먹었어요 저혼자 (주고받은 독백)


식사를 끝내고 그냥 나을려니 뒤통수가부끄려워서 불전함 공양하고
밥도 많이 퍼주셔서 남기면 안된다고


해서요 설거지하고 신기한것 젓가락은
없어요.ㅋㅋㅋㅋ


물컵도씻어놓고요

힌성대6번출구에서 버스2번타면
가능하답니다
하지만 저는 걸을려고 성곽을끼고 한성대입구 투어

4번출구서 혜화문 시작해서
성곽끼고서 선잠박물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문열지않고

언젠가보았던 이뿐꽃은 하나도 못보고
이번에 성북동 일대의 높은담 집들
세월아 네월아 전에 못보았던 성당

넥타이 박물관 길상사에서 탑돌이도하고 길상사를 일대를 투어
정법사 사찰도 가보고 맷돌박물관
아직 개장안함

숲속까지 들어갔다가 해도저물고
멧돼지 나온다해서 내려왔어요
나무계단이 있었어요

이정표 따라서 한국 가구박물관
예매가능 할인없음
입장료₩20000




그리고 언젠가 성락원쫓겨났는데
지금은 재판중인가 딱지가 붙어있었답니다 굳게닫혀 흉가같은생각

개인적 생각 비밀스련 정원이랴고
하는데~~~
성락원
정법사 거쳐서 맷돌박물관

성북동 가난한 문인들이 많이 살지만
또한 부잣집 고관들만 사는지 도로에주
차도 안하고 아름다운 멋진집들

소나무 정원수들은 말끔하게 정리정돈
모두가 예술이고 아름다웠어요
아 그리고 부자동네인지
여려나라 대사관들이 엄첨많았어요



대사관 꺼죽데기 건물만찍었어요
일일히 용량관계상 지루할까봐 보여드릴순 없지만요

길치랴서 약도찍기~~ㅋㅋㅋ

성북동 일대를 투어하고 돌아왔어요
용량 관계상 길상사만 이야기만포스팅 해보았어요

늦게온다고 신경쓸필요도 없고남에게
민폐 도 안되고 세월아 네월아~~
한성대입구까지 도보로내려옴

우리집에서한성대입구역 차타는순간부터
40분소요 전 늘 우리신랑님
퇴근하기 전까지 트래킹 완료
저녁 식사준비


*자세한것은 사진보고컴퓨터에서
설명할께요
일행 3명

길상사 이야기는 다음편으로 기대해주세요
성북동 투어를 다녀오고나서


2020년 1.9


4호선

한성대    4번입구에서    횡단 보도를 건넜습니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칠하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 매 머리모양의 장식)를 올렸다.

천장에는 봉황을 그려 이 일대를 새들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는 말이 전한다.

(한국민족 대백과사전에서 일부만 발췌 )



한양도성   여려차례   트래킹하였는데   서울의내사산  (백악산 남산 낙산 인왕산 )

4대문  은  동대문 (흥인지문 ,)서대문 (돈의문)남대문 (숭례문 )

북대문 (숙정문 )이랴고합니다  

그리고   4대문  사이에  중앙에는 보신각이   위치한다고 길가던 행인이 설명해주셨습니다 



한양도성  건축물은  항상느끼지만    참으로 신기합니다



혜화문 현판은 안보이네요 

시대 조선   성문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었던 조선전기 서울 성곽의 4소문 가운데 동북쪽 문(門). 성문.


#혜화문 


내용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翼工式) 우진각지붕건물.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웠다. 이 때 도성에는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이 설치되었는데,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이 문을 나서면 수유현(지금의 수유리)을 거쳐 의정부·양주로 도로가 이어졌다. 당시 북대문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혜화문은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으로 하였다가 1483년(성종 14)에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역시 홍화라고 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에 혜화로 고쳤다.

건물은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마지막으로 1684년(숙종 10)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그 뒤 한말까지 동북 방면의 성문으로 보존되어오다가 1928년에 도시의 확장과 더불어 헐렸다. 지금은 문이 있던 위치만이 알려져 있고 문과 관련된 유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문의 모습은 아래쪽에 하나의 아치형의 출입구를 둔 돌로 쌓은 육축(陸築)이 있고 그 위에 누각을 올린 것으로, 전형적인 소규모 성문의 형태를 취하였다.

육축에는 하부를 큰 장대석으로 받치고 그 위에 무사석(武砂石 : 돌로 층을 지어 높이 쌓아 올린 축석)을 불규칙하게 쌓아올렸으며 위쪽 좌우에 2개의 누조(漏槽 : 홈통)를 돌출시켰다. 그 상부에는 낮은 담을 쌓아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성가퀴[城堞]를 두었다. 기둥 사이에는 판문(板門)을 달았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에는 회반죽을 칠하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 매 머리모양의 장식)를 올렸다. 천장에는 봉황을 그려 이 일대를 새들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는 말이 전한다

(출처   한국 민족  문화대백과사전   발췌 )


