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부족해

doggya 2011. 2. 2. 19:41

 

 

부족해

 

 

 

인류가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전, 지상에는 한 괴물이 살고

있었다. 괴물은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여있었고, 두 눈은 형형한

광채를 내뿜었으며, 두 귀는 어깨까지 처졌고, 행동은 번개처럼

민첩했다.

 이 괴물은 욕심이 끝이 없었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 치

우면서도 항상 "부족해, 부족하단 말야!" 하고 울부짖었다.

 '부족해'는 수천 미터 밖의 사냥감도 감지할 수 있는 비범한

시력을 지녔고, 바닷속과 깊은 산 속에 있는 사냥감도 그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부족해'는 지상에 사는 모든 생물을 먹어 치

웠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자 강물과 호수, 바닷속에 사는 물고

기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고, 급기야는 생명이 없는 물체까

지도, 하늘의 구름과 번개까지도 먹어 치웠다.

 그러자 이를 보다 못한 하느님이 사자 둘을 파견하여 '부족

해'를 처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사자들도 별 힘을 쓰지 못했

다. 칼로 찌르면 칼을 먹어 치우고, 불태우려 하면 불을 삼켜 버

리고, 물에 빠뜨리면 그 물을 다 마셔버리는 통에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에 하느님은 그 괴물을 인간으로 만들어서 혼내

주라고 했다.

 인간을 만들기에 앞서 두 사자가 하느님께 물었다.

 "인간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느님이 자신의 구상을 대답해주었다.

 "벌거벗었지."

 "수명은 얼마나 되죠?"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눈은 있습니까?"

 "있지. 하지만 보통 눈을 한 소경이지."

 "귀는요?"

 "있지. 하지만 대부분 마음의 소리는 듣지 못한다."

 "마음은요? 사람도 마음이 있습니까?"

 "물론."

 "어떻게 생겼습니까?"

 "후!"

 하느님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글쎄, 그 마음이란 놈을 만들기가 제일 힘들더군. 그것만은

그냥 '부족해'의 것을 쓸 수밖에."

 "사지는 있습니까?"

 "그래, 하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자기 힘으로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입과 혀는 있습니까?"

 "있다. 하지만 종종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지."

 두 사람은 이렇게 하느님의 지시를 따라 '부족해'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만은 그냥 '부족해'의 것을 쓰게

되었다.

 

 욕심이 많은 자는 금을 나누어줘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탄하고, 공작으로 봉해줘도 제후가 되지

못함을 원망하며, 부귀하면서도 스스로 거지노릇을

달게 여긴다. 그러나 족함을 아는 사람은 명아주국

도 고기국보다 맛있게 여기고, 베 두루마기도 여우

와 담비 가죽 옷보다 따뜻하게 생각하니 서민이면

서도 왕과 같으니라.

-채근담

 

 

출처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물(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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