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행복님의 삶

♧여주시 효종대왕왕릉(영릉)♧인선왕후 릉

doggya 2020. 4. 22. 13:37

♧여주시 효종대왕왕릉(영릉)♧

효종   (조선   17대왕 )


효종 (조선 )

이호, 孝宗


소현세자 대신 왕위에 오르다

효종은 1619년(광해군 11)에 인조와 인렬왕후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호(淏), 자는 정연(靜淵)으로, 인조반정 후 봉림대군에 봉해졌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봉림대군은 아우인 인평대군(麟坪大君)과 함께 강화도로 피란을 갔다. 그러나 강화도마저 함락되면서 청군의 인질이 되어 삼전도로 압송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부왕인 인조가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하는 치욕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후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보내져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두 형제는 심양에서 너무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소현세자는 청나라 고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개화된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와 화친하는 것이 조선의 평화를 지키고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반면 봉림대군은 철저한 반청주의자가 되어 갔다. 그는 인질로 잡혀 온 자신의 처지와 노예로 끌려와 고생하는 조선 백성들의 참상을 생각하며 청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곤 했다.

1645년(인조 23), 먼저 귀국한 소현세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조정에서는 소현세자 서거 40일 만에 후사를 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종법상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봉림대군이 새로운 세자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데는 단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봉림대군은 급히 귀국하여 세자 책봉을 받았다. 그리고 1649년(인조 27) 5월에 인조가 죽자 5일 만에 즉위해 조선의 17대 왕이 되었다.

효종은 어려서부터 기국과 도량이 활달했고, 장난하며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행실이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다. 또한 타고난 천성이 매우 효성스러워 인조가 항상 효자라고 칭찬해 사랑과 기대가 특별히 높았다. 그래서일까? 인조의 왕위는 장자인 소현세자가 아닌 둘째 아들 봉림대군이 이어받았다. 물론 봉림대군이 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소현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조의 미움을 받고 있던 소현세자가 설령 살아 있었다고 해도 왕위를 물려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효종은 1명의 정비와 3명의 후궁을 두었으며, 그 사이에 1남 7녀의 자녀를 보았다. 정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는 장유(張維)의 딸로 1630년(인조 8)에 당시 봉림대군이던 효종과 혼인했다. 효종과 함께 심양에서 8년간 인질 생활을 했으며, 18대 왕인 현종을 비롯해 여섯 공주를 낳았다.



출처  (조선 국왕전 )다음백과에서 발췌  







효종대왕 영릉     처음에 동구릉에있다가 옮겨왔다고합니다

조선왕릉 최초로 상하 륨형식  

왕의 무덤에만 곡장을 둘려  왕후의 무덤과구별  석물의  배치와규모는 동하게  갖추고 

봉분에는 병풍석을 세우지않고  12칸의난간석설치 

더욱자세한것 본문 읽어 보셔요  






개방시간입니다 








실제모습입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가을에  와도단풍이   참아름다울것 같아요 




겨울 모습 입니다 



묘옆에는   항상 지킴이문인과 무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문석인은 아마   책을 들고  무석인은 칼을 든것  같았습니다 











효종대왕  영릉  으로향하는 길에는  산수유가   지켜주고  있고요 



효종   영릉 재실   과  재실 배치도 설명서 입니다 







재실은   제관들이 머물며   제사음식을 만들고  제기를 보관 제사를 준비하는집

그련데  방이   아주작았어요     말단  벼슬이랴서그랬을가요  호기심에서  이방 저방  모두다들여다 보아도 

방이작았습니다


아그리고  신기한것 방바닥 장판에는  어릴 적 많이보았던  장판  반질반칠하게

  콩기름 도 바르고  하던 노란장판

하지만   세월탓인지 장판은 반질 반질하지  않았습니다  



엣날 조선시대 사람들은 키도작았나   불필요한 오지랍   ㅋㅋㅋ

좁아서  잠은 어찌잘까요    제사모시는 용도  만   사용했냐   그럼 숙식은 어디에서   ?


#회양목입니다  

회양목을  많이   수목원 다니면  서보았는데 상당히큰나무에   놀라고 

300년동안   자라온나무로    유래와역사가 있어  

2005년     4.30일 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합니다 


 

걸어다니면서     역사 공부도   직접 많이    합니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  그래서   훌쩍 백팩메고   낯선곳을  찿아서  

다니게  됩니다  



회양목 설명서 








재실주변에는   오래된 고목나무들이  많았습니다 



우와   ~~~~~~~~~~~~~나무가몇백년되었을까요   ?

말라비틀어져도  엄숙해집니다  

아람드리  나무들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임금님의    호위무사처럼요  






조금  양반집    고택같은   느낌도  들면서요 



저는  여기저기 재실을 둘려보고 요 

물론  들어가지 마시오  



고궁 처럼  사이쪽문도요  출입하는 문인가요  

충돌주의    저야물론  키가작아서 부딪힐일없지만  무의식적으로 

숙이고      재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아그리고  돌도 된 문지 방도  높아요    엣날분들은 왜그리문지방도 

  높게했을까요    ㅋㅋㅋㅋ

관절염  걸리게요 ㅋㅋㅋㅋ


#산수유  



요즘   하얀꽃나무  엄첨많은데     돌배나무입니다  



#갈참나무  랴고적혀있네요    



한참 올라오니    세종대왕  왕릉으로가는길    아마   이길로  갈수  있나  봅니다 

세종대왕  왕릉을 볼수  없어서   효종대왕 왕릉 찿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세종대왕  왕릉은   전편에서       참고하셔요  



인선왕후   릉 석마가 보이것보니   아마   인선왕후능같죠





세종대왕   왕릉 (영릉 유일한 최초합장릉 이라고합니다 )



