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오래된 편지

doggya 2010. 9. 29. 07:36

 

 

오래된 편지

 

 

 

 "정, 정말이니?"

 "그렇다니까. 왜 내 말을 못 믿어?"

 "이, 이런 일이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할 테니까 잘 들어. 알았지?"

 동국은 인애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인애의 맑은 눈망울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인애야, 나랑 결혼해 줘."

 동국의 떨리는 입술을 보니, 인애는 그가 장난삼아 던진 말이 아

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순간, 인애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을 보이는 인애를 동국은 살포시 안아 주었다.

 "울지 마, 인애야. 그리고 어서 대답해 줘. 너 자꾸 나 기다리게

할 거야? 내 마음이 네 마음속에서 살 수 있도록 어서 허락해 줘."

 인애는 울먹이며 말했다.

 "고마워, 동국아. 정말 고마워. 나 같은 여자한테···."

 인애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네가 어때서 그래. 인애가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데."

 동국은 엄지손가락으로 인애의 눈가에 머문 눈물을 천천히 닦

아 주었다.

 

 사실, 인애는 몸이 불편하다. 스물일곱의 나이지만 키는 110센

티미터에 불과했다. 어릴 때부터 '골형성 부전증' 이라는 병을 앓

았고, 결국은 초등학생 2학년 때 키가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 아주 작은 부딪힘에도 쉽게 뼈가 골절되고 타박상을 입어 늘

병원을 제집 다니는 듯 들락거렸다. 그래서 모든 일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고 산 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도 않은 사랑이 인애에게 찾아온 것이다.

 작년 겨울, 인애와 동국은 우연히 만났다. 라디오 프로듀서로

근무하는 동국이 우연히 애청자가 보낸 사연을 선별하는 과정에

서 인애의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어? 초등학교 동창 인애다!"

 동국은 반갑고 기쁜 마음에 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둘

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동국과 인애가 만나는 날, 동국은 인애를 보자마자 첫눈에 알아

보았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얼굴도 키도.

 그러나 인애는 동국을 낯설어 했다. 훤칠한 키에 까칠까칠한 수

염까지, 어렸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인애, 너는 그대로네. 몸 괜찮니?"

 "응, 늘 조심조심 지내고 있어. 그런데넌 엄청 컸다."

 "많이 컸지? 그나저나 참, 너 글 솜씨 뛰어나더라. 라디오 작가

한번 해봐."

 "라디오 작가? 그런 일을 내가 어떻게 해."

 "왜? 너 정도면 할 수 있어."

 "아무튼 고맙다. 나를 인정해 줘서."

 "허튼소리가 아니야. 넌 해낼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동국아."

 인애는 동국을 만나는 동안 행복했다. 동국은 자상하고 배려심

이 많았다. 인애는 서서히 동국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동국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인애가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그건 문

제 되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면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더 편안함

을 느꼈다. 인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랑으로 자라게 되

었고, 결국 동국이 인애에게 청혼하기에 이른 것이다.

 

 청혼을 받은 인애는 동국에게 힘없이 말했다.

 "난 키가 작은데 어쩌지? 사람들이 날 욕할 거야. 너처럼 멋진

남자를 차지했다고 말이야."

 동국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내가

널 먼저 좋아했어. 사실, 난 너랑 키가 비슷할 때부터 널 좋아했

어. 그러니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말이야."

 "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그래. 난 너랑 결혼하는 게 어릴 적 꿈이었어."

 "그 말을 어떻게 믿니?"

 "정말이야. 자, 봐."

 동국은 호주머니에서 오래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애야, 난 네가 좋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너랑 결혼할 거야.

꼭 허락해줘. 알았지?

 

1993년 널 좋아하는 동국이가 ♡

 

 "그때는 내가 너무 어리고 용기가 없어서 너한테 전하지 못했

어. 이제야 전하는구나."

 인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못 믿겠어? 다시 잘 봐."

 편지지는 정말로 오래된 편지지였다. 또한, 글씨도 영락없이 초

등학생의 글씨였다.

 인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참 그땐 인기가 많았지. 그래, 내가 기꺼이 허락할께."

 "고마워,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못할 거야. 내가 널 좋아하고 내

가 너에게 청혼했으니까. 내가 매달려서 너랑 결혼한 거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자, 봐. 이 편지가 그 증

거잖아."

 동국은 오래된 편지를 인애의 손에 쥐어 줬다. 인애는 그 편지

를 바라보며 무척 행복해했다.

 

 사실, 동국이 인애에게 준 편지는 며칠 전 급하게 만든 것이었

다. 이웃에 사는 초등학생에게 부탁해서 글을 쓰게 했고, 물을 약

간 적신 후에 온종일 말렸다. 그리고 약한 불에 그슬려 오래된 편

지처럼 만든 것이다. 동국이 굳이 오래된 편지지를 만든 이유는

조금이라도 인애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전한 마음

을 모두 다 바쳐야 얻을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얻었다

고 그게 사랑의 완성이 되는 건 아닙니다. 마음 안에서 꿈을 만들어 가

고 마음 안에 또 다른 마음을 담고 사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의 완성입

니다. 당신의 사랑, 지금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나요?

 

 

출처 : 엄마, 정말 미안해(김현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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