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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doggya 2010. 9. 28. 08:43

 

 

사랑의 힘

 

 

 

 소영의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조그만 공원에서

민수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바람은 낙엽만 분주히 몰고 다녔고, 거리

엔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그때 민수의 앞으로 한 남자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야윈 얼굴의

그는 한 쪽 손에 지팡이를 들고 물끄러미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젊은이. 나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사내는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실은 내가 지금 화장실이 너무 급해 그러거든. 이 근처를 아무

리 찾아봐도 화장실이 있어야지."

 "저기 보이는 게 화장실인데요."

 민수는 사내에게 공원 한쪽에 있는 화장실을 가리켰다.

 "거긴 지금 화장실 공사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써 붙였던

데······."

 "그럼 저쪽으로 올라가시면 화장실이 또 하나 있을 텐데요. 아,

참 다리를 다치셔서 계단을 못 올라가시겠네요."

 민수는 선뜻 사내를 부축했다.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공원 내의

허름한 건물로 갔다.

 사내를 부축해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오르면서도 민수는 계속

뒤쪽을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소영이 왔다가 그냥 돌아갈까 봐 마음

이 놓이지 않았다.그런데 계단을 다 올라갔을 때 공교롭게도 화장

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저씨, 화장실 문이 잠겨 있는데요?"

 "그럼 어쩌지?"

 사내는 더 이상은 참기 어려운지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공원 밖에 있는 건물로 가는 게 낫겠어요."

 민수는 다시 사내를 부축해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공원 앞에 있는 낡은 건물의 3층까지 그를 안내했다. 다행히도 그곳

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젊은이, 이제 나 혼자 갈 수 있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정말 고마웠어."

 사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민수는 그를 기다려야 했다. 그녀와의

약속장소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라 마음은 몹시 불안했지만, 그렇다

고 가파를 계단을 깁스까지 한 사람 혼자 내려오게 할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10분 정도 지나 민수는 사내를 부축해 건물 밖으로 다시

나왔다.

 "저는 공원으로 들어가서 친구를 기다려야 하거든요. 그럼 조심

해 가세요."

 "고맙네. 젊은이 아니었으면 길에서 큰 망신당할 뻔했지 뭐야."

 

 사내와 인사를 나누고 민수는 서둘러 공원 안으로 뛰어 들어왔

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소영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사내

를 부축하며 30여 분을 오가는 사이에 소영이 왔다 갔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집으로 선뜻 전화를 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소영의 부모님은 민수가 어릴 적부터 부모 없이 자랐다는 이유

로 그녀와의 교제를 반대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 날 약속은 서신으

로 정한 그의 일방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못 나올 수도 있

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30여 분이 지나서였다. 그녀는

민수를 보자 몹시 놀란 얼굴이었다.

 "오빠, 여긴 웬일이야?"

 "웬일이라니? 내가 보낸 편지 받고 나온 거 아냐?"

 "무슨 편지? 오빠가 편지 보냈어? 난 못 받았는데."

 "그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아빠 모시러 전화 받고 나온 거야. 아빠가 다리를 다치셔서 잘

걷지 못하시거든. 이리로 나오라고 해서 급히 나온 건데······."

 그녀는 근심스런 얼굴로 공원이 이곳 저곳을 살폈다.

 

 그렇다면 민수가 보낸 편지를 받은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

의 아버지였단 말인가. 바로 전에 그가 부축했던 사내는 바로 그녀

의 아버지였다. 민수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말 없이 그녀의 손

을 꼭 잡았다. 언젠가 전화를 통해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

네······."

 그 말은 선인장 가시처럼 아프게 민수의 마음속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딸을 민수에게 보냈다.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민수는 가슴을 뜯으며 사랑을 찾아 헤맸

었다. 그러나 사랑은 그에게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

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을

버릴 때 사랑은 비로소 자신에게 온다.

 

 

출처 : 연탄길(이철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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