계단을  올라갓어요  계단은  여러차레보여드렸듯이 조금 높고 가파르답니다





일반  주택인지    그래도  어마 어마해요 


성곽처럼   지어진주택 도성역활도   했지만  

도성안에    많이거주했나 봅니다 





가는길에  선잠 박물관  혹시나   하고   관람하려고했으나  문이 굳게닫혀있었어요

시간도  지나고   휴일도 아닌데    닫혀있었어요  그래서  휴일인가하고   확인하기 ㅋㅋㅋ



이만큼 오다보니   언젠가 최순우엣집

조지훈 집터  오는도중에   성북 초등학교 도지나오고요 

부자들이 다닌다는 홍익  사대부속고등학교  

부자집자녀들이   다녔다고하더군요 지나가는 길손이 알려주었어요 

투어한    결과   성북동에는   여려나라 대사관이   많았어요  



가다  보니까  무슨건물인가   하니  성당이 나타났습니다 

성북동  높은 담벼락 의집들만 보고  올라왔는데   성북동 성당  양지바른곳에  위치 


우리가  생각하는 성모  마리아는  아니었습니다 


성당  일대    


지나가다가   높은 담쳐놓은 건물 만 바라보다가  신기해서요 




#피라칸타 (Pyracantha)

 

* 장미과의 상록활엽관목

* 꽃필때:5~6월

* 높이: 4~5m

* 서식지 : 햇볕아래,숲의 그늘,

보습성이 있는 토양

* 원산지 : 중국서남부

* 분포: 한국, 유럽,북아메리카

* 꽃말 : "알알이 영근 사랑"

* 10월경에 새빨갛게 익은 열매는

한 겨울을 걸쳐 봄이 될때까지

나무에 달린채로 동박새, 참새,

딱새등 겨울 새들에게는 없어선

안되는 소중한 겨울양식,

겨울 새들에게 희망을 주는 열매.

* 울타리나 조경용 관상수로 식재


#꽃양배추 (c​auliflower)

꽃말 : 축복

 

양배추를 뜻하는 라틴어 'caulis'와 꽃을 뜻하는 'flower' 로 이루어진 꽃양배추이다.

 생김새가 모란꽃과 유사해서 잎모란으로도 부른다.

배추는 배추인데 색이 분홍 자주 흰색으로 녹색과 조화되어 은근한 매력을 보인다.

 

추운 겨울철 노지에서 피는 몇 안되는 꽃이다.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잎이 착색 되며 가장자리의 잎새모양이

오글오글 주름져서 꽃보다 아름답다. 꽃보다 잎새인 꽃양배추이다.

 

풍부한 비타민C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인 비타민C는 가열하면 쉽게

 파괴되지만 꽃양배추의 비타민C는 가열해도 쉽게 손실되지 않아 수프나 볶음 재료로 활용된다.

 

시골아줌의 수수함을 가진 배추가

색을띄고 추운날에도 살아 있음은

분명 신이내린 축복이다.


오늘도 모든 이웃들에게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꽃양배추 (c​auliflower)

꽃말 : 축복

 

양배추를 뜻하는 라틴어 'caulis'와 꽃을 뜻하는 'flower' 로

이루어진 꽃양배추이다. 생김새가 모란꽃과 유사해서 잎모란으로도 부른다.

배추는 배추인데 색이 분홍 자주 흰색으로 녹색과 조화되어 은근한 매력을 보인다.

 

추운 겨울철 노지에서 피는 몇 안되는 꽃이다. 온도가 내려감에 따라

잎이 착색 되며 가장자리의 잎새모양이 오글오글 주름져서 꽃보다 아름답다.

 꽃보다 잎새인 꽃양배추이다.

 

풍부한 비타민C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인 비타민C는 가열하면

 쉽게 파괴되지만 꽃양배추의 비타민C는 가열해도 쉽게

손실되지 않아 수프나 볶음 재료로 활용된다.

 

시골아줌의 수수함을 가진 배추가

색을띄고 추운날에도 살아 있음은

분명 신이내린 축복이다.

오늘도 모든 이웃들에게

축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기도한다.


주택들이  빌라들이 모두   화려 하고높아요   







누브티스 넥타이박물관 


이동하면서      넥타이박물관이라서

 신기해서 들어갔습니다 

외부에는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카페같은 분위기  

하지만  조용  


가다가   넥타이 박물관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진찍어도  되냐고하니   승락해주셔서  담아 보았습니다 

지나가다가  신기해서 들어왔다고요     주인이허락해주셔서  

담아보았습니다 

각종악세사리도   있었어요 판매도하느냐고  물어보니  판매한다고하셨습니다   





각종 넥타이  다양한넥타이 

박물관보다는   카페같은 분위기  였어요 

소품들도  많고요 


비품   그릇도   있고요  

하지만 주방쪽으로는  가지말라고하셨습니다  ㅋㅋㅋ



넥타이 변  천사인가요   아시는분도  안중근 의사만알것 같아요 



고급   백화점에서  보는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어요   

팔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아여기는  넥타이박물관입니다 

일종의    카페 같기도   했어요 




카페인것 같았습니다 




성북동 주택들은 대부분   담이높고   가난 한 사람들도살았다고하는데 

일부계층은   부자들인것 같았나봐요 ㅋㅋㅋㅋ

어디골목에는  길없음  적혀있기도  살세로길이없는지  

확인안해봄  

느낌에는  길이있을것 같은예감 







성북동 일대에는 대사관 건물이 많았어요 


높은 담위의  소나무


정원수들도    다들  멋졌어요



성북동 일대는집들이  대부분  높은 담   

길거리에도 주차한 차량도  하나도 없어요  



2번버스가  운행  합니다  어디가출발지점인 지 모르지만

한성대입구   6번출구에서   승차가능  길상사까지  간답니다 

노선직접확인하셔요  

그리고 정법사  맷돌박물관까지도   가는 것 같았습니다


길상사를  가기전 이모저모를  담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진자 길상사를  보여 드릴께요 


20120년   1.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