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짜리 병아리
토요일 오후, 초등학교에 다니는 영수는 아빠와 밖에서 만나기
로 약속했다.
오전 수업을 마친 영수는 아빠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영수가 아
파트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영수는 아빠
가 보이지 않는 화단에 가만히 앉았다. 연두빛 화단엔 병아리 발자
국 같은 노란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고, 빨간 열매들도 째금
째금 열려 있었다. 영수는 웃음을 머금고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는
민드레 씨앗을 입으로 훅 불었다. 하얀 꽃씨들이 눈물처럼 나폴나폴
땅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때 아파트 2층 창문이 드르륵 열렸다. 두
아이가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 쫑알쫑알 흥분된 목소리가 영수 귓
가로 들려왔다.
"형, 누구 게 멀리 날아가는지 시합하자. 알았지?"
"응,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날리는 거다. 자, 하나, 둘,
셋."
아이들은 두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허공 속으로 힘껏 던졌다. 손
을 벗어나 땅 위로 떨어진 것은 놀랍게도 종이비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 마리의 노란 병아리였다. 영수는 병아리가 떨어진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병아리 한 마리는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 빨
간 꽃잎처럼 흩어져 있었고, 풀밭 위에 누워 있는 병아리는 나팔꽃
씨 같은 두 눈을 깜박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영수는 가엾은 병아리를 가슴에 안았다. 그때, 두 아이가 씨근거
리며 다가왔다.
"병아리 내 꺼야. 이리 줘."
"또 던질 거잖아."
영수는 다친 병아리를 등 뒤로 감추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던진 거 아니란 말야. 날아갈 수 있나 시험해 본 거야. 어서 내
놔."
두 아이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
가 쪼르르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 엄마는 영문도 모른 채 목
청을 돋워가며 나무라듯 영수에게 말했다.
"왜 남의 병아리를 가져가니? 네 꺼 아니면 돌려줘야지. 빨
리 내놔."
"···."
영수는 여전히 병아리를 등뒤로 감춘 채 눈물만 글썽였다.
아이들 엄마는 영수에게 다가가 병아리를 뺏으려 했다. 하지만
영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병아리를 내주지 않았다.
"너 어른 말이 말 같지 않니? 참 맹랑한 애로구나. 너희 집이 어
디야?"
"···."
"네 엄마 좀 만나야겠다.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친 거야. 어
서 앞장서, 어서···."
아이들 엄마는 험상굿은 얼굴로 버럭 화를 냈다. 그 기세에 눌린
영수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영수는 아줌마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
빠가 있는 곳까지 갔다. 그리고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아파트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저분이 우리 아빠예요."
영수가 가리킨 곳을 올려다보던 아이 엄마는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고층 아파트 외벽에서 이리저리 밧줄을 타면서 페인트치를 하
고 있던 사람은 바로 영수 아빠였다.
"저 사람이 정말 네 아빠니?"
"네. 근데 지금은 아빠를 부를 수 없어요. 높은 곳에서 아랠 보면
사고날지도 모르잖아요."
잠시 아빠 모습을 바라보다가 영수가 다시 말했다.
"얼마 전에 아빠 친한 친구 한 분이 일하시다가 떨어져서 돌아
가셨대요. 우리 아빠도 높은 데서 떨어지면 이 병아리처럼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영수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병아리가 싸
늘하게 죽어 있었다.
"아줌마, 500원이면 살 수 있는 병아리라고, 목숨까지 500원은
아니잖아요."
아이들 엄마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황급히
사라졌다.
영수는 마음을 졸이며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빠의
조그만 뒷모습이 만져질 듯 가까웠다. 그때 먹구름이 하늘 가득히
밀려오더니 먼 하늘에 바람꽃이 일고 있었다.
잠시 후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하는 일
은 갑작스런 비가 내릴 때 가장 위험하다는 말을 영수는 들은 적이
있었다. 아빠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수는 아빠를
부를 수 없었다. 좁쌀만큼 작아진 영수 마음은 콩콩콩 뛰기 시작했
다. 영수는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허공에 매
달린 아빠 모습은 슬픈 병아리가 되어 영수의 눈으로 가득히 들어
왔다.
"아빠··· 아빠···."
아빠를 바라보는 영수의 조그만 얼굴 위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렸다.
출처 : 연탄길2(이철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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