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따뜻한 이글루
파도 위에도 눈이 쌓이는 나라! 그런 눈 많은 고장에서 형과 아우는 둥글고 커다란 눈
동굴을 지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밤이 오면 우리는 동굴 속에 등불을 걸어두고
잠들었다. 바다에서 걸어오는 파도의 발자국 소리에 두근거리며···
-박용하. 「인생,중에서」
나의 살던 고향은 겨울이 되면 푸른 파도 위로 새하얀 눈이
쌓이는 아름다운 바닷가였다. 밤새 퍼붓던 눈이 그치면 할아
버지는 눈 시린 하얀 눈송이들을 모아 집을 지어주셨다.
「이글루란다. 에스키모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지은 지혜
로운 집이지. 차가운 눈과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떠
니? 이 안은 아늑하고 따뜻하지?」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눈과 얼음으로 만든 집이 이처럼
포근할 수 있을까요?」
「네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도 마찬가지란다. 거친 시련이
끊임없이 저 바다의 파도처럼 몰려온다 할지라도, 그 시련의
바깥에 있고자 한다면 언제나 삶은 매섭도록 차가울 것이란
다. 하지만 언제나 그 시련의 안쪽에 있고자 한다면 그 어떤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을 거야. 무슨 말
인지 이해하겠니?」
사실 그때는 너무 어려 할아버지의 말씀을 온전하게 이해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글루 안에
앉아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당신
말씀의 참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글루 안에서 바라보면
신기하게도 창에 찔린 짐승처럼 울부짖던 바다도 일순간 잔
잔한 호수처럼 변해 있었다.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세
상의 모든 일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천지의
차이를 나타냈던 것이다.
〈시련을 피하지 마라. 시련의 안쪽으로 당당하게 걸어들
어 가라. 그곳이 바로 네 삶의 따뜻하게 성장시킬 아름다운
이글루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곧 얼음
처럼 차갑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모진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그 시련을 삶의 지붕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이 마침내 승리한다는 깊은 가르침이었다.
그렇게 이글루에서 내 유년의 시간들이 흘러갔고, 중학생
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차비를 하셨다. 임종
하시는 마지막 모습을 지키는 내게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바다가 아름다운 건 그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그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 있기 때문이지.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사랑
을 포기하지 말거라. 네 이글루가 아름다운 건, 네 이글루를
사랑하는 바다와 세상과 사람들이 그 안에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너와 난 사랑이라는 이글루에 언제나 함께 있는 것
이니까.」
나는 눈물을 훔치고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 잡은 손에 마지막으로 전해주신 당신의 온기를 영원히 기
억하겠다고 결심했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따뜻한
이글루와도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이글루 안에서 지금껏 살
아가고 있다. 종종 폭설 같은 예고 없는 시련이 닥쳐올 때마
다 나는 이글루를 짓고 또 지어 시련 속을 따뜻하게 파고들
었다. 그리고 그 안에 내 사랑이 아름답게 세 들어 살게 하고
자 노력했다.
철학자 토머서 아 캠피스는〈시련이 없다면 사랑 안에 사
는 삶도 없다〉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시련 속에 짓고 사는
삶이라는 걸 알고 나자 내 이글루에겐 용기와 우정, 격려와 응
원들이 늘 방문해 북적거렸다. 할아버지는 비단 내게 이글루
를 짓는 법만을 가르쳐주신 게 아니었다. 당신께서는 사랑의
〈친구들〉을 사귀는 법까지 현자처럼 일러주셨던 것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집, 간밤에 새하얀 눈이 내린 어느
날 아침, 나는 이제 막 걸음마와 말을 배운 딸아이를 데리고
할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푸른 파도 소리를 귀에 담은 소복
한 눈송이들이 내 그립고 그리운 사랑을 둥글게 감싸고 있
었다.
「아빠, 여기가 왕할아버지 집이에요?」
「그래, 이글루,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글루란다.」
나는 내 어린 생명의 손을 꼭 쥐었다.
출처 : 사랑하니까 사람이다(오영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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