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햇살님의 좋은 글

눈물은 오른쪽부터 진다

doggya 2011. 2. 21. 08:21

 

 

눈물은 오른쪽부터 진다

 

 

"전 이름이 없어요"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되었거든요"

너를 뭐라고 부를까?

"난 행복이에요"

"기쁨이 제 이름이랍니다"

달콤한 기쁨 네게 있어라!

-윌리엄 브레이크, 『아기의 기쁨, 중에서』

 

 

「설마, 발가락이라도 닮았겠지.

 「아니라니까. 자, 봐봐. 나는 검지발가락이 엄지발가락

보다 크다고, 근데 민서는 아니잖아. 발톱 모양도 완전 다

르고.

 남편은 여간 섭섭한 게 아니었는지, 민서의 얼굴과 몸을

뚫어져라 살펴보고 있었다. 처음 민서가 태어났을 땐 아직

얼굴이며 다리며 조물조물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 닮은

곳을 찾아낸다는 게 무의미하다며, 남편은 애써 자신을 위로

하곤 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얘긴데, 민서는 정말

남편을 닮은 데가 없었다.

 「어쩜, 아빠와 아들이 하나도 안 닮았어요!」

 민서를 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렇게 감탄하곤 했고, 이는

남편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남편은 터무니

없는 친자 확인의 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정말 내 아들이 맞긴 맞는 거야?

 「이 아저씨가 정말, 벼락 맞을 소리하시네!」

 그렇게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1년 세월이 흘렀고, 민서는

점점 인간다운 모습으로 무럭무럭 성장했다.

 「축하해요! 아기가 참 예뻐요, 근데 여전히 아빠 얼굴이

없네?」

 민서의 돌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남편은 내

내 웃고 있었지만, 내심 많이 우울한 듯했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남편은 잠든 민서의 옷을 조심스럽게 홀라당 벗겨놓고

는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닮았는지 요리조리 발바닥을 맞

대보고 있는 참이었다.

 끝내 자신과 민서가 발가락조차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

달은 남편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나갔다. 냉장고에

서 캔맥주 한 통을 꺼내든 그는 식탁 의자에 힘없이 쓰러지

듯 앉았다.

 남편은 천성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했다. 곰처럼 덩치가 큰

사내가 하염없이 앉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홀짝거리는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측은해졌다. 나는 남편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보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해. 민서는 아마 당신과 마음이

닮았을 거야. 자상하고 섬세하고 살뜰한 마음 말이야.」

 사실 그랬다. 남편은 자상하고 착하고 섬세한 아빠였다.

육아의 궂은일은 모두 남편이 도맡아 했다. 아기 목욕이며,

기저귀 가는 것이며, 이유식 먹이는 거며··· 남편은 퇴근하기

가 무섭게 집에 돌아와 민서를 키우는 데 온 정성을 다 쏟았

다. 그런 덕분에 나는 또래 아기엄마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았고, 그것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거 봐, 당신도 내가 민서랑 하나도 안 닮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잖아. 애써 위로하지 않아도 돼. 나도 별것 아닌 것 같

고 이렇게 몸달아하는 내가 한심하다고 느끼니까. 그래도 섭

섭한 건 어쩔 수 없네.」

 남편은 어느새 바닥이 드러난 맥주 깡통을 한손으로 힘껏

찌그러뜨렸다. 그때였다. 알루미늄 캔의 날카로운 쇳소리에

 민서가 잠을 깬 것은.

 「으앙~」

 민서의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남편은 곧장 방으로 달려

갔다. 남편은 민서를 들어 올려 가볍게 품에 안고 뺨을 비볐

다. 아빠의 폴폴 나는 술냄새를 맡은 민서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는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으앙~」

 「흑, 미안하다. 민서야. 흑,」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서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

리고 있는, 전혀 닮지 않은 부자지간의 애틋한 포웅을 기념

하고자 플라로이드 카메라의 셔터를 놀렀다.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배꼽을 잡고 깔깔대지 않을 수

없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두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 그

쳤다. 나는 사진을 남편에게 들이대며 외쳤다.

 「봐봐, 닮은 데가 있네!」

 「이 사람이 진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뭐

가 닮았다는 거야?」

 「민서랑, 당신이랑 울 때 말이야. 사진을 잘 봐봐, 민서랑

당신이랑 오른쪽 눈에서부터 눈물이 떨어지네!」

 남편과 민서가 막 첫 눈물을 흘리는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

한 사진이었다. 남편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는 순간이

었다.

 

 

출처 : 사랑하니까 사람이다(오영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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