그래서   패스하고요     



효증  대왕릉으로  올라갑니다 

세종대왕  왕릉이  관람불과라서  효종대왕  왕릉을  찿는분들이  

많았습니다  인기   절정 이었습니다    



아마  익숙한 모습일 것 입니다  동구릉에서 보여드렸고요     

정자각과  사당 

정자각은  능침에  누워계시는 왕과   왕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어로    왕이 걷는길 


뒤로  왕후   릉이 보입니다



향로    ~~~~~~~~~


홍살문     능역을 랄리는 문    

참여려차레   보여  드린것 같네요     호국원  갔을때도  보여드렸고요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 봅니다   

갑자기  아버지생각에  울컥하기도  하네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곳인지    방인지알고   신나게  뛰어올랐더니    무쇠솥이   있더군요  

일종의  수락간인가   ~~~~~~~



아여기서도 인선 왕후  왕릉이  보이네요  뒤로요

    나중에  직접  보여드릴게요  


제상  ~제수를  올려놓는상 

향상 ~향로  향합을 올려놓는상

축상  ~축문을 올려 놓는상 


잘안보이지만 

*제수신설도

 임금님이라서 우리네  사가 제수용품보다엄첨 많더군요


위에서  아래로  

*제기류  

작  ~작점  술잔과 받침대

시접기    수저를 놓는제기

면기 ~국수를  담는제기

탕기 ~탕을 담는 제기

접자  ~떡을 담은 제기

종자우리  ~과일 을 담은 제기

산뢰   용작   ~술을담는 항아리와  술을뜨는재기   


*(기산제 )

취위    제향을 모시기위해  자리에선다

초헌례~신에게   첫잔을 올리는 예

아현례 ~두번채잔을 올리는 에

종현례 ~세번채잔을 올리는 에 

망료례~제례에쓰는   축문을  태우는  예 


늘 저는  아침에  일찍움직이니 하루 생활권으로 돌아오려면 제가  갔을때는  

  거의인적이  없어요 

그려다가 갑자기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특히세종대왕  릉관람불과라서  

 효종대왕 릉   더욱더  많이  찿는가 봅니다 


꼭사람들이 저를  따라오는  사람처럼요 

나는  재수가좋아  정말 재수가 좋아  늘  가는곳 마다

제가  다녀간 이후    꽃길도   자연적 거리두기로    막아버리더군요  ㅋㅋㅋㅋ



경사랴고  말할것 도 없지만 조금 가파르게 올라가니  인선왕후릉이   나타났어요 

인선왕후는 (효종임금 부인   1636년   병자호란으로  8년동안  심양에서  불모  생활을하고   세자빈으로 봉해진 왕후랴고합니다

소현세자와     그의부인 강빈 봉림대군 과 풍안부부인 (인선왕후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했다고합니다 


인선왕후   릉  정면에서 볼수 없었어요    

길이  안나와있어요     효종  왕릉과    인선왕후   왕릉 을 관람하고  저도 

다내려와서  정면을찍을려고   갔었는데   누군가가 겁없이 무단  으로사진찍는다고

  올라가니  어디선가 


직원이    호르랴기 불면서 벙개처럼 나타나서 벼락같이   호통을   치고  있었어요 

아무리  사진 찍기  좋아하고 인증샷 남기기   좋아하더더랴도  무분별 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죠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요       어느지점까지는  밧줄이   쳐져있어서 

 못들어가게    해두었어요  

아그리고  고궁이나   능  원   묘   모두 음식물 먹는것도 


 차마시는것도 금지 인것 아시죠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하면 어디선가불현듯이

  귀신같이   직원 이  나타난답니다  

물론  반 려동물  출입 금기사항이고요  



#인선왕후  (조선시대 )


 

인선왕후 (왕비 )

다른 표기 언어 仁宣王后 동의어 인선(仁宣)

1630년(인조 8) 봉림대군(鳳林大君)의 부인으로 간택되어 다음해에 가례를 올리고 풍안부부인(豊安府夫人)으로 봉하여졌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이 심양(瀋陽)에 인질로 갈 때 따라가 8년간이나 머물면서 많은 뒷바라지를 하였다.

1645년 소현세자가 죽으면서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자 세자빈이 되었으나, 책봉을 제때 받지 못하여 사저(私邸)에서 넷째 딸(숙정공주)을 낳게 되었다. 그 뒤 책봉되어 1649년 효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고, 2년 뒤 정식으로 책명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효숙(孝肅)의 존호를 받아 왕대비로 있다가 1674년 질병을 얻어 오래 신고(辛苦)하다 회상전(會祥殿)에서 죽었다.

이 때 그녀의 시어머니인 인조비 조대비(趙大妃)가 어떤 복(服)을 입느냐 하는 예송(禮訟)이 일어나, 기년복(朞年服)·대공복(大功服)을 둘러싸고 송시열(宋時烈)과 윤휴(尹鑴)의 대립이 크게 일어났다.

소생은 1남 5녀로 현종과, 숙안(淑安)·숙명(淑明)·숙휘(淑徽)·숙정(淑靜)·숙경(淑敬) 등 공주이다. 경렬명헌(敬烈明獻)의 휘호(徽號)가 올려졌다. 시호는 효숙경렬명헌인선왕후(孝肅敬烈明獻仁宣王后)이고, 능호는 영릉(寧陵)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왕대리)에 있다.

(출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다음편을 기대   해주셔요 



*내가찿아간방법
*대중교통 ( 지하철)
*경강선 세종대왕릉역 1번출구 하차
버스이용
내가탄버스 961ㅡ1번
올때 964번


세종대왕릉을 다녀오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