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범과 김형사
김형사는 오늘 오랫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
다. 한 달이 넘게 추적한 금은방 강도범을 잡아 순순히 자백을
받아냈고, 조사를 다 끝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검찰에서 구
속영장이 떨어지면 구치소에 송치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도 저녁은 먹여 보내야 했기에 설렁탕 두 그릇을 시키고 강도
범 강현국과 마주 앉았습니다.
"담배 한 대 줄까?"
강현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입에 담배를
물려준 다음 자신의 입에도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인 김형
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아서 형량이 무겁지는 않을
거야. 법원에 가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잘해. 변호는 국
선변호인이 해줄 거야."
강현국은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 녀석을 잡았을
때 김형사도 조금은 놀랐습니다. 눈빛이나 분위기가 강도짓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실직 상태에 있어
서 돈이 궁했다지만 그 정도 이유로 강도짓을 하기에는 녀석은
너무 선하게 보였습니다.
"애들이 둘 있다 그랬지?"
"네."
"이름이 뭐야?"
"아늘놈은 햇님이고,딸아이는 별님이에요/"
진짜 호적에 올린 이름이 그래?"
"네."
"예쁘군."
설렁탕을 다 비웠을 즈음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연락이 왔
고 김형사는 서울 구치소까지 강현국을 이송했습니다. 경찰서
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형사는 자꾸 강현국이라는 인간이 궁
금해졌습니다.
'금은방이나 터는 강도놈이 자식 이름을 그렇게 예쁘게 짓
다니?'
다음날 김형사는 강현국의 집을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강
현국의 집은 약수터가 있는 야산 뒤쪽 판자촌에 있었습니다.
어렵게 찾아간 집에는 강현국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강현국의 아내는 김형사를 보더니 긴장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미 경찰서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구면이었습니다.
"또 무슨 일이세요?"
"그냥 들렀습니다. 좀 앉아도 될까요?"
"그러세요."
"강현국이 몇 년이나 일을 못 했지요?"
"2년쯤 됐어요. 재주라곤 극장 간판 그리는 것밖에 없는 사
람인데, 극장들이 그림이 아닌 사진을 걸기 시작하면서 일거리
가 부쩍 줄었죠."
"어떻게 만나셨어요?"
"스무 살 때 만났어요. 저는 시골에서 올라와 극장 매표소에
서 일하고 있었고, 애들 아빠는 간판 보조였어요. 늘 생각에 잠
겨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지요."
"그랬군요."
"숟가락과 밥그릇만 가지고 살림을 차렸어요. 고아로 자라
서 그런지 현국 씨는 식구들을 끔찍하게 아꼈어요. 가난했지만
행복했죠. 아이들도 생겼고."
"아무리 어려웠어도 강도짓까지······."
"작은 애가 심장 판막이 좋지 않아요. 간판 일로 번 돈으로는
통원 치료비도 안 됐죠. 게다가 일까지 놓은 뒤부터는······."
"완치는 된다고 합니까?"
"수술하면 된대요. 그런데 더 크면 수술이 힘들어진다네요. 돈
이 없는 게 죄지. 부모가 돼서 자식 생명 하나 못 지켜주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형사는 마음 한구석이 찌릿햇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렵
지만 않았어도 절대 강도짓 같은 건 안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도 없는 놈이군. 잡히지나 말든지."
김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가보겠습니다."
"교도소에는 오래 있게 되나요?"
"그렇게 오래 있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이 많이 다치지 않
았고, 전과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반성하는 자세까지 보이고
있으니."
김형사는 산동네를 내려오며 당장 내일부터라도 아주머니
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어
느새 날이 저물어 희미한 가로등이 산동네를 비추고 있었습니
다.
출처 : 한 달이 행복한 책 (유 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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