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은 때입니다. 교향곡 제1,2번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제2기(1804-1816)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입니다.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의 작품입니다.
제3기(1817-1827)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인데 영감의 창작기입니다.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이후의 감각을 초월한 시대의 작품을 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9번 등이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합니다.
Symphony No.4 in Bb major op.60
1806년 그가 36세 때의 작품인데 그의 일생 중 가장 조용한 시기의 작품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의 작품 번호 중 홀수를 투쟁적인 작품이라 하고 짝수를 평화로운 작품이라 말하는 이도 있는데 여기서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제3번과 5번에 비하면 아주 대조적입니다.
그러기에 슈만은 말하기를 이 것은 북부 유럽의 신화에 나타나는 2인의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이스의 미녀라고 했습니다.
1806년 여름, 베에토벤은 브룬스빅 백작의 별장이 있는 헝가리의 시골에서 지내면서 백작과 그의 누이 테레제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면서 쓴 작품이니만큼 그의 생애 중 가장 평온한 시대였습니다.
비록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 잊지 못했던 것입니다.
1 Adagio-Allegro-Vivace
2 Adagio
3 Menuetto-Trio-Allegro vivace
4 Allegro ma non trop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