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쪼꼬렛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은행나무의 짙은 노란색 잎사귀가 바람에 바
스스 흔들리며 계절을 물들이고 있었다. 현충사 정원의 벤치에는 따
스한 햇살이 눈을 반쯤 감은 고양이처럼 한가롭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때 고요함을 깨뜨리며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밀려들더니 '효
도관광'이란 플래카드를 허리띠처럼 두른 관광버스에서 노인들이 하나
둘 내려섰다. 대부분 칠순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한 노부부
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더니 벤치 쪽으로 걸어가 나란히 앉았다.
"영감, 힘들지 않수?"
"나야 괜찮지만 몸도 편치 않은 당신이 따라나선 게 걱정이지."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얼굴엔 병색이 완연했다.
"내 걱정일랑 붙잡아 매시고 당신이나 오래 사슈."
할머니는 허리춤을 뒤적여 뭔가를 꺼내 들며 말했다.
"어여 눈 꼭 감고 입이나 크게 벌려 보슈."
"왜?"
"쪼꼬렛 주려고 그러우."
"웬 쪼꼬렛······."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할아버지의 입가엔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할아버지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
을 크게 벌렸다. 얇은 은박지가 잘 벗겨지지 않는지 할머니는 몇 번 헛
손질을 한 뒤에야 겨우 알맹이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작은 알맹이가 입속으로 들어간 순간 갑자지 할아버지의 표
정이 일그러졌다.
"응? 쪼꼬렛이 아니잖아?"
"쪼꼬렛만큼 달진 않아도 그보다 좋은 거유. 영감, 꼭 나보다 오래
사시구려."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입속에 넣어 준 것은 우황청심환이었다.
할아버지는 주름 가득한 거친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말없이 꼭 쥐었다.
유난히 높은 가을 하늘은 한없이 청명했고 작은 구름이 어디론가 천
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 광경도 오랫동
안 서로 의지해 온 노부부의 모습보다 아름답지는 않았다. 우황청심
환을 초콜릿처럼 우물거리는 할아버지에게 편안히 몸을 기댄 할머니
의 모습 말이다.
출처 : 행복 쪼꼬렛(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54가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