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책상 위에 엉덩이, 머리 위에 의자

doggya 2011. 7. 3. 08:52

책상 위에 엉덩이, 머리 위에 의자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이야기.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머리 위에 의자를 든 채 모두들 숨을 죽이고 벌을 받고 있었다.

5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지만 여기 저기서 끙, 끙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맨 앞줄에서,

"쿵 우 당 탕 탕!"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맨 앞에 앉아있던 키 작은 친구 녀석이 꼬꾸라지고 만 것이다.

"어, 이 녀석 봐라 얼른 못 일어나?"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 안을 올린다.

"어, 이 녀석 봐라 얼른 못 일어나?"

쓰러진 키 작은 친구는 쓰러진 채 일어날 줄 몰랐다.

선생님도 당황하시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손에 들고 계시던 나무 봉으로

친구의 머리를 탁, 탁 치시며 일어나라고 소리치신다.

친구는 힘없이 일어났고, 모두들 쓰러진 친구를 보면서

분위기의 심각성을 느꼈다.

그러나 책상 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 위에 의자를 들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까?

의자를 들고 있던 팔에 힘이 빠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의자가 머리 위에 닿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니!"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또 들린다.

모두들 선생님 앞에 힘없이 서 있는 친구에게로 시선이 모여졌다.

무슨 일인지 뒤쪽에 있는 나는 잘 몰랐다.

"피잖아!"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반 친구들은 모두 놀랐다.

그 친구가 다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양호실로 가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다만,

"너는 책상 위에 앉은 채 의자를 들고 있어."

라고 말씀하셨다.

반 친구들 모두는 그랬을 것이다.

선생님이 너무하신다고.

물론 수업이 끝날 시간은 몇 분 남지 않았지만,

나도 선생님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사실 우리 반 친구들은 나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벌을 주고 계셨던 선생님은

새로 오신 예쁜 여선생님이셨는데

나는 선생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공연한 장난을 하고 싶어 졌었다.

수업 시간에 다리를 떨며 다른 책을 보고 있었던 나를 보신 선생님께서

드디어 나를 가리키시며

"다리 떨면 복이 나간다."하고 말씀하셨고,

나는

"괜찮아요. 복이 너무 많아 털고 있거든요.

신경쓰지 마세요."

라고 말대답을 했고,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선생님은 나의 말대답에 화가 나셨고,

수업시간 10분을 남겨 두고 모두들 책상 위에서 무릎을 꿇고,

의자를 들고 벌을 받게 된 것이었다.

모두들 힘이 들어 쩔쩔매고 있는데,

앞쪽에서 키득키득 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웃는 녀석들 다 나와!"

교실 안 분위기는 더 살벌해졌다.

앞에 앉아서 웃던 친구들이 의자를 내려 놓고 절룩거리며

선생님 앞으로 불려 나갔다.

친구들이 불려 나간 후 나는 그 친구들이 왜 웃었는지 금방 그 이유를 알았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키 작은 친구가

책상 위에 걸터앉은 채 의자를 들고 있었는데,

아까 바닥에 넘어질 때 바지 뒷부분이 뜯어졌던 것이다.

 

그 친구는 그대로 의자에 걸터앉고 의자를 머리위로 들었는데,

찢어진 바지 사이로 엉덩이가 반쯤 보인 것이다.

팬티도 입지 않은 친구의 엉덩이를 보는 순간 하도 웃겨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어 버린 것이다.

불려나간 친구들은 엎드려 뻗쳐를 한 채 선생님께 다섯 대씩 매를 맞았지만

결국은 우리 반 모두 매를 맞았다.

 

쉬는 시간도 없이.

 

수업이 끝난 후 그 친구는 양호실로 갔다.

잠시 후,

다음 수업 시간 중간쯤 다쳤던 그 친구가 돌아왔고,

수업 중이신 선생님께 무언가 말씀을 드리더니 가방을 싸 가지고 조퇴를 했다.

그 다음날 그 친구는 학교에 나오질 않았다.

그 다음날도···.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런데 선생님 뒤로 초췌한 아주머니 한 분이 따라들어 오시고

그 뒤로 키 작은 친구가 힘없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반 친구들 모두의 시선이 아주머니와 그 친구에게로 집중되었다.

 

아주머니 머리 위엔 하얀 핀이 꽂혀 있었고

친구의 교복 가슴에도 하얀 리본이 선명하게 달려 있었다.

순간, 교실은 숙연해졌다.

그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고 집안 식구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반 친구들은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친구에게 책상에 가서 앉으라고 말씀하시고,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셨다.

아주머니도 선생님께,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교실 밖으로 나가셨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친구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씀과

친구가 다리를 다친 것도 아버지를 도와 드리다가 다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셨고,

우리가 벌 받던 그날 새벽 일찍 청소 일을 하시다가

교통 사고가 났고 아버지의 일을 도와 주던 그 친구도

청소 리어카 바퀴에 발목이 끼어서 다쳤던 것이다.

아버지와 그 친구는 병원에 실려 갔으나 친구는 많이 다치질 않아

발목을 몇 바늘 꿰매고 학교로 온 것이었고,

그날 책상 위에서 벌을 받다가 쓰러졌던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사고가 난 지 이틀 후 돌아 가셨고,

친구는 그래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한없이 부끄러웠고 너무나도 미안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버지를 돕다가 사고를 당한 그 친구에게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도 생각나질 않았다.

 

그저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우리 반 친구 모두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반 담임 선생님과 우리에게 벌을 주신 여선생님께서

그 친구의 학비와 고등학교 진학을 도와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선생님들께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에 짖굿은 짓도 참 많이 한 나였지만,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시절에 겪은 이 일은

굉장히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출처 : 몽당연필(김철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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