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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아트 뮤지엄 - 3. 달리가 미소 짓던 날

doggya 2006. 7. 10. 06:48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처음 보시는 분들께서는 1편에 간단한 뮤지엄의 소개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오늘은 초현실주의를 소개할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보는 것 같다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피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이랍니다.
색채도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메세지도 모두 좋아해요.

 

좀 보기 거북한 그림이 있더라도, 대부분이 그렇지만, 이해를 하려고 하면 참 깊은 뜻을 담고 있는 것들이니 끝까지 봐 주세요. ^_^

 

 "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파이다."

이것이 바로 초현실주의랍니다.

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어 상당히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운동이었지요.

그러다가 1924년 브르통이 초현실주의의 첫 번째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이 그룹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서 유럽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이러한 현실과는 다른 세상을 탐구하려 했지만, 현실을 넘어선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여기서 주목한 것이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조명한 꿈의 세계이었답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한 것이라고 해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화가를 들라면 살바돌 달리를 들 수 있는데, 다음의 그림이 그러한 화풍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다고 해요.
결국 초현실주의자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초현실주의에 대한 열광은 1930년대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지만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소규모로 유지되고 있으면서 미국에서 다른 현실주의로 변해가게 되고 또한 샤갈로 이어지요. 


그럼 우선 대표적인 화가 달리 Salvador Dali(1904~1989)의 작품을 볼까요?

 

달리의 작품 세계를 현대 미술사조에 따라 어디에다 형식적으로 끼워 맞추기는 쉽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1940년대 이후부터 화가 자신이 아방가드 미술과는 상당한 거리를 취하고 베르미어, 미켈린젤로, 벨라스케스와 같은 과거 거장들의 전통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적 개성을 살렷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초현실주의 그룹의 대표화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1939년 공식적으로 초현실주의 그룹과 결별한 후에도 그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에서 떠나지를 못 하는 성향을 보여주고 있었어요. 

 

 

                                1937년에 그린 괴물의 창조

 

 

   위에 있는 그림의 왼쪽에 있는 여인을 그리기 전에 한 스케치예요.

 

스페인 출신의 화가 달리는 곧 프랑수 초현실주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의 재미있는 주제들을 심오하게 탐구하게 됩니다.
소재를 꿈의 세계를 전달하는 송신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자동기술법과는 반대로 달리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유효한 꿈을 지속시켜 주는 정신착란을 객관화하고 체계화 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해요.

 

1936년에 완성된 조심스럽게 대형 피아노의 뚜껑을 여는 화학자, 제목조차도 말이 안 돼죠?

 

이것을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paranoiac-critical method)"이라 부르고 있으며 1930년대 많은 글들을 통해서 이를 발전시켰지요.

1930년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정신착란 현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이성적 인식의 즉홍적인 방법"으로 정의를 했어요.
편집증을 마치 "자신의 거만한 찬양"처럼 인식하고 있으며, 예술가가 예술적 재료로서 그 자신의 강박관념과 욕구를 조직하기 위하여 그 강박관념과 욕구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체계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달리에 의해 독자적으로 그려진 기이한 인물들의 저변에서 우리는 한 예술가의 뛰어난 지성과 광범위한 교양을 발견할 수 있으며,  항상 그림을 지식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생각한 한 인간을 만날 수 있을거예요.

 

 

                            1936-37에 완성된 영원을 보는 시각 

 

우리시대 예술에 달리가 이룩한 큰 공헌은 조형 언어나 재현에 있어서의 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이미지 창조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1926년부터 입체주의를 포기한 달리는 홀로 전통회화를 무기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게 되지요.

달리의 이미지들은 역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의 불안은 모순을 통하여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달리의 이중 이미지나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에 대한 취향은 어떻게 그것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읽혀질 수 있어요.

 

 

                   정확한 연대가 생각이 잘 안나네요. 죄송


또한 그의 상징들의 기원도 그의 삶 자체에서, 즉 카다케스와 크레우스 케이프의 암석들, 암푸르단의 평원, 어머니의 죽음으로 얼룩진 유년기, 우상숭배에 가까운 갈라에 대한 헌신, 편집광적 기질 등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다음은 달리의 연필 스케치 몇장이예요.

 

 

 

한번은 파리에 입성을 할때, 자동차에다 브로컬리를 붙여 장식을 하고 나타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러한 행동은 어릴때 자기에게 무관심했던 어머니의 관심을 끌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던 것과 한 맥락으로 통하고 있답니다.


 

 

서랍이 달린 미로의 비너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심취된바 있는 달리는 '불멸의 그리스와 현대의 차이에는 프로이트만이 존재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불멸의 그리스 시대엔 신플라톤 학파의 순수한 인체가, 현대에는 정신분석학에 의해서만 열리게 되는 서랍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라고 했다고해요.

 

 

다음은 같은 초현실주의를 따랐던 마그리트(1898-1967)예요.

 

 

                                1938년의 정지된 시간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르시네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14살이던 해, 그의 어머니 아들린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해요.
그는 벨기에의 왕립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짧은 군복무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Georgette Berger와  1922년 결혼하고, 그 당시 유행이었던 아름다운 벽지의 소모가 많아지면서 많은 미술가들이 그러했듯이 벽지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1914)>의 복사본을 보게 되는데, 이 그림에 그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감명을 받았고, 화가로서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해요.
1926년 벨기에에서 결성된 초현실주의 그룹에참여하게 됩니다.

마그리트는 1927년에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으며, 그 후에 계속적으로 뉴욕, 파리 등 예술의 중심지에서 회고전을 열었어요.

 

 

                                 1937년, 자유의 문턱에 서서


다음은 탱가이 (Yves Tanguy 1900∼1955) 에 대해서 입니다.

 

파리에서  출생한 미국의  화가로써  어린 시절을 브르타뉴지방에서 지냈으며, 10대에는  선원이 되어 각지를 여행을 했다고 해요.
1924년 파리로 나가 화랑에서 우연히 본. 키리코의 형이상적인 그림에 충격을 받고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게 됐는데,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1927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면서 초현실주의의 유력한 멤버가 되었어요.

 

 

                                  1945년에 완성된 급한 경사

 

사막이나 바다 밑을 연상시키는 망망한 무한공간에 기이한 물체를 표출하여 지표에 짙은 그림자를 던지는 환상적 작풍을 그렸는데, 풍화된 뼈나 조개껍데기 화석과 흡사한 유기적 형태를 가진 이 물체는 현실과의 대응을 가지지 않고 황량한 내면의 심상(心象) 풍경 속에서 증식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1939년 미국으로 이주, 1942년에 시민권을 얻고 미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미국의 전위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지요.

 

 

        1949년에 완성된 무제, 나 같아도 제목을 못 붙일 것 같아요. ㅎㅎㅎ

 

 

                        1933년에 입체 작품, 만든 보이지 않는 확실성

 

다음에 보여드리는 그림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초현실주의를 지향한 Paul Devaux 의 작품 한점입니다.

 

 

                                   1937년의 작품, 등잔불

 

어떠셨어요?

보시기가 좀 거북했나요?

그러나 미술사를 크게 장식한 한 장르기 때문에 소개를 해 드린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는 작품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사진까지 찍어 줬더니, 나오는 길에 보니까 달리가 날 보고 미소를 짓고 있더군요. 고맙고 기특하다고. ㅎㅎㅎ

 

다음에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구경시켜드릴께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