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뚝지와 아버지

doggya 2010. 9. 2. 09:00

 

 

뚝지와 아버지

 

 

 

         "나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네.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한테는 학비도 벌어 쓰라고 하고, 그 험한 노가다도 시키

면서 매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료 급식 봉사를 할 수가 있나. 다들

형편 되면 자식들 유학도 보내고 배낭여행도 보내고 대학가면 차도

사주고 그러던데, 자네 정도면 아들한테 그렇게 야박하게 할 형편

도 아니잖나?"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위선자야."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자네 혹시, 뚝지라는 물고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뚝지?"

 "멍텅구리라고도 불리는 그 바닷물고기는 말일세, 이 고지식하

고 바보 같은 물고기는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 나올 때까지 그 자리

를 지켜. 자기가 다른 물고기 밥이 되는 순간까지도 알들을 지키려

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다고 그러는 구먼."

 "그런데 왜 갑자기 뚝지 이야기를 하나?"

 "한 1년 전인가 텔레비전에서 동해의 포식자 대왕문어라는 다큐

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네. 대왕문어가 가장 힘 안들이고 먹이로 잡

는 물고기가 뭔 줄 아는가?"

 "뚝지겠지. 알에서 새끼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금방 자

네가 말하지 않았나."

 "맞다네. 암컷 뚝지가 알을 낳고 떠나가면 수컷 뚝지가 그 자리에

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알을 지킨다네. 알에서 새끼 물고기가 깨어 나

올 때까지 꼼짝 않고 40일 정도를 지키고 있는 그 멍텅구리 같은 물

고기 한 마리가 나를 울게 만들었다네. 새끼 물고기가 태어날 무렵

에는 몸에서 영양소가 다 빠져나가 쭈글쭈글하게 변해버리지. 거

있잖나? 살아있는 물고기 아니라 너덜너덜한 천 조각처럼 보이

더구먼. 기력이 떨어져 죽어가는 수컷 뚝지는 제 몸을 기어코 새끼

들의 먹이로까지 제공하더구먼."

 "정말 희한한 물고기도 다 있네. 그런데 왜 난데없이 뚝지 이야기

를 하나?"

 "나는 무던히도 아버지 속을 썩인 나쁜 아들이었다네. 중학교 3

학년 때 동네 사람들한테 내가 고아원에서 데려온 양아들이라는 소

릴 듣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

 "흠, 그랬구먼. 충격 받을 만도 했겠네.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내가 다섯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재혼도 안 하고

혼자서 나를 키웠어. 사람들은 아버지가 재혼을 안 한 이유가 나 때

문이라고 했어. 양아들이 새엄마한테 혹시 구박이라도 받을까 싶어

아버지가 재혼을 안 한 거라고 그랬어.

 그때부터 학교도 가지도 않고 아버지 속을 썩이다가 가출을 해버

렸지. 그러다가 돈이 떨어져 아버지 집을 털기로 마음을 먹었어. 아

버지는 상당한 재력가셨거든.

 친구와 짜고 어두운 밤을 틈타 담을 넘었다네. 복면을 하고 말이

지.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10년 만에 도둑이 되어 나타난 나를 한번에

알아보셨어. 내 이름을 부르는데 등골이 서늘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친구가 아버지를 꽁꽁 묶고 재갈을 물렸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나?"

 "그러게 말일세. 짐승보다 못한 놈이었지. 그땐 정말 눈에 뒤집혔

었는가 봐."

 아버지한테서 훔쳐온 통장과 돈으로 흥청망청 놀았지. 그 몇 달

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당뇨를 앓고 계

셨지만 아마도 나 때문에 충격을 받아 돌아가실 걸 거야.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내 앞으로 물려 놓으셨더구먼. 나는 그게 더

무서웠어. 이제 나쁜 짓도 끝이구나 싶었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

버지라는 말만 들으면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치밀어오르곤 한다

네. 내 죄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하는가 싶어."

 "그래서 그때부터 자네가 마음을 잡고 여기까지 왔구먼."

 "아버지는 친아들도 아닌 나에게 모든 걸 남김없이 주시고 가셨

어.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 내 아버지 같아. 특히나 자식들에게 따뜻

한 밥 한 끼 못 얻어 드시는 노인들을 보면 더 그래.

 나는 무료 급식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 죄를 영원히 못 씻을 것만

같아. 우리 아들 그만하면 됐다, 하시는 아버지의 그 말씀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내 몸에 기력이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가난한 노인들에게 밥을 대접해야 해."

 "나는 그것도 모르고 자네 욕만 했지 뭔가. 제 자식한테는 수전노

처럼 굴면서 가난한 노인들한테 무료 급식하는 거 보고 혀를 찾지

뭔가, 미안하네."

 "아니야, 나는 죄인이야. 짐승만도 못한 아들한테 모든 걸 주고

가신 아버지. 뚝지처럼······ 아버지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

어져."

 

 

뚝지라는 물고기를 보신 적이 있나요? 대왕문어의 먹이가 되는 순간에

도 알들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수컷 뚝지의 부정이 눈물겹습

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외면해도 끝까지 믿고 사랑하고 기다려주는 사

람이 있습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출처 : 희망라면 세 봉지(김옥숙 지음)

 

 

                               천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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