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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친정엄마

doggya 2010. 8. 29. 22:31

 

 

아주 특별한 친정엄마

 

 

 

 "얘, 너 수희 맞지?"

 수희는 희망보육원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안젤라 수녀님과 정면

으로 딱 마주쳤다. 수희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는 홱 돌아서

서 뛰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수희의 등 뒤에 업

힌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기저귀 가방 속에 들어있던 분유통

과 우유병이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수녀님이 뛰어와서 수희

를 일으켜 세웠다.

 "세상에! 수희 맞구나. 다치진 않았니? 이렇게 추운데 들어오지

않고. 저런! 볼이 발갛게 얼었구니. 내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

니?"

 "수녀님!"

 "그래, 네 맘 다 안다. 그래, 내 딸! 정말 잘 와주었다."

 안젤라 수녀는 수희를 꽉 껴안고 어깨를 두드렸다. 아기를 업은

수희는 안젤라 수녀님을 따라서 보육원으로 머뭇거리며 들어갔다.

 보육원 마당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마당에는 토종닭 몇 마리가 모이를 쪼아 먹으며 한가롭게

오가고 있었다.

 수희가 이 보육원을 도망친 것은 열일곱 살 무렵, 5년 전의 일이

었다. 보육원을 도망쳐 거리에서 생활을 하던 수희는 가출한 아이

들과 어울려 다니며 본드 흡입을 하거나 온갖 나쁜 일들에 물들어

갔다.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이라면 나쁜 일인지 아닌지 물불을 가리

지 않고 했다.

 스물한 살 때 수희는 역시 가출한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 아

이와 동거에 들어가 아기까지 낳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 민재였

다. 하지만 철이 없던 남자는 걸핏하면 수희를 두들겨 팼다.

 수희는 남자에게 맞을 때마다, 안젤라 수녀님에게 안겨 엉엉 울

며 위로를 받던 때를 떠올렸다. 안젤라 수녀님은 어린 수희가 남자

애들에게 맞거나 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친엄마처럼 다독

거려 주고 위로해 주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어린 민재까지 때리기 시작하자 수희는 도망을

치기로 마음먹고, 남자가 잠든 틈을 타 집을 나와 무작정 기차를 탔

다.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던 수희는 어쩔 수 없이 이곳 희망보

육원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안젤라 수녀님은 5년 만에 아기의 엄마가 되어 돌아온 수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안젤라 수녀님은 민재를 너무나 귀여워했

다 보육원 일을 하면서도 민재를 업고 다니기를 좋아했다.

 수녀님은 여전히 보육원의 한 귀퉁이에 있는 닭장에서 닭을 키워

아이들에게 맛난 계란을 삶아주기도 했다. 수녀님의 손을 거치면

보육원의 모든 살림이 윤이 나고 정갈해졌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들 토실토실하고 건강해 보였다.

 자주 울음을 터뜨리던 민재도 보육원으로 오고 나서부터는 방긋

방긋 웃음을 짓곤 하였다. 어쩌면 안젤라 수녀님은 수녀복 속에 천

사의 날개를 감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수희는 생각했다.

 햇볕이 좋은 겨울 오후였다. 쉰이 넘은 수녀님은 힘이 들 텐데도

민재를 업고 평상에 앉아 빨래를 개며 수희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에게 처음 왔을 때가 민재만 했단다. 얼마나 귀여운 아기

였는지 모른단다. 난 그렇게 예쁘고 순한 아기를 여태껏 본 적이 없

단다. 아기였던 네가 아기 엄마가 되다니, 정말 세월이 화살처럼 빠

르구나."

 "수녀님 죄송해요. 그토록 저를 잘 돌봐주셨는데, 저는 이렇게 깨

진 그릇처럼 엉망이 되어 돌아왔어요."

 "아니다. 넌 절대 깨진 그릇이 아니야. 넌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

을 약간 다친 것뿐이야.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걸어가면 되는 거

야. 네가 날 잊지 않고 제일 힘들 때 찾아와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맙

다. 그리고 민재를 업고 온 네가 너무 대견했단다. 아직 어리지만

자기 자식을 책임지겠다는 너를 보니,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짐

승들도 하물며 자기 새끼를 보듬는데,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

는 일이 제 자식을 거두는 일이 아니겠니. 그게 사람노릇이야. 수희

야,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내가 딸 하나는 바로 키웠다는 생

각이 드는구나."

 "수녀님, 저 이젠 영원히 수녀님과 함께 희망보육원에서 살 거예

요."

 "아니다, 수희야. 네가 언제든지 나가고 싶을 때 나가도 좋아. 그

런데 다음에는 절대 그날 밤처럼 몰래 나가지만 말아다오."

 "수녀님!"

 "왜?"

 "저······ 수녀님께 엄마라고 한번 불러 봐도 돼요?"

 "그럼 되고말고. 나는 네 친정엄마야, 친정엄마! 친정엄마한테 엄

마라고 불러도 되냐고 그러는 딸이 세상에 어딨니?"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색한 느낌이 들어 수희는 침을 꼴

깍 삼키고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엄마!"

 "그래 내 딸아!"

 수희를 쳐다보는 안젤라 수녀님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나도 수희랑 민재가 제일 좋아."

 "엄마, 사랑해요!"

 수희는 늙은 안젤라 수녀님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젤라 수녀님의

등 뒤에 업힌 민재가 팔을 나뭇가지처럼 활짝 벌리고 활개를 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넌 절대 깨진 그릇이 아니야. 라고 말하시는 안젤라 수녀님. 눈처럼 새하

얀 빨래에 내려앉는 겨울 오후의 햇살이 금빛가루처럼 반짝거립니다. 수

희를 믿고 기다려준 안젤라 수녀님의 그 넓고 깊은 사랑, 사랑은 한 사

람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것보다는 만인을 위한 사랑으로 번져나갈

때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출처 : 희망라면 세 봉지(김옥